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돔·청줄돔… 필리핀 살던 물고기들, 제주 바다까지 이사왔다

서귀포/조유미 기자 2023. 8. 30. 03:01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서귀포 바다 기후변화 현장

지난 20일 제주 서귀포 섶섬 앞바다. “셋, 둘, 하나, 입수” 구호에 맞춰 17명이 공기통을 메고 동시에 잠수했다. 선발대가 ‘어류 조사 중’이란 머리띠를 두르고 바다 밑바닥에 먼저 도착해 가로 5m·세로 50m의 조사 구역을 표시했다. 다른 인원은 수중 카메라로 물고기를 촬영하며 내수지(耐水紙·젖지 않는 종이)에 이름 등을 적었다. 이들은 제주 바닷속 생태 변화를 조사하는 민간단체 ‘물고기반’ 회원들이다. 2년 전부터 국립생물자원관 연구진과 매달 2~3일씩 잠수해 어종 변화 등을 기록하고 있다.

지난 20일 제주 서귀포 섶섬 앞바다에서 본지 조유미 기자가 청줄돔을 관찰하고 있다. 온난화 등으로 바닷물 온도가 상승하면서 제주도 해역에 정착하는 아열대 어종이 늘고 있다. /민간단체 '물고기반'

이날 수온은 27도 안팎이었다. 서귀포 앞바다는 천연색 물고기로 가득했다. 노란 바탕에 검은 줄무늬가 있어 호랑이를 닮은 범돔 떼가 무리 지어 헤엄쳤다. 푸른색 줄무늬가 화려한 청줄돔, 꼬리지느러미를 팔랑이는 하늘색 청황문절도 눈앞으로 지나갔다. 모두 필리핀이나 하와이 바다에서 보이던 ‘아열대 어종’이다. 기자도 전문가 도움을 받아 38분간 최대 수심 20.5m까지 잠수했다. 아파트 7층에 해당하는 깊이다. 제주 남단은 아열대 어종들의 서식지로 변해 있었다.

올여름 우리 바다는 이례적으로 뜨거웠다. 국립수산과학원에 따르면 이달 25~26일 제주도 연안 표층수온은 최고 30도를 기록했다. 지난 7일에는 일 최고값이 31도(우도)까지 올랐다. ‘물속에서 땀이 나는’ 수준이다. 지구 온난화 영향이라는 분석이 있다. 제주 바다 관측 지점 8곳의 8월 평균수온은 최근 3년간 26~27도를 기록했다. 김병직 국립생물자원관 기후환경생물연구과 연구관은 “최근 섶섬 인근 어종의 80% 이상이 열대 또는 아열대 어종일 것으로 추정한다”며 “수온이 더 올라가는 9~10월이면 더 많은 아열대 물고기가 찾아올 수 있다”고 했다.

제주 섶섬 인근 바다에 가득한 아열대 어종 파랑돔. 파랑돔은 지난 4월 기후변화 지표종으로 지정됐다. /민간단체 '물고기반'

이날 수중 조사가 10여 분쯤 지났을 때 주둥이 아래 수염이 달린 팔뚝만 한 크기의 붉은 물고기가 등장했다. 대원 5~6명이 확인에 나섰다. 알고 보니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기록이 없는 국내 미기록종(種)이었다. 다른 대원이 손을 흔들며 가리킨 곳에는 귤색 줄무늬에 몸길이 10㎝ 안팎의 감귤아씨놀래기(가칭)가 보였다. 이 물고기도 우리나라에 공식 이름이 없는 아열대 어종이다. 이날 발견된 붉은동갈새우붙이망둑(가칭), 연두자리돔(가칭), 노랑점줄망둑(가칭) 등도 국내 미기록종이었다.

