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삼성·KT·카카오 ‘자율주행 어벤저스’… 2400조 시장 공략
지난 5월 24일 경기 화성 현대차그룹 남양연구소에서 현대차의 자율주행차에 올라타자, 가장 먼저 차 내부에 설치된 대형 화면 2개가 눈에 들어왔다. 고성능 카메라와 라이다 등으로 감지된 주변 풍경이 실시간으로 세세하게 그려졌다. 운전석에 앉은 사람이 목적지를 정해 출발 버튼을 누르자, 핸들이 혼자 왼쪽으로 기울어지더니 차량이 스스륵 앞으로 나아가기 시작했다. 차에 탄 지 10분쯤 지났을 때는 핸들이 알아서 움직이고 있다는 걸 크게 의식하지 않게 될 정도였다.
우리나라가 전 세계 자율 주행 산업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현대차만이 아니다. 현대차그룹과 삼성전자, KT, 카카오 등이 손을 잡았다. 글로벌 시장에서 IT 기술로 무장한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엔비디아 등에 대항하는 차원이다. 글로벌 빅테크와의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한국 경제를 다시 한번 도약시킬 ‘K 자율 주행 어벤저스’가 나오고 있는 셈이다. 여기엔 기술력으로 세계에서 인정받은 한국의 젊은 스타트업도 잇따라 가세하고 있다.
◇현대차와 삼성·KT·카카오 등 ‘K 자율주행차 어벤저스’의 출현
현대차그룹은 2020년 미국 대표 자율주행차 기업 중 하나인 앱티브와 함께 약 2조원을 투자해 자율차 기업 ‘모셔널’을 만들었다. 네이버 출신들이 만든 자율차 기업 ‘포티투닷’도 2022년 인수했다. 초기 투자부터 지금까지 총 1조4000억원 이상을 투입했다. 자율주행차 기술 경쟁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 ‘기술 개발하는 시간이 아깝다’고 보고, ‘기술 기업 M&A’ 방식을 채택한 것이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현대차그룹은 삼성전자, KT, 카카오 등 분야별 국내 대표 기업과 협업도 시작했다. 부품·기술 측면에서 한국 기업들과의 공조로 흔들리지 않는 공급망을 구축해야 변수가 많은 미래차 경쟁에 대응할 수 있다는 인식도 반영됐다.
삼성전자와는 이달 초 캐나다 AI반도체 스타트업 텐스토렌트에 공동으로 지분 투자를 했다. 자율 주행 핵심 부품인 고성능 반도체 기술을 확보하는 차원이었다. KT와는 지난해 지분 교환까지 하며 자율차가 다른 자동차나 도심 교통망과 실시간으로 각종 정보를 교환할 수 있는 6세대 이동통신(6G) 개발에 나서고 있다. 또 카카오와는 서울 강남에서 자율 주행 서비스를 공동 개발했다.
현대차그룹의 오랜 협력사 중 하나인 LG그룹에서도 LG전자가 사물 인식 기능이 포함된 자율주행차용 카메라를, LG이노텍이 자율주행차에 사용하는 5G(5세대 이동통신) 기반 통신 모듈 등을 한창 개발하고 있다. 그밖에 2021년 말 자율 주행 전문 자회사 HL클레무브를 새로 만들어 기술 개발을 하는 HL그룹(옛 한라그룹)도 주요 협력사다.
◇테슬라 제치고 BMW 뚫는 K스타트업
K어벤저스가 글로벌 자율주행차 시장을 정면으로 공략한다면 한국의 젊은 자율 주행 스타트업들은 고유의 기술력으로 세계 시장에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지난달 25일 찾아간 경기도 동탄의 자율 주행 스타트업 ‘스트라드비젼’에서도 그 장면을 볼 수 있었다. 이 회사는 한 대당 수백만 원 하는 라이다 대신 저렴한 카메라를 통해 주변 사물을 실시간으로 인식하는 첨단 소프트웨어(SW)를 만드는 회사다. 이 회사가 만든 SW가 장착된 차에 타봤더니 머신러닝 기술을 적용한 카메라 10대만으로 160m 앞의 도로 상황까지 감지하는 기술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2014년 설립된 이 회사는 독일의 부품사 ZF, 현대차그룹, LG전자 등에서 지금까지 1558억원의 투자를 받았다. 이미 세계 자동차 회사 12곳의 차 100만대가 이 회사 SW를 장착하고 도로를 달리고 있다.
지난 3월엔 창업한 지 불과 5년 된 스타트업 오토노머스에이투지가 글로벌 시장조사 전문 기관 가이드하우스가 발표한 자율 주행 기술 평가 순위에서 모빌아이, 웨이모, 크루즈, 엔비디아 등에 이어 13위에 올랐다. 센서와 SW 등을 결합한 자율 주행 시스템 전체를 만드는 회사인데, 순수 기술력으로 테슬라(16위)보다 높은 평가를 받았다.
2017년 창업한 서울로보틱스는 독일 대표 고급차인 BMW의 마음을 샀다. BMW가 핵심 공장 중 하나인 독일 딩골핑 공장에서 만드는 차를 공장 외부로 이동시킬 때, 작년 말부터 이 회사의 자율 주행 시스템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공장 곳곳에 설치된 라이다 150여 개를 통해 들어온 정보를 기반으로 자동차가 알아서 움직이는 방식이다.
현대차그룹의 자율 주행 기술 개발을 담당하는 이병춘 자율주행개발실장(상무)은 “지금은 전기차이지만 다음 단계는 자율 주행 경쟁일 수밖에 없다는 게 글로벌 자동차 업계의 시각“이라며 “자율 주행은 자동차 기업 입장에서 단기간에 기술력 확보가 쉽지 않은 IT 기술이 대거 들어가는 만큼 국경과 기업을 넘는 폭넓은 협력이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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