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의 한국, 안과 밖] 한동훈 장관의 이민철학이 우려스러운 이유
박노자 | 노르웨이 오슬로대 교수(한국학)
나는 일종의 이중 이민자다. 한국에서는 귀화인이면서 노르웨이에서는 이민 노동자다. 그래서인지 이민정책에 관한 일간지 기사들은 빠짐없이 챙겨 읽는다.
그 일환으로 지난 7월15일 ‘제46회 대한상의 제주포럼’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현 정부의 이민정책을 강연한 내용도 꼼꼼히 읽어봤다. 이 강연에서 내가 동의할 수 있었던 거의 유일한 내용은, 이민 없이 한국의 미래가 없다는 말이었다. 세계 최저 출산율을 기록하는 이 나라에서 이 주장에 이의를 제기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 강연에서 한 장관이 드러낸 이민 문제에 대한 몰이해·몰상식이 한국 이민정책의 기조로 남아 있는 한 우리 미래를 담보할 이민자들의 사회통합은 영영 이루어질 수 없을 것이라는 점이다.
한 장관은 “외국인이 들어왔을 때 자기들끼리 문화를 유지하면서 살아가면 결국 통합은 이뤄지지 않는다”며 “한국어 잘하는 분이 들어오는 것이, 용접을 잘하는 분 들어오는 것보다 더 낫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과연 이민 오면서 새 나라의 언어를 잘하는 사람들이 그렇게 많을까? 한때 미국 컬럼비아대학교에서 공부했던 한 장관은, 아마도 뉴욕의 한인타운 등 재미 한인들의 집거지들을 직접 봤을 것이다. 한인들이 이민 초창기에 그런 집거지부터 찾아 터를 잡는 이유는, 재중국동포들이 서울에 오면 대림동에 먼저 가서 정착하는 이유와 똑같다. 그나마 익숙한 언어, 문화 환경 속에서 타국에서의 삶에 적응해 나가는 지난한 과정을 거치는 것이 그래도 낫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많은 나라에서 이민자들이 보편적으로 겪는 과정에 불과하다.
문제는, 이민자들에게 몇년 뒤에 집거지를 떠나도 될 만큼 한국어 학습이 왜 이뤄지지 않느냐는 부분이다. 이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나는 최근 몇년 광주시 월곡동 고려인마을과 인천시 함박마을의 고려인타운 등 고려인 동포들의 집거지를 답사해 왔다.
내가 거기에 들었던 대답은 딱 한가지였다. 국내로 이주한 고려인들의 거의 70%가 극도로 힘든 장시간 단순노동에 종사하고 있다. 다수는 비싼 집세를 낼 돈부터 급해 잔업, 특근도 밥 먹듯 해야 한다. 매일 파김치가 돼 늦게 집에 돌아오고, 주말에도 종종 일해야 하므로 한국어를 배울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만약 한국 정부가 이 이민자들에게 예컨대 싼 임대료에 영구임대주택을 제공해준다면, 이들은 일을 덜 하고 한국어를 배우는 데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할 수 있을 것이다. 한데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공공임대주택을 위한 예산은 22.7%로 줄기도 했지만, 일차적으로 이민자들을 주거복지의 대상으로 삼지도 않는다. 그러면서도 ‘한국어 학습’을 그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모순 아닐까?
한 장관은 나아가 “현재 E-9 비자로 들어온 비숙련 외국인 노동자들이 10년 후에는 나가야 하므로 불법체류로 머물려고” 하는데, “우리나라에서 10년간 성실히 일하고 봉사한 노동자는 정주권이 있고 가족을 초청할 수 있는 숙련인력 비자 E-7-4를 얻을 기회를 주겠다”며 강연장에 모인 기업인들에게 약속했다. 그런데 이 말을 뒤집어 생각해보자. 가족을 동반할 수 있는 숙련인력 비자(E-7-4)를 얻을 기회를 획득하기에 앞서서 외국인 노동자들은 곁에 가족도 없이 “10년 동안 성실히 일하고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 아닌가. 한 장관이 언급한 E-9 비자로는 가족을 초청할 수 없으며, 실제 일부 “비숙련 외국인 노동자”들이 가족을 동반하고 있지만 이는 불법이나 편법의 영역에 속한다.
나는 한 장관에게 본인은 배우자, 미성년 자녀와 생이별하며 외국에서 10년 동안 혼자 지내면서 일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본인이 그렇게 할 자신이 없다면 남에게 이토록 쉽게 혈육들과 이별하는 고통을 강요해서는 안 된다. 사실 외국인 노동자의 자유를 크게 제한하는 고용허가제를 철폐하고, 외국인 노동자들에게 정주권과 가족 동반의 권리를 부여하는 노동비자를 발급해주면 될 일이다. 한데 한 장관을 포함한 보수 관료들은, 인권단체들이 “현대판 노예제”라고 비판하는 고용허가제를 계속 붙들고 있다. 그들에게 “우리나라에서 성실히 일하고 봉사하는 노동자”들의 인권보다는, 그 노동자들에 대한 “통제”의 권한이 훨씬 더 중요하다.
한 장관의 발상에서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통제의 대상인 반면 그들을 고용하는 기업인들은 통제망의 일부다. 한 장관은, ‘제주포럼’에 모인 기업인들에게 “기업인 여러분들이 현장에서 10년간 지켜보고 ‘숙련인력 비자로 전환해줄 만한’ 그런 분들을 추천”해달라고 했다. 만약 외국인 노동자의 비자 전환이 고용주의 추천에 달려 있다면, 이는 과연 직장에서의 역학 관계에 어떤 영향을 줄까.
외국인 노동자 대부분은 노조에 가입되어 있지 않아 필요할 때 노조의 지원을 받지 못한다. 사업장 이동도 근로계약 기간 만료나 근로계약 해지 이외에 아주 특별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만 가능하다. 즉, 기업주에게 강력하게 예속된 처지이다. 여기에 비자 전환 후보자들을 추천할 권한까지 기업주에게 준다면 과연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기업주들의 갑질은 어느 정도로 심해질까? 한 장관은 해외에서 벌어지는 “인재쟁탈전”까지 언급했지만, 과연 무한 갑질이 가능한 한국의 직장에 남고 싶어 할 외국 인재들이 얼마나 될까.
인재 유치와 이민자들의 사회통합을 원한다면 먼저 이민통제 완화, 고용허가제 철폐와 노동권, 가족 동반, 직장 이동의 권리 등을 보장해주는 노동비자 도입, 이민자들에 대한 주거 등 복지혜택 적용이 필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먼저, 외국인을 단순히 ‘인력’으로 보는 한 장관과 달리 한국에 오는 이민자들을 그들의 출신 국가·종교·혈통과 관계없이 우리와 동등한 인간이자 모든 사회적 권리들을 갖춘 이웃으로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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