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시론] ‘바가지’는 죄가 없다
‘바가지’란 ‘박’이라는 식물명에 작다는 뜻의 접미사 ‘아지’를 결합한 순수 우리말로 박을 두 쪽으로 쪼개 만든 둥근 그릇을 의미한다.
지금이야 박이 아닌 플라스틱을 주원료로 만들지만, 그럼에도 바가지는 물이나 음식 등을 담는 용도로 사용되며 우리 일상생활에 가장 친숙한 다기능 생활용품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바가지’에게도 말 못할 슬픔이 있다. 바가지를 둘러싼 각종 오해(?)가 그것이다. 가장 대표적으로는 남편의 경제적 무능력을 항의하는 아내의 잔소리를 가리켜 ‘바가지를 긁다’라고 표현하는 것이다.
우리 조상들은 동네에 역병이 돌면 무당을 불러 굿을 했는데, 그때 바가지를 엎어놓고 박박 긁는 소리로 병귀(病鬼)을 쫓아냈다고 한다. 귀신마저 도망치게 만드는 소리, ‘바가지를 긁다’의 유래인 것이다. 이뿐만 아니다.
거지가 쪽박을 차고 다니며 밥을 구걸하던 모습에 빗대, 경제적으로 가난해진 상황을 의미하는 “바가지를 차다”는 표현도 있다. 여기에 ‘바가지’가 명사 뒤에 붙으면 고생바가지, 주책바가지 등과 같이 비하의 뜻을 더한다. 이는 함부로 다뤄지고, 잘 깨지는 바가지의 속성에서 유래한다고 하니, 이쯤 되면 바가지가 무슨 죄인가 싶다.
특히 최근 논란이 되는 ‘바가지를 쓰다’는 요금이나 물건값을 시세보다 훨씬 비싸게 지불하는 걸 의미하는 국민 관용어다.
바가지 쓴다는 것은 억울함의 대명사, 거꾸로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고 남에게 손해를 끼치는 고약한 심보의 ‘바가지 씌우기’도 있다.
올해 초부터 이어온 각종 지역축제가 그 도화선이 됐다. 옛날 과자 1.5L 한 봉지가 7만원에 손바닥 크기의 감자전이 2만5천원, 어묵 한 그릇에 1만원까지 한철장사에 자릿세까지 생각하더라도, 너무 과한 가격이 국민적 분노를 일으킨 것이다. 그리고 여름만 되면 급상승하는 휴가지 숙박비에 계곡 식당에서 파는 수십만원 백숙세트까지 바가지는 쭉 이어졌다.
여기에 새만금 잼버리 축제현장에 입점한 편의점마저 바가지 상술을 보였다 하니, 전 세계인들 앞에서 ‘K-바가지’의 위세를 떨친 형국이다. SNS의 발달로 사회 부조리에 대한 즉각적인 공론화가 가능하게 됐음에도 이를 도외시한 채 구시대적인 영업 방식을 고수한 결과다.
이렇듯 ‘바가지’는 그 유용한 쓰임새에 비해 세속의 말은 지극히 부정적이다.
하지만 굳이 변명하자면 “알고 보면 ‘바가지’는 죄가 없다. 바가지를 사용하는 인간들이 잘못인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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