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형준 예술의전당 사장 “순수예술 활성화 주력… 알려지지 않은 음악영재 적극 발굴” [세계초대석]
음악당에 비해 오페라극장 위상 낮아
젊은 성악가 많이 세워 저변 확대 도모
문예기관 첫 공연 영상화 시스템 마련
세계적인 음반사 도이치그라모폰과
공연영상 공동제작 방안 등 긍정 협의
1993년 봄, 제6회 ‘교향악축제’가 열린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음악당 콘서트홀 무대. 오케스트라 협연자로 나선 앳된 얼굴의 피아니스트가 리허설 도중 조금 긴장한 낯빛으로 피아노 앞에 앉아 있다. 미국 맨해튼 음대로 유학을 떠나 피아노과에서 학사·석사·박사를 마치고 돌아와 처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무대에 섰으니 그럴 만했다. 그 젊은 피아니스트는 몰랐을 것이다. 훗날 피아노 없이도 예술의전당 무대에 오를 날이 올 수도 있다는 걸.
그만큼 장 사장으로선 ‘후배 예술인들을 위해서라도 어떤 전임자들보다 잘 해내야 한다’는 부담이 컸다. 게다가 공연예술계에 널리 알려지지 않은 데다 1995년부터 줄곧 서울대 음대 피아노과 교수로 재직한 그가 예술의전당을 제대로 이끌어 나갈지 걱정하는 시선도 적지 않았다. 취임 이후 한동안 마음이 무거웠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렇게 1년여가 지난 지금, ‘장형준호’는 우려를 떨쳐내고 순항하는 모습이다. 예술가와 경영자로서의 균형감을 발휘해 예술의전당이 본연의 역할에 충실할 수 있도록 하면서 세계적인 클래식 음반사 도이치그라모폰(DG)과 손잡기로 하는 등 세계화에도 힘쓰고 있다.
지난 24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 자리한 집무실에서 만난 장 사장은 “취임 당시 각오가 어마어마했는데 4개월 지나면 벌써 임기(3년)의 절반”이라며 마음을 다잡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예술의전당 사장에 임명됐을 때 어떤 각오였나. 부담이 만만찮았을 것 같은데.
“예술의전당은 예술인들이 사랑하는 기관인데 팬데믹 때문에 공연예술이 직격탄을 맞고 처참하게 무너진 상태라 이걸 극복하는 게 우선이었다. 아울러 예술인으로서 생각해온 순수예술 분야를 강화하기로 했다. 저희(예술의전당)의 이상과 예술인들의 꿈을 실현시킬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기대와 걱정이 교차했고, 3년은 짧으니 빨리 추진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내가 본보기로 잘해야만 후배 예술인들에게도 이런 기회가 열리게 될 것이란 책임감도 들었다. 그래서 초기에는 잠도 제대로 못 잘 만큼 열심히 공부했다. 다행히 직원들 역량이 탄탄해서 빨리 적응할 수 있었다.”
―올해 전관 개관 30주년의 의미는.
