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중동 한류, 언제든 꺾일 수 있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은 2021년 12월 기준으로 ‘메나(MENA)’로 불리는 북아프리카·중동 지역 한류 팬이 10년 사이 130배 증가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중동에서 한류는 2008~2009년 한국 드라마를 시작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했으며, 현재 K팝을 중심으로 애니메이션, 게임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장르의 한국 문화 콘텐츠들이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사우디아라비아 정부는 한국 엔터테인먼트 기업과 양해각서(MOU)를 체결하거나 사우디 국부펀드를 통해 기업에 지분 투자를 하는 등 한류를 상품적 가치로 인식하고 있다. 동시에 방탄소년단(BTS) 콘서트 개최 등 사우디 정부 주도의 적극적인 한류 수용으로 대중의 한류에 대한 호감이 지속적으로 높아지고 있다. 이에 따라 중동의 한류 열풍이 어떠한 방향으로 발전될지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이에 한국 정부와 기관들은 한류 현상을 발판 삼아 어떻게 중동 시장 확대를 꾀할지 고심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몇몇 기관이 중동 진출 방안에 대한 자문을 해달라고 요청했다. 자문 내용은 주로 각 기관이 진출을 모색하는 중동 지역의 문화와 특성 등에 관한 것이었다. 하지만 자문을 의뢰한 기관들은 중동 지역을 한국 문화를 알리는 것이 아닌 투자와 소비를 늘리기 위한 ‘시장’ 개념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런 단편적인 인식은 한국 대중문화에 내포돼 있는 중동 지역에 대한 부정적이고 편협한 고정관념에서 비롯됐다고 볼 수 있다.
2017년 방영된 드라마 <죽어야 사는 남자>는 이슬람 문화를 왜곡하고, 중동 문화를 희화화했다는 논란에 휩싸였다. 드라마에는 히잡을 두르고, 비키니 수영복을 입은 여성들이 등장하고, 아랍식 옷을 입은 남성 배우가 와인을 마시는 등 중동 문화를 왜곡시키는 장면들이 나왔다. 논란이 커지자 제작진은 한국어·영어·아랍어로 작성된 공식 사과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한류 열풍이 그치지 않고 있는 올해에도 중동 문화를 그릇되게 묘사하는 드라마가 방영됐다. 지난달 방영된 드라마 <킹더랜드>에선 ‘아랍 왕자’가 여성편력을 자랑하며 술집에서 와인을 마시는 장면이 나왔다. 중동 지역의 한류 팬들은 “한국 드라마가 아랍인들을 화나게 하다”라는 해시태그를 달면서 무례함을 지적했다.
이런 드라마 내용은 아랍뿐만 아니라 이슬람 문화권 시청자에게도 불쾌감을 주기에 충분했다. 해외 시청자들은 문제가 된 드라마를 방영한 방송국에 사과를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방송국이 내놓은 사과문은 해외 시청자들의 불만을 누그러뜨리기에는 불충분했다.
한국 대중문화를 실시간으로 접할 수 있는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가 전 세계로 확산돼 있는 현실에서 아랍·이슬람 문화를 왜곡하는 드라마가 방영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중동 지역의 한류 열풍은 언제든 꺾일 수 있다. 자신들의 문화를 존중하지 않는 콘텐츠는 외면하기 마련이다. 중동 지역 시청자들의 신뢰를 잃었는데 ‘중동 진출 방안 모색’이란 말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문화 강국’을 국가 전략으로 내세우고 있는 지금, 세심하게 다른 나라의 문화를 존중하는 자세가 요구된다.
구기연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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