[기자의 시각] 11회 연속진출, ‘우생순’은 계속된다
세계 무대에서 가장 맹위를 떨친 한국 단체 구기(球技) 종목은 뭘까. 누군가는 2002년 월드컵 ‘4강 신화’를 쓴 남자 축구, 어떤 이들은 2008년 베이징 올림픽 9전 전승 금메달을 일군 남자 야구를 외칠지도 모르겠다.
모두 한국 스포츠사(史)에 빼놓을 수 없는 순간이다. 다만 기자가 생각하는 이 질문에 대한 정답은 영화 ‘우리 생애 최고의 순간(줄여서 ‘우생순’)’으로 사람들 머리에 각인된 여자 핸드볼이다. 최근 여자 핸드볼은 2024 파리올림픽 아시아 예선에서 4전 전승으로 가볍게 올림픽 진출권을 따냈다. 세계 남녀 핸드볼 역사에 전례 없는 11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 올림픽엔 각 대륙 지역 예선 등을 거쳐 엄선된 12국만 출전권이 주어진다. 한국 여자 핸드볼은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을 시작으로 본선 무대에 개근했다. 내년까지 포함하면 무려 40년 동안 저력을 과시한 것이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 결승에서 한국을 울리며 ‘우생순’ 영화 제작 계기를 만들어준 덴마크만 해도 세대교체에 실패해 그 뒤론 딱 1번 올림픽에 나갔을 뿐이다.
여자 핸드볼은 그동안 올림픽에서 금메달 2번(1988·1992년), 은메달 3번(1984·1996·2004년), 동메달 1번(2008년)을 거둬들였다. 지금까지 올림픽 단체 구기 종목에서 한국은 메달 15개를 땄는데 그중 여자 핸드볼이 6개를 책임졌다. 40%다. 아시아에선 더 독보적이다. 아시아 여자 핸드볼 선수권은 19번 열렸는데 한국이 16번을 우승했다. 1~8회 8연패를 했고, 최근 6개 대회에서도 내리 우승했다. 아시안게임에서도 여자 핸드볼은 1990년 종목 도입 이래 8번 대회 중 7번을 정상에 올랐다.
성과는 압도적이지만 대접은 신통치 않다. 핸드볼계에선 ‘한데볼(한때만 관심을 갖는다며 핸드볼 관계자들이 자조적으로 이를 일컫는 말)’이란 용어가 자주 나돈다. ‘비인기 종목’이란 고질적인 편견과 냉대도 잦다. 프로 스포츠가 아닌 실업 종목이다 보니 지원이 넉넉하지 않다. 핸드볼협회 관계자들조차 무의식적으로 “아시다시피 저희가 비인기 종목이라서...”라는 푸념을 입버릇처럼 내뱉는다. 협회는 중장기적으로 기존 실업 리그를 프로 리그로 전환시킨다는 목표를 갖고 있지만 안착할 수 있을지 불안이 적지 않다.
선수들도 이런 환경을 잘 안다. 올림픽 금메달을 따고 ‘우생순’ 영화가 흥행해도 족쇄는 쉽게 벗겨지지 않는다. 수십년간 그랬기에 선수들도 뭔가를 바꾸려고 하기보단 순응하는 분위기다. 약 한 달 뒤 열리는 중국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여자 핸드볼은 또다시 정상을 노린다. 대표팀 주장 이미경(32)은 “이젠 ‘우생순’이 아닌 새로운 무언가를 저희 세대가 만들어내야 할 때”라고 했다. 여자 핸드볼 최고의 순간은 끝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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