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사회 자극제 기대되는 야전형 ‘차관보’ 리더십[광화문에서/유근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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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조직 개편을 취재하다 공무원 10여 명에게 이 같은 질문을 했다.
행정안전부가 최근 지방자치균형발전실장 자리를 없애고 차관보 직위를 신설하는 배경이 궁금해서였다.
한국 공직사회에서 차관보와 실장은 계급상으로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한 퇴직 공무원은 "실장 시절 손발이 묶인 채 올라오는 결재만 하다 시간이 갔다. 언제든 잘릴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조직 안정에 주력할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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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조직 개편을 취재하다 공무원 10여 명에게 이 같은 질문을 했다. 행정안전부가 최근 지방자치균형발전실장 자리를 없애고 차관보 직위를 신설하는 배경이 궁금해서였다. 그런데 공무원 대부분은 “정확히는 모르겠다”고 했다. 인사 업무를 담당해 본 한두 명만 어렴풋하게 차이를 알고 있었다.
한국 공직사회에서 차관보와 실장은 계급상으로는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두 직급 모두 ‘고위공무원 가급’으로 과거 ‘1급’으로 불렸다. 정무직인 차관 아래 직업 공무원이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자리다. 급여도 같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중요한 차이가 있다. 바로 일하는 방식이다.
실장은 국장급 고위공무원 등 부하들을 거느리고 일한다. 조직의 대소사를 관장하고 국실의 최종 결재자다. 굳이 말하자면 ‘만기친람(萬機親覽)형 리더’에 가깝다.
반면 차관보는 국장들에게 권한을 위임하고, 과제 중심으로 현안에 직접 대응한다. 조직 살림에서 벗어나 있는 대신 특정 과제에 집중할 여력이 있다. 이 때문에 일반적으로 특정 업무에 전문성을 가진 공무원이 임명되는 경향이 있다.
취재 중 만난 전직 공무원 상당수는 ‘실장’ 체제의 한계를 토로했다. 한 퇴직 공무원은 “실장 시절 손발이 묶인 채 올라오는 결재만 하다 시간이 갔다. 언제든 잘릴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조직 안정에 주력할 수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행안부가 2013년 이후 약 10년 만에 차관보 자리를 신설한 건 기존 국실 체제의 문법으로는 지방 소멸이란 이슈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해석된다. 조직 논리에서 벗어나 창의적이고 파격적인 시도를 해보라는 것이다. 차관보는 급변하는 시장에 유연하게 대응하는, 민간 기업의 애자일(Agile) 리더십을 발휘하기에도 적절하다.
1 대 1로 비교하긴 어렵지만 미국도 전문성 있는 차관보(Assistant Secretary)를 장차관 아래 여러 명 두는 경우가 있다. 한국을 담당하는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담당국 차관보는 전문성과 위상이 우리의 차관급보다 높게 인식되기도 한다. 한양대 김석은 행정학과 교수는 “미국은 차관보의 장점을 활용하기 위해 우리보다 전문성 있는 차관보를 많이 기용한다”고 말했다.
물론 모든 문제를 차관보가 실장보다 잘 처리할 것이라 단언할 순 없다. 자리만 만들고 권한을 안 주면 무용지물일 수도 있다. 다만 오랜 기간 노력했는데도 해결이 요원한 저출산 문제, 노동·교육·연금 등 개혁이 절실한 영역, 역할 변화를 모색 중인 통일 분야 등에 차관보를 투입하면 좋은 자극제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또 대통령실 출신 차관들이 부처를 틀어쥐고 경직된 운영을 한다는 비판이 나오는 상황에서 전문성을 지닌 차관보들이 윤활유 역할을 할 수 있다. “최고의 인재 전문가에게 권한을 이임하고 믿고 일을 맡기는 시스템으로 국정을 운영하겠다”는 윤석열 대통령의 초심에 부합하는 일이기도 하다.
유근형 사회부 차장 noe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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