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념’이 제일 중요하다는 대통령…왜? 지금인가요?

조태흠 2023. 8. 29. 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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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윤석열 대통령의 발언에서 가장 눈에 띄는 단어는 '이념'입니다.

'자유민주주의'와 '공산 전체주의'를 대비하면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이념'의 '방향'을 명확히해야 한다는 뜻을 연일 강조하고 있습니다.

취임사에서부터 나왔던, '자유'라는 보편 가치를 국정의 중심으로 삼는 데서 더 나아가, '자유민주주의' 대 '공산 전체주의'의 대결로 사회 갈등 구조를 바라보는 듯합니다.

'하반기 국정의 중심은 경제'라고 한(22일,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 윤 대통령이 '이념'을 강조하는 이유는 뭘까요?

■ "제일 중요한 게 이념…철 지난 이념이 아닌 제대로 된 철학"

윤석열 대통령은 28일 국민의힘 연찬회에 참석해 "제일 중요한 게 이념이다. 철 지난 이념이 아니라 나라를 제대로 끌고갈 수 있는 철학이 이념"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철 지난 엉터리 사기 이념에 매몰되는" 경우를 언급하며, "어느 방향으로 우리가 갈 것인지를 명확하게 설정하고 현재의 좌표가 어디인지 분명히 인식해야 우리가 제대로 갈 수 있다"고 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앞서도 "국가 정체성을 부정하는 세력들이 너무나 많다"(6월 28일 자유총연맹 축사), "공산 전체주의를 맹종하는 반 국가세력이 활개 치고 있다"(광복절 경축사)고 했었는데, 같은 맥락으로 풀이됩니다.

윤 대통령은 "협치, 협치 하는데, 새가 날아가는 방향이 딱 정해져 있어야 왼쪽과 오른쪽 날개, 보수와 진보, 좌파와 우파가 힘을 합쳐 발전해나가는 것"이라며 "날아가는 방향에 대해서도 엉뚱한 생각을 하고 우리는 앞으로 가려고 하는데 뒤로 가겠다고 그러면 안 된다"고도 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철 지난 엉터리 사기 이념'이 무엇인지, '날아가는 방향에 대해 엉뚱한 생각을 하는' 세력이 누구인지 짚어 얘기하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발언의 맥락으로 해석해보자면, 민주당 등 야당 일부에 공산 전체주의 이념을 가진 세력이 있고, 이들은 자유민주주의라는 국가 정체성을 부정하는 세력이기 때문에 협치 대상이 아니라는 뜻으로 풀이됩니다.


과거 대선후보 시절에도 조금 더 분명하게 비슷한 취지의 이야기를 한 일이 있습니다.

"(민주당 정부는) 시대착오적인 이념으로 엮이고 똘똘 뭉쳐진 소수의 '이너서클'이 돌아가면서 국정을 담당한다", "자유민주주의 정신에 따라 하는 민주화 운동이 아니고, 외국에서 수입해 온 이념에 사로잡혀서 민주화 운동을 한 분들"(2021년 12월 23일 유세 中)

"(민주당에) 과거에는 정말 훌륭한 분들이 많았다. (지금은) 이상한 사상과 이념에 의해 지배되고 국가의 정책이라고 하는 것이 상식을 잃어버렸다"(2022년 2월 16일 유세 中)

■ "정치에서 중요한 게 이념"…"옳으냐 그르냐의 문제"

대통령실 관계자는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게 이념"이니, 윤석열 대통령이 이념을 강조한 게 당연한 것 아니냐고 설명합니다.

자유민주주의의 길을 택한 우리는 경제·문화 강국이 됐고, 공산 전체주의를 택한 북한은 경제 파탄·
인권 탄압국이 됐는데, 이념을 얘기하지 않을 수 있느냐고 반문했습니다.

다른 대통령실 관계자도 "옳으냐 그르냐의 문제"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들의 설명에는 '왜 지금'이라는 의문이 남습니다.

일부 대통령실 관계자들이 인정하듯, 경제 상황이 녹록치 않은 상황에서 이념 문제가 국정의 중심에 서는 건 정무적으로 좋은 일이 아닙니다. '먹고 살기도 힘든데'라는 푸념이 나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부에서는 내년 4월 총선을 염두에 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내놓습니다.

아직 반년이나 남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여야 정치권에서는 벌써 총선 채비가 시작됐습니다. 당장 다음 달 정기국회가 시작되면 예산안 심사부터 국정감사까지, 총선 구도를 염두에 둔 공방이 벌어질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 정부·여당 대 야당의 구도를 명확하히고 지지층을 결집하는 '인식틀'로 자유민주주의 대 공산 전체주의를 꺼낸 것 아니냐는 해석입니다.

하반기 국정동력 확보를 위한 것이라는 해석도 있습니다.

여소야대 국회 상황 속에, 윤 대통령이 스스로 고백했듯, 집권 1년차는 변화와 성과를 거두기 어려웠습니다.("지난 1년간 우리 국민들께서 변화와 개혁을 체감하기에는 시간이 모자랐다", 5월 10일)

하반기 연금·교육·노동 등의 이른바 '3대 개혁'이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둬야 '집권 2년차는 달랐다'고 할 수 있는데, 지지층을 결집하고 야당을 비판하면서 추진 동력을 확보하려는 것 아니냐는 것입니다.

최근 30%대 후반에서 상승 분위기인 국정 지지율에서 자신감을 얻어 이 같은 시도에 나선 것으로 보인다는 것입니다.

■ 당선 확정 뒤 기자회견…"의회와 소통하고 야당과 협치·진솔하게 소통"


대통령 당선이 확정됐던 2022년 3월 10일 윤석열 대통령은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의 당선은) 국민을 편 가르지 말고, 통합의 정치를 하라는 국민의 간절한 호소입니다.", "정치적 유불리가 아닌 국민의 이익과 국익이 국정의 기준이 되면 우리 앞에 진보와 보수의 대한민국은 따로 없을 것입니다."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철 지난 이념을 멀리하고, 국민의 상식에 기반하여 국정을 운영하겠습니다.", "의회와 소통하고 야당과 협치하겠습니다. 국정 현안을 놓고 국민들과 진솔하게 소통하겠습니다."

윤 대통령은 '철 지난 이념을 멀리하겠다'고 하면서 동시에 '통합의 정치', '소통과 협치'에 대한 의지를 밝혔습니다.

상황이나 생각이 달라진 건지, 지난 1년여 경험해보니 이를 실천하기 어려운 구조적 문제가 있었던 건지, 처음부터 '철 지난 이념'을 가진 세력은 통합이나 협치의 대상이 아니었던 건지, 아직 구체적인 설명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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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태흠 기자 (jotem@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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