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 IT 갑부들이 1조원 투자 ‘반값 신도시’ 만든다
미 샌프란시스코에서 북동쪽으로 약 85㎞ 떨어져 있는 트래비스 공군 기지. 도심에서 차로 1시간 거리인 기지 주변은 소들이 풀을 뜯어 먹는 풍경이 전부인 황무지다. 하지만 이 드넓은 빈터는 가까운 미래에 샌프란시스코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들이 대거 입주하는 신도시로 변신하게 된다. 실리콘밸리 억만장자들이 합심해 이곳을 ‘메가 시티’로 탈바꿈하려고 하고 있기 때문이다.
25일(현지 시각)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실리콘밸리 억만장자들이 투자한 신생 토지 개발 업체 플래너리 어소시에이츠(Flannery Associates)는 2017년부터 이 근처 땅을 조금씩 사들였다. 지금까지 8억달러(약 1조원)를 투자해 400여 명의 토지 소유자에게 부동산을 구매했다. 뉴욕타임스는 “실리콘밸리 거물들은 오랫동안 (캠퍼스 증축 등과 관련된) 토지 부족 문제에 시달려왔다”며 “더 많은 공간에 대한 실질적인 수요가 전체 도시를 처음부터 건설하는 고상한 비전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평가했다. 테크 신도시를 만들어 사무 공간을 자유롭게 확장하는 동시에, 미국에서 가장 살인적인 집값에 허덕이는 직원들의 주거 문제까지 직접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실리콘밸리 거부들이 투자
플래너리 어소시에이츠를 이끄는 사람은 골드만 삭스 트레이더 출신인 얀 스라맥(36)이지만, 자금을 대는 ‘쩐주’들은 쟁쟁한 인물들이다. 링크트인 공동 창업자 레이드 호프먼, 벤처캐피털 세쿼이아 캐피털의 마이클 모리츠 전 회장, 스티브 잡스 애플 창업자의 미망인인 로린 파월 잡스, 핀테크 업체 스트라이프 공동 창업자 패트릭·존 콜리슨 형제 등이다. 플래너리 어소시에이츠가 이 지역에서 소유한 땅의 크기는 서울 면적의 4분의 1에 이르는 총 5만2000에이커(약 6366만평)에 달한다. 아직 구체적인 도시 건설 계획이 나온 것은 아니지만, 회사 측은 “이곳 주민들에게 고임금 일자리, 저렴한 주택, 친환경 에너지, 열린 공간을 제공하는 프로젝트”라고 밝혔다.
뉴욕타임스는 신도시 프로젝트가 성사되려면 솔라노 카운티 주민 투표와 토지 용도 변경을 거쳐야 한다고 언급하며, “(표심을 얻기 위해) 향후 수천개의 지역 일자리, 세수 증가, 공원 및 공연 예술 센터와 같은 인프라 투자를 약속할 전망”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신도시 건설이 추진되면 상대적으로 저렴하게 땅을 매입했던 억만장자들은 천문학적인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기업도 도시 조성 나서
미국에서는 민간 기업·억만장자 주도로 신도시 건설이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는 테슬라 기가팩토리, 스페이스X, 보링컴퍼니 등 자신 소유 회사가 밀집한 텍사스주 오스틴 동쪽에 ‘스네일브룩’이라는 마을을 건설하고 있다. ‘텍사스 유토피아’라고도 불리는 이 마을엔 인근 시세보다 훨씬 낮은 월 800달러 모듈 하우스와 초대형 스포츠 시설이 들어서고 있다.
블룸버그는 “미국 억만장자 입장에서 자신만의 마을을 구축하는 건 단점이 없는 투자”라며 “텍사스는 마을 통합 절차가 매우 간단하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고 했다. 인근 지역 주민 201명 이상을 동원해 카운티 판사에게 신규 마을 통합 신청을 하면 되는데, 금전적인 보상으로 쉽게 동원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마을 통합이 이뤄진 후 땅주인인 억만장자는 새롭게 형성된 지방자치단체에서 마을 개발 및 세율 조정 등에 큰 영향력을 펼칠 수 있게 된다.
레스 웩스너 빅토리아 시크릿 창업자는 지난 2019년 오하이오 뉴올버니의 마을을 통째로 구매해 고급 주택지를 조성했고, 래리 엘리슨 오러클 창업자는 지난 2012년 하와이 라나이섬 토지의 98%를 구매해 최고급 휴양지로 탈바꿈시켰다. 기업이 마을급 대규모 캠퍼스 조성에 나서는 일도 흔하다. 구글은 새너제이에 80에이커 면적의 신규 캠퍼스 ‘구글 웨스트’를 조성하고 있으며, 애플은 본사가 있는 쿠퍼티노에서 4층짜리 신규 사무실 공간, 소매점, 야외 광장 등이 포함된 캠퍼스 증축에 나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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