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일 만에…인권위, 박정훈 대령 ‘긴급구제’ 신청 기각
박, 진술서에 “사령관이 ‘VIP, 국방장관에 격노했다’ 말해”
국가인권위원회가 채모 해병대 상병 사망 사건을 수사한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에 대한 긴급구제 신청을 기각했다. 박 대령과 관련한 진정이 접수된 지 15일 만이다. 군인권보호관인 김용원 인권위원은 29일 입장문을 내고 “군인권보호위원회는 회의를 개최해 군인권센터가 지난 14일 제출한 해병대 전 수사단장에 대한 항명죄 수사 및 징계 중지, 국방부 검찰단장 직무 배제 등 긴급구제 조치를 취해달라는 신청을 기각하기로 의결했다”고 밝혔다.
이날 회의는 지난달 19일 채 상병이 숨진 지 41일 만, 지난 14일 박 대령 관련 진정이 접수된 지 15일 만에 이뤄졌다. 당초 지난 18일 송두환 인권위원장이 긴급 상임위원회를 소집해 이 문제를 논의하려 했으나 군인권보호관인 김용원 상임위원의 병가와 이충상 상임위원의 출장 때문에 무산됐다.
이 문제로 지난 28일 열린 인권위 전원위원회에서는 위원들 간에 첨예한 언쟁이 벌어졌다. 김 위원은 “안건 상정에 앞서 진행발언을 하겠다”며 송 위원장과 박진 사무총장의 문책을 요구했다. 지난 18일 자신이 건강상 문제로 불참 의사를 명백히 밝혔음에도 임시 상임위 개최를 강행했고, 이로 인해 자신이 ‘꾀병을 이유로 불참을 통보한 상임위원’으로 해석되는 언론 보도가 이어졌는데도 인권위가 아무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 위원도 “저도 피해자라 말씀드린다. 영상 회의를 할 수 있는 앱(애플리케이션)이 있어야 하는데 저한테는 없었다”고 했다. 이에 송 위원장은 “사안이 긴급해 다음주로 넘어가면 의미 없게 돼버려 임시 상임위를 열었다”며 “김 위원과 개최 협의가 된 거로 알았다”고 답변했다. 그러는 동안 인권위가 지난 9일 국방부에 요구한 ‘군검 수사기록 즉시 경찰 재이첩’ ‘수사단장 집단항명죄 등 수사 즉각 보류’는 하나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군은 24일에야 채 상병 사건 기록을 경북경찰청에 넘겼다. 애초 조사에서 과실치사 혐의가 적시됐던 임성근 사단장, 여단장, 중대장 등의 혐의는 빠졌다.
국방부가 채 상병 순직 사건 수사기록의 경찰 이첩을 보류한 데는 윤석열 대통령의 뜻이 작용했다고 박 대령이 주장한 것으로 29일 확인됐다. 박 대령은 전날 이 같은 내용이 담긴 사실관계 진술서를 제출했다.
박 대령은 지난달 30일 오후 4시30분쯤 이종섭 국방부 장관에게 경북경찰청에 이첩해야 할 수사 결과를 보고하고 승인을 받았지만 다음날 이첩이 취소됐다. 진술서에 따르면 지난달 31일 오후 3시18분쯤 유재은 국방부 법무관리관이 박 대령에게 전화해 사건 서류에서 “혐의자와 혐의 내용을 다 빼라, 업무상 과실치사 혐의 제목을 빼라”고 했다. 박 대령이 김계환 사령관에게 “도대체 국방부에서 왜 그러는 것입니까”라고 질문했고, 김 사령관은 “오전 대통령실에서 VIP(대통령) 주재 회의간 1사단 수사 결과에 대한 언급이 있었고 VIP가 격노하면서 장관과 통화한 후 이렇게 되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박 대령이 “정말 VIP가 맞습니까”라고 묻자 김 사령관은 고개를 끄덕이며 맞다고 했다고 진술서에 명시됐다.
윤기은·박은경 기자 energyeu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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