그래픽=정인성

섶섬 인근에는 총 211종의 어종이 서식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지난 18~20일 확인된 물고기는 123종이다. 하와이나 남일본이 원산지인 두점긴주둥이놀래기도 있었다. 이 물고기는 2015년 11월 섶섬 인근에서 김병직 연구관과 물고기반의 김상길(53) 굿다이버 대표가 처음 발견한 것이다. 이후 계속 모습을 드러내며 지난해 12월 ‘국가생물종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국내 서식이 공식 확인됐다’는 의미다. 같은 해 국가생물종목록에 등재된 아열대 어종 빗살아씨놀래기도 2021년 6월 김 대표가 섶섬 앞바다에서 찾은 것이다. 지난 2년간 이곳에서 찾아낸 미기록종만 33종에 달한다. 김 대표는 “잠시 보이는 게 아니라 국내 정착하는 아열대 어종이 늘고 있는 것”이라며 “아열대 어종의 치어가 떼지어 발견되는 등 출현 빈도도 높아지는 걸 느낀다”고 했다.

이번 조사에서만 아직 우리나라에 공식 이름이 없는 아열대 물고기 7종과 첫 발견으로 추정되는 물고기 2종이 목격됐다. 한두 달에 한 번씩은 첫 발견으로 보이는 새로운 물고기가 등장한다고 한다. 전문가들은 “수온이 오르면서 여름뿐 아니라 겨울 바다의 모습도 변하고 있다”고 했다. 겨울철이면 모자반은 허리춤까지 빽빽하게 자라 칼로 자르며 다니기도 했다고 한다. 그런데 어느 새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식용 해조류인 제주 모자반은 중국에서 흘러와 골치를 썩이는 비식용인 괭생이모자반과는 다르다.

제주 바닷속 생태 변화를 조사하는 민간단체 ‘물고기반’ 회원들이 수중 카메라를 들고 물고기를 촬영하고 있다. 이들은 2년 전부터 국립생물자원관 연구진과 매달 2~3일씩 잠수해 어종 변화 등을 기록하고 있다. /조유미 기자
제주 바닷속 생태 변화를 조사하는 민간단체 ‘물고기반’ 회원들이 수중 카메라를 들고 물고기를 촬영하고 있다. 이들은 2년 전부터 국립생물자원관 연구진과 매달 2~3일씩 잠수해 어종 변화 등을 기록하고 있다. /조유미 기자

해조류의 경우 높은 수온에 취약하다. 미역 포자는 25도 이상의 수온에 장기간 노출되면 생존하지 못한다. 제주 미역류 생산량은 2011년 205t에서 2022년 59t으로 146t 줄었다. 우뭇가사리 생산량도 같은 기간 4830t에서 350t으로, 모자반류는 260t에서 13t으로, 톳은 1518t에서 29t으로 98.1% 감소했다. 전문가들은 “이런 추세면 해조류를 먹이로 삼는 전복 등 어패류도 사라질 수 있다”고 우려한다. 섶섬이 있는 서귀포시 보목동 앞바다 표층수온은 최근 3년간 15도 이하로 떨어지지 않고 있다.

반면 열대·아열대성인 산호는 늘어나고 있다. 필리핀과 베트남 등 동남아 지역에서 주로 발견되던 빛단풍돌산호 등이 최근 제주 해역에 자리 잡기 시작했다. 국립수산과학원 제주수산연구소에 따르면 수심 5~25m 열대·아열대 해역에 서식하는 그물코돌산호는 2010년 제주 남부에서 일부 발견되기 시작했는데 현재는 제주 전체 연안에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원래 제주 연안에서 발견됐던 큰수지맨드라미 등 산호는 서식지 경쟁에 밀려 줄고 있다. 회원인 김수현(40·다이빙 강사)씨는 “매일 바닷속에 들어가는 우리는 기후 변화로 시시각각 달라지는 바다 환경을 절감하고 있다”고 했다.

제주 바다만 뜨거워지는 것은 아니다. 지난달 미국 플로리다주(州) 마이애미 남쪽에선 바닷물 온도가 38.4도까지 기록했다. 목욕탕 ‘온탕’(37도 안팎) 수준이다. 지난달 30일 세계 해수면 평균 온도는 20.96도로 관측 이래 최고치를 찍었다. 전 세계 바닷속이 온도 상승으로 이상 변화를 겪고 있다.

☞국내 미기록종

다른 나라에서 서식이 확인됐지만 국내에서 처음 발견된 생물을 뜻한다. 세계적으로 처음 발견된 신종(新種)과는 다르다.

Copyright © 조선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