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P가 장관과 통화한 후…" 前 해병 수사단장 진술서 놓고 진실공방
국방부 "사실관계 부정확… 그런 통화한 적 없다" 유감
(서울=뉴스1) 박응진 기자 = 이종섭 국방부 장관이 지난달 발생한 고(故) 채모 상병 사망사고에 대한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결과 보고서를 결재한 지 하루 만에 경찰 이첩 '보류'를 지시한 건 '정부 최고위층'의 의중 때문일 수 있단 주장이 제기됐다.
해병대 수사단장으로서 지난달 19일 집중호우 피해 실종자 수색작전 중 순직한 채 상병 사고 초동조사를 담당했던 박정훈 대령이 최근 국방부 검찰단에 제출한 진술서에 이 같은 정황을 추정할 수 있는 내용이 담긴 것으로 확인됐다.
그러나 관련 발언 당사자로 지목된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은 물론, 국방부 또한 박 대령의 해당 진술 내용을 부인하고 나서는 등 박 대령 측과 군 당국 간에 재차 진실 공방이 벌어지고 있다.
박 대령은 채 상병 사고가 발생한 지난달 19일부터 자신이 수사단장 보직에 해임된 이달 2일까지의 상황을 일자별로 정리한 진술서를 28일 국방부 검찰단에 제출했다.
29일 뉴스1이 입수한 박 대령의 진술서 내용을 살펴보면 박 대령은 지난달 30일 오후 이 장관 집무실에서 채 상병 사고에 대한 해병대 수사단의 조사결과 보고서 내용을 이 장관에게 직접 보고했다. 현장엔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을 비롯해 해병대 및 국방부 관계자들도 배석했다.
해병대 수사단의 보고서엔 채 상병 사고와 관련해 '임성근 해병대 제1사단장 등 관계자 8명을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로 경찰에 이관할 예정'이란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이 장관은 당시 해당 보고서를 결재(서명)했고, 해병대 수사단에서 이튿날(7월31일) 그 내용을 언론에 설명할 예정인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박 대령은 지난달 31일 오후 국방부 출입기자단을 대상으로 채 상병 초동조사 결과를 설명하기 위한 준비를 하던 중 김 사령관으로부터 "언론 브리핑이 취소됐다"는 연락을 받고 부대(해병대사령부)로 복귀해야 했다.
박 대령은 이후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으로부터 "(채 상병 사고 보고서에서) 혐의자와 혐의내용을 다 빼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제목을 빼라"는 내용의 전화 연락을 받았다고 진술서에 적었다.
박 대령에 따르면 유 관리관과의 통화 뒤 김 사령관도 "국방부에서 경찰에 인계할 수사 서류에서 혐의자와 혐의 내용을 빼라는데 어떻게 하느냐"는 물었다고 한다.
이에 박 대령이 "도대체 국방부에서 왜 그러는 거냐"고 되묻자, 김 사령관은 "(오늘) 오전에 대통령실에서 'VIP' 주재 회의 간 1사단 수사결과에 대한 언급이 있었고, VIP가 격노하면서 (국방부) 장관과 통화한 후 이렇게 됐다"고 답했다는 게 박 대령의 주장이다.
박 대령의 진술서엔 "정말 VIP가 맞느냐"는 물음에 김 사령관이 고개를 끄덕이며 맞다고 했던 것으로 돼 있다.
박 대령은 진술서에서 '격노한 VIP'가 누군지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았다. 그러나 군과 정부 관계자들이 통상 대통령과 같은 정부 최고위급 인사를 지칭할 때 'VIP'란 표현을 쓴다. 즉, 박 대령의 진술서 내용만 놓고 보면 '대통령이 해병대 수사단의 채 상병 사고 조사 결과를 보고받은 뒤 국방부 장관과 통화했고, 이후 국방부에서 해병대 측에 사고 보고서의 경찰 이첩 보류 및 수정 등을 요구했다'는 해석도 충분히 가능해 보인다.
박 대령은 지난달 30일 이 장관에게 채 상병 사고 조사결과를 보고한 뒤 국가안보실로부터 "보고서를 보내 달라"는 요청을 받고 한 차례 거절했으나, 이후 "언론 브리핑용 자료라도 보내라"는 김 사령관의 지시에 해당 자료를 안보실 관계자에게 보냈다.
이런 가운데 국방부 검찰단은 이날 박 대령의 진술서 내용을 확인하고자 이날 경기도 화성 소재 해병대사령부에서 김 사령관을 상대로도 조사를 진행한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김 사령관은 박 대령의 진술서에 적힌 VIP 언급 등에 대해 "그런 사실이 없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 국방부도 박 대령의 진술서 중 VIP 언급에 관한 내용이 보도되자 "전 해병대 수사단장 수사와 관련해 김 사령관이 'VIP가 격노하면서 장관과 통화한 후 이렇게 됐다'고 말했다는 주장을 인용해 보도한 내용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는 입장을 내놨다.
국방부는 "당시 이 장관은 보도에서 주장하는 내용을 통화한 바 없으며, 김 사령관도 관련 내용을 들은 바 없다"며 "사실관계가 정확하지 않은 피의자 측 주장 위주의 보도에 대해 유감을 표한다"고 밝혔다.
'피의자', 즉 박 대령은 이달 2일 채 상병 사고 조사결과 보고서 등 관련 서류를 경찰에 인계토록 했다가 수사단장 보직에서 해임돼 현재 국방부 검찰단에 '항명' 혐의로 입건돼 있는 상태다. 박 대령이 채 상병 사고 보고서 등의 '경찰 이첩을 보류하라'는 이 장관 및 김 사령관의 "정당한 지시를 따르지 않았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박 대령은 채 상병 사고 보고서 등을 경찰에 인계할 때까지 이 장관이나 김 사령관으로부터 '보류하라'는 지시를 명시적으로 듣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박 대령 측은 오히려 채 상병 사고 관련 혐의자 명단에서 임 사단장을 빼기 위한 등의 목적에서 국방부 관계자들이 직·간접적으로 '압력'을 행사했다고 의심하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국방부조사본부는 해병대 수사단의 채 상병 사고 조사기록에 대한 재검토 결과 "임 사단장 등은 혐의를 특정하는 게 제한된다"며 대대장 2명에 대해서만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를 적시한 사고 관련 기록을 이달 24일 경찰에 이첩 및 송부했다.
pej86@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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