“‘순수예술 저변 확대와 진흥’이라는 목적 아래 건립된 예술의전당은 1988년 음악당(콘서트홀·IBK챔버홀·리사이틀홀·인춘아트홀)과 서예박물관을 시작으로 1990년 한가람 미술관과 디자인미술관, 1993년 오페라하우스(오페라극장·CJ토월극장·자유소극장)를 개관했다. 올해는 개관 35주년이면서 전관 개관 30주년으로 뜻깊은 해이다. 앞으로 새로운 30년을 위해 미래 비전(목표)을 준비하고 추진해 나가야 하는 시점이다. (개인적으로) 예술의전당이 짧게는 5년에서 길게는 10년까지 갈 수 있는 계획을 짰는데, 예술사업의 틀은 어느 정도 완성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 예술의전당에서 가장 아쉬웠던 부분이 오페라극장이었다. 오페라는 성악과 기악, 미술, 무용 등 다양한 장르가 결합된 종합예술인데 국내 오페라극장은 사실상 예술의전당이 유일하다. 그런데 음악당(콘서트홀)과 비교해보면 위상이 별로다. (공연 시설과 작품, 음악가 등이) 세계적 수준인 음악당은 명성이 높은 반면 오페라극장은 알아주지 않는다. 이래선 안 된다고 생각했다. 주변에서 ‘장형준이 사장됐으니 예술의전당은 이제 피아노 쪽만 잘 되겠다’고 하는 소리도 들었는데, 난 이미 잘 되고 있는 그쪽엔 관심도 없었다. 기악뿐 아니라 성악에서도 백석종(테너) 등 세계 무대에서 스타로 활동하거나 재능이 뛰어난 젊은 성악가가 많은데 정작 국내에선 이들을 보기 힘들다. 무대에 설 기회 자체가 적어 뮤지컬 등 아예 다른 길로 가기도 한다. 오페라가 제작 비용이 많이 들고 종합예술이라 만만한 작업이 아니지만 국내 오페라 저변을 확대하고 젊은 성악가들이 큰 무대에 설 기회를 가질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음악영재를 조기 발굴하고 육성하기 위해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1999년 개원한 예술의전당 음악영재 아카데미는 임윤찬과 조성진(피아니스트), 양인모(바이올리니스트) 등 지금까지 7000여명의 졸업생을 배출하며 클래식 전문 연주자의 산실이 됐다. 그런데 금관부가 없었다. 우리나라 오케스트라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이 금관인 만큼 금관 연주자 육성 차원에서 올해 금관부를 개설했다. 아울러 영재들이 너무 경쟁에 노출되지 않고 음악을 즐겁게 배울 수 있도록 운영할 방침이다. (아이마다 성장 속도와 기질 등이 다른데) 탁월함만 추구하다 보면 쉽게 지쳐버릴 수 있어서다. ‘보컬 리사이틀 시리즈’ 등 국내외 유명 연주자 및 단체의 기획공연과 연계한 마스터클래스(명인 강좌)도 영재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또 임윤찬, 조성진처럼 섭외 자체가 힘든 연주자도 있지만 아직 알려지지 않은 보석 같은 친구가 많은데 이들을 적극 발굴하고 소개할 것이다.”
―문화예술 향유 플랫폼은 어떻게 구축하나.
“그렇다. 우리나라에 예술 인재가 많은데 해외에서 활동하는 게 쉽지 않다. 예술의전당이 (세계적 클래식 전문 방송인) ‘유니텔 클래시카’ 등 해외 채널과 계약해 이들의 공연·작품 영상을 소개한다면 해외 진출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예술의전당 공연장이 해외 시청자들의 눈길을 끌면서 그 자체로 이슈가 될 수도 있다. (그런 맥락에서) 도이치그라모폰과도 공연영상 공동제작 방안 등을 협의 중인데 서로 긍정적이어서 조만간 가시화할 것 같다.”
―새 비전을 안정적으로 추진할 수 있을지, 미술관과 서예관은 어떤지도 궁금하다.
“내부에선 소통을 잘한 리더로, 외부에선 예술의전당 본연의 모습을 많이 찾아준 ‘예술가 기관장’으로 기억됐으면 한다.”
●1962년 서울 출생 ●1986∼1992년 미국 맨해튼 음대 피아노과 학사·석사·박사 ●1995년 서울대 음대 피아노과 교수 ●2005~2009년 스코틀랜드 국제 피아노 아카데미 예술감독 ●2008~2017년 서울대 국제 피아노 아카데미 조직위 위원 ●2009~2020년 클리블랜드·더블린·본 베토벤·에네스쿠·서울 국제·에피날 모스크바 등 국제 피아노 콩쿠르 심사위원
대담=송용준 문화체육부장, 정리=이강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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