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보리 동기’ 韓·슬로베니아, 산 오르며 하나 됐다
“일요일 산행에 박진 장관을 초대했습니다. 박 장관은 트리글라브 국립공원의 자연과 아름다움에 열정적인 관심을 보였고, 우리는 산책을 통해 양국 관계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이런 게 바로 산행 외교(hiking diplomacy) 아니겠습니까!” (탄야 파욘 슬로베니아 부총리 겸 외교장관)
올해로 수교 30주년을 맞았지만 현지에 우리 대사관도 없는 인구 200만명의 중부 유럽 국가 슬로베니아와 한국의 관계가 돈독해지고 있다. 두 나라 외교 수장이 ‘등산’이란 공통의 취미를 발견하고 나서부터다. ‘블레드 전략 포럼’ 참석차 2박 3일 일정으로 슬로베니아를 찾은 박진 외교부 장관은 지난 27일(현지 시각) 파욘 장관과 알프스 최대 국립공원인 트리글라브(Triglav) 일대를 산행했다. 북서부에 있는 블레드는 인구 1만명의 소도시로 알프스산맥과 접한 관광 명소다. 함상욱 오스트리아 대사, 최태호 유럽국장 등 양국 외교부 주요 관계자부터 보좌진 등 실무자들까지 두루 참여해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고 한다. 박 장관은 ‘2030 부산 엑스포’ 로고가 적힌 흰색 티셔츠를 입고 엑스포 지지도 당부했다.
이날 두 장관의 산행은 불과 두 달도 되지 않아 다시 이뤄진 것이다. 박 장관은 지난달 1일 파욘 장관이 방한했을 당시 북악산에 함께 오른 적이 있다. 하루 전 외교 장관 회담에서 등산이 대화 주제로 올랐는데, 박 장관이 제안해 슬로베니아 대표단 출국 직전 성사됐다. 파욘 장관은 “장시간 귀국 비행에 앞서 박 장관과 서울에 있는 산에 올라 기뻤다”며 “특별한 환대와 우정에 감사드린다”고 했다. 박 장관은 1956년생이고, 파욘 장관은 1971년생인데 열다섯 살이나 되는 나이 차에도 불구하고 등산이 두 사람을 하나로 만든 셈이다.외교부 관계자는 “두 장관이 다양한 현안에 대해 허심탄회한 논의를 진행할 수 있었다”고 했다.
양국은 올해 6월 2024~2025년도 유엔 안보리 비상임이사국 수임(受任)에 나란히 성공해 내년 1월부터 함께 활동한다. 28일 외교 장관 회담에서도 북한 핵·미사일과 인권 문제, 평화 유지·구축, 여성, 사이버 안보, 기후변화 대응 등 주요 현안에 대한 긴밀한 협력을 약속했다. 주한 슬로베니아대사관은 지난해 11월 용산구 한남동에 개관한 반면 슬로베니아 현지에는 우리 대사관이 없어 주오스트리아 대사관이 겸임하고 있다. 로버트 골로브 슬로베니아 총리는 박 장관이 예방한 자리에서 “한국 대사관이 조만간 개소되길 바란다”고 했다.
박 장관은 소문난 등산 애호가다. 외교부 관계자는 “평소에도 소모임을 통해 직원들과 등산을 즐기고, 해외 출장으로 장시간 비행을 마치고도 곧바로 산에 올라 개운하다고 말할 정도로 등산에 진심인 분”이라고 했다. 필립 골드버그 주한 미국 대사는 지난해 7월 취임 직후 박 장관과 북한산을 나란히 등반하는 것으로 ‘상견례’를 했다. 박 장관은 같은 해 8월 왕이(王毅)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에게는 “한국을 방문하면 나와 같이 북한산 등산도 하고 맛있는 자장면을 함께 먹자”고 했다. 왕 위원은 지난달 한·중·일 3국 협력 국제 포럼에서 이 제안을 재차 언급하며 “나 또한 박 장관을 다시 산둥으로 초대해 함께 태산(泰山)에 올라 천하를 구경했으면 한다”고 화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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