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복현 금감원’은 뭘 꿈꿨나

전슬기 2023. 8. 29. 19: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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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현 금융감독원장. 연합뉴스

[한겨레 프리즘] 전슬기 | 금융팀장

금융감독원의 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 펀드 재검사가 부실 논란에 휩싸였다. 이복현 금감원장이 야심 차게 보도자료 첫장에 넣은 ‘라임펀드 특혜성 환매’, ‘횡령 적발’ 등에 명확한 근거가 없다는 공방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금감원 내부에서조차 “부끄럽다”라는 말이 흘러나온다.

금감원의 정치화는 이 원장 임명 때부터 우려됐던 사안이다. 그는 이런 선입견을 벗어보고자 지난 1년여간 부단히도 여러 행보를 해왔다. 그러나 결국 ‘금융검찰원’을 만든 원장으로 남게 됐다. 그는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의도한 결과라 시원할까, 무리수를 뒀다며 아쉬워할까.

지금까지 상황을 복기해보자. 지난해 6월 이 원장 임명 때부터 많은 이들은 금감원의 정치화를 떠올렸다. 그가 이른바 ‘윤석열 사단’의 막내인 특수통 검사였기 때문이다. 금감원 본연 업무보다 검찰식 사정 기능이 커질 것이라는 예상이 나왔다. 고물가·고금리로 금감원의 금융회사 건전성 감독, 소비자 보호 등의 역할이 중요한 시기에 ‘칼날’만 휘두르는 금감원장이 왔다는 우려가 컸다.

세간의 우려를 아는 듯 이 원장은 취임 직후 기자들과 만나 이렇게 말했다. “내가 와서 검사·조사만 강화할 것으로 보는데, 지금은 경제가 전시상황이라 리스크 관리부터 잘해야 할 것 같다. 금감원은 불을 끄는 역할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열심히 공부하겠다.” 금감원 본연의 업무를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얘기였다. 라임 등 사모펀드 사태 재검사를 두고도 “검사가 끝난 사안을 재검사하는 건 조직적 부담도 있다”며 말을 아꼈다.

이후 이 원장은 경제 리스크 관리와 관련한 광폭 행보를 이어갔다. 강원도 레고랜드 사태, 부동산 프로젝트 파이낸싱(PF) 불안 등 고비마다 적극적인 대응에 나섰다. 이른바 ‘F4 회의’(추경호·이창용·김주현·이복현) 참석자들 사이에서 “이해력이 빠르다”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관치 논란도 불사했다. 라임펀드 사태와 관련해 중징계를 받은 손태승 전 우리금융그룹 회장이 연임 도전 검토에 나서자 ‘경고장’을 날리고, 이자장사로 고수익을 내는 은행들에 대출금리 인하를 압박하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 24일 라임·옵티머스·디스커버리 펀드 재검사를 발표하면서 이 원장의 기존 발언과 행보들은 모두 무색해졌다. 모든 이들이 우려했던 금감원의 노골적인 정치화를 그대로 드러냈기 때문이다. 이 원장은 라임자산운용이 다른 펀드 자금 또는 고유자금으로 환매해준 위법행위를 두고 투자자 쪽은 문제가 없다면서도 ‘다선 국회의원’의 ‘특혜성 환매’를 부각했다. 그러면서 다선 국회의원 투자자로 지목된 김상희 의원(더불어민주당)의 환매 이면에 부당한 압력이나 대가가 있었는지 명확한 근거를 내놓지는 못했다. 라임펀드 피투자기업의 횡령 혐의도 부실하다. 횡령한 돈이 정치권에 흘러갔을 가능성을 언급했으나 자료 어디에도 그 근거는 명시되지 않았다. 상당수는 이미 검찰에서 들여다본 ‘재탕’ 사례이기도 했다. 비금융회사의 횡령은 금감원의 업무영역이 아닌데도 무리한 검사 결과를 내놓은 것이다.

이번 재검사로 이 원장은 ‘금융검찰원장’이라 해도 할 말 없는 처지가 됐다. 그동안의 관치 논란도 훗날 ‘잘못된 관치’로 평가될 가능성이 크다. 이 원장이 금감원을 정치화하면서 그간 행보들에도 다른 목적이 있었던 것 아닌지 의심이 커질 수 있어서다. 올바른 ‘관치’의 필수 요소는 공공선인데, 이를 무시하고 정치에 뛰어든 결과다.

그래서 이 원장에게 묻고 싶다. 본인이 그렸던 금감원장은 어떤 모습이었는지. 취임 직후 발언처럼 독립성을 지키고 본연의 업무를 잘 수행하는 원장이 되고 싶었다면 지금이라도 무리수를 거둬들여야 한다. 반면 금감원장은 애초부터 다음 자리를 위한 도구였고, 그간의 행보는 이를 위한 발판이었다면 아쉬움은 없을 것 같다. “정치가 금융감독을 덮었다. 원장은 떠나면 되지, 직원들은 어떡하냐”라는 비극만 금감원 주위를 맴돌 뿐이다.

sgj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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