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연경의행복줍기] 시간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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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한 큰아들과 작은아들의 아파트 현관문 비밀번호가 자신의 집과 같다는 걸 알게 된 어머니가 그 따뜻한 배려에 든든함과 고마움을 느꼈다는 글을 읽었다.
두 며느리의 마음이 느껴져 더욱 그랬을 것이다.
한 달에 한두 번 딸 부부가 집에 오는데 사위가 별 말 없이 소파에 그림처럼 앉아서 텔레비전만 본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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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장 풀기 전 선물상자처럼 가슴 두근거리는 기대와 설렘도 있지만 염려와 두려움도 있다. 동네 친구 소영씨는 사위에 대한 불만을 가끔씩 털어 놓는다. 한 달에 한두 번 딸 부부가 집에 오는데 사위가 별 말 없이 소파에 그림처럼 앉아서 텔레비전만 본다는 것이다. 누구 집 사위는 망치며 드라이버를 들고 다니며 집안 구석구석을 살펴보고, 누구 집 사위는 맛집을 찾아내 맛있는 음식을 사주고 분위기 좋은 디저트 카페로 마무리하는 센스를 유감없이 발휘하고…. 누구 집 사위는 가수 임영웅의 ‘찐 팬’인 장모님을 위해서 ‘하늘의 별따기’라는 콘서트 티켓을 온 몸을 던져서 구해 오는데 우리 집 사위는 그림처럼 소파에 앉아 있기만 한다 대충 그런 내용이다.
그런 소영씨가 계단에서 넘어지면서 오른쪽 팔을 다쳐서 깁스를 했다. 남편과 둘뿐이지만 하루 세 끼 식사가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저녁마다 사위가 먹을 걸 사들고 들렀다. 근처에서 회의가 있어서 지나가는 길에 들렀다고 했다. 사위가 사 온 음식은 늘 푸짐해서 다음날 아침 식사도 가능했고 무엇보다 소영씨 부부가 좋아하는 것들이었다. 사위는 사 온 음식 질린다며 어느 날은 직접 비빔국수도 만들었다. 이렇듯 음식도 차리고 설거지도 하고 남편하고 바둑도 두었다. 배운 지 얼마 안 됐다는 사위를 매번 이기며 남편은 기분 좋아서 싱글벙글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우연히 사위가 떨어트리고 간 수첩을 봤다. 소영씨 부부가 좋아는 음식과 과일이 빼곡히 적혀 있었고 ‘주방 수도꼭지 패킹 새로 교체’, ‘작은 방 형광등 바꾸기’ 등 집안 손볼 곳도 야무지게 적혀 있었다. 사위는 무심하게 행동했지만 모든 건 다 장인장모를 위해 세심하게 계획된 일이었다. 알아보니 회의도 없었다. 매일 시청 근처 회사에서 지하철 40분 타고 처가에 와서 저녁 먹고 다시 광화문 근처 자기 집으로 간 것이다. 바둑도 사위는 직장인대회 나가서 일등까지 한 실력인데 일부러 알맞게 져준 것이다. 모든 걸 알고 소영씨 부부는 울었다. 내 딸 행복하게 잘 살 수 있겠구나 하는 안도감과 함께.
모든 건 시간이 필요하다. 메주로 장을 담그는 일도 충분한 숙성기간이 필요하고 도자기를 굽는 데도 알맞은 시간이 주어져야 금이 가지 않는데 하물며 전혀 다른 환경에서 살아 온 사람들이 한 가족이 되어가는 시간을 급한 마음에 함부로 단축시키려 해서는 안 된다. 단숨에 이루어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 필요한 만큼 시간을 주는 일.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조연경 드라마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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