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황, 러 청년들에게 "차르의 후예들"…우크라 "유감" 러 "환영"(종합)
우크라 정교회 대주교 "큰 고통과 우려"…크렘린궁 "매우 흐뭇해"
교황청 "교황, 러시아 제국주의 미화할 의도 없어" 해명
(서울·바티칸=연합뉴스) 황윤정 기자 신창용 특파원 = 프란치스코 교황이 러시아 청년 신자들에게 '차르(러시아 황제)의 후예임을 기억하라'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28일(현지시간)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달 25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모인 청년 신자들에게 한 실시간 화상 연설에서 이같이 언급한 것으로 전해졌다.
교황은 이날 미리 준비한 연설을 스페인어로 읽었지만 마지막에는 즉석에서 이탈리아어로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것(heredity)을 잊지 말라"며 "여러분은 위대한 러시아의 후예(heir)"라고 말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교황은 "성인들과 왕들의 위대한 러시아, 표트르 대제와 예카테리나 2세의 위대한 러시아, 위대한 러시아 제국, 많은 문화" 등을 언급하면서 "여러분은 위대한 어머니 러시아의 후예이며 앞으로 나아가라"고 했다.
교황청은 다음날인 26일 교황의 연설문을 공개했지만 마지막 발언은 연설문에 빠져 있다고 로이터는 전했다. 논란이 된 마지막 발언을 하는 교황의 영상은 종교 사이트 등에 올라와 있다.
교황의 이 같은 발언이 알려지자 우크라이나는 유감을 표명했다.
올레흐 니콜렌코 우크라이나 외무부 대변인은 페이스북에 교황의 발언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하려는 러시아의 선전과 맞닿아 있다고 비판했다
우크라이나인들을 죽이고 우크라이나 도시와 마을의 파괴를 정당화하기 위해 크렘린이 내세우는 '위대한 어머니 러시아'를 구해야 할 필요성 등에 대한 선전과 맞닿아 있다는 것이 니콜렌코 대변인의 지적이다.
그는 "본질적으로 러시아의 만성적인 공격성에 일조한 강대국이라는 개념이 교황에 의해 고의든, 고의가 아니든 간에 나온 것은 매우 유감"이라고 덧붙였다.
우크라이나 정교회 스뱌토슬라우 셰우추크 대주교도 성명을 내고 "교황의 발언이 큰 고통과 우려를 자아냈다"면서 침략국(러시아)의 신(新)식민지 야망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셰우추크 대주교는 교황청에 해명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폴란드에서 벨라루스 관련 보도를 하는 사이트 'Nexta'는 "폴란드, 리투아니아, 벨라루스의 가톨릭 신자들은 '계몽된 (러시아) 제국'에 대항해 세차례 봉기를 일으컸다"고 꼬집었다.
로이터는 교황이 언급한 표트르 대제의 경우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하기 위한 예로 제시해온 인물이라고 짚었다.
앞서 푸틴 대통령은 지난해 6월 표트르 대제 탄생 350주년 기념행사에서 표트르 대제가 스웨덴과 벌인 북방전쟁을 언급하면서 "(러시아 영토를) 되찾고 강화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라고 말한 바 있다.
푸틴 대통령은 자신의 집무실에 표트르 대제의 초상화를 걸어둘 정도로 그를 존경하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당시 이 발언도 자신을 표트르 대제와 비교하며 우크라이나 침공을 정당화하는 것이라는 해석이 나왔다.
크렘린궁은 29일 프란치스코 교황의 발언과 관련해 "러시아는 풍부한 유산을 간직하고 있으며, 교황이 러시아 역사를 아는 것은 좋은 일이고 매우 흐뭇하게 생각한다"며 환영했다.
이처럼 프란치스코 교황의 발언을 두고 우크라이나와 러시아가 극단적으로 상반된 반응을 보이고 마치 교황이 러시아를 두둔하는 것처럼 해석되자 교황청이 진화에 나섰다.
교황청은 29일 성명을 내고 교황이 과거 러시아 제국주의를 미화할 의도가 없었다고 밝혔다.
교황청은 "교황은 젊은이들이 러시아의 위대한 문화와 정신적 유산에서 긍정적인 모든 것을 보존하고 증진하도록 격려할 의도로 발언한 것일뿐 일부 역사적 시기를 언급하며 제국주의 논리와 정부 인사를 찬미하려는 의도는 결코 없었다"고 해명했다.
지난해 2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뒤 프란치스코 교황은 거의 모든 공개 석상에서 "순교한 우크라이나"를 언급해왔다. 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자행한 행위가 잔인하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한 국가의 자결권을 침해했다고 비판해왔다.
그러나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크라이나 전쟁의 책임을 두고 푸틴 대통령을 직접적으로 비난한 적은 한번도 없었다.
지난해에는 차량 폭탄에 의해 숨진 러시아의 극우 사상가 알렉산드르 두긴의 딸 다리야 두기나에 대해 무고한 전쟁의 희생자라고 말해 우크라이나의 반발을 사는 등 실언(gaffe)으로 보이는 발언들을 했다고 로이터는 지적했다.
yunzhen@yna.co.kr, changy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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