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맞고 지금은 틀린 ‘홍범도 흉상’···역사학계 검증·공론화도 없는 국방부 일방주의
육군사관학교 내 홍범도 장군 흉상의 철거·이전을 둘러싼 군 당국의 역사적 인식이 논란을 키우고 있다. 학계와 여론의 공감대를 얻지 못한 채 ‘공산당’ 활동 경력만을 침소봉대하고 있는 데다 학계에서도 결론 내리지 못한 ‘의혹’을 확정적 입장으로 제시한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국방부는 홍 장군의 흉상을 철거·이전해야 하는 이유로 ‘자유시 참변과 연관되어 있다는 의혹’과 ‘봉오동과 청산리 전투에도 빨치산으로 참가했다는 의혹’, ‘소련공산당 가입 및 활동 이력 논란’ 등을 들고 있다. 국방부는 이같은 내용을 담은 ‘육사의 홍범도 장군 흉상 관련 입장문’을 28일 배포했지만 의혹과 논란만 적시했을 뿐 역사학계나 교육계 의견 등 근거는 상세히 제시하지 않았다. 국방부는 같은 이유로 청사 앞 설치된 홍 장군 흉상도 이전을 검토 중이다.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은 29일 국방부 내 홍 장군 흉상 이전과 관련 질문에 “군 내부적으로 판단해서 결론 내려질 수 있으면 굳이 외부 학계와 협의는 필요 없을 수 있을 것 같다”며 “군 내에도 역사나 전쟁사를 연구하는 교수와 학자, 연구기관이 있다”고 했다. 전 대변인은 해당 입장문을 작성할 때 근현대사나 독립운동사 전공자가 참여했냐는 질문에 “국방부 정책실 등 관련 부서에서 받은 입장을 정리한 자료”라고 설명했다.
국방부의 입장문 내용은 학계의 정설과는 차이가 크다. 공식 사료에도 홍 장군의 부대가 자유시 참변에 가담했다는 기록은 전혀 찾을 수가 없다. 참변 당시 홍 장군이 휘하 장교들과 “땅을 치며 통곡했다”는 증언은 있다. 참변 이후 군사재판에 재판위원으로 참여했다는 이유로 자유시 참변에 가담했다고 보는 것도 무리라는 해석이 많다. 독립운동사에 남는 업적으로 꼽히는 봉오동과 청산리 전투를 공산당 활동의 연장선으로 볼 여지를 남겼다는 점도 문제다.
국방부는 “육사 내 흉상을 설치할 당시에도 적절치 않다는 문제 제기가 있었다”고 했다. 육사 총동창회도 이날 입장문을 내어 “조형물 설치 시에도 흉상 배치가 적절치 않다는 의견이 많았다”고 했다. 그러면서 총동창회는 “6·25전쟁을 일으키고 사주한 북한군, 중공군, 소련군 등에 종사하고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훼손한 사실이 분명히 확인된 인물이 (조형물에) 포함되어서는 안 된다”며 “더구나 이러한 인물의 흉상에 육사 생도들이 거수경례하도록 방치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홍 장군 흉상을 포함한 독립전쟁 영웅 5인의 흉상이 육사에 세워진 것은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18년 3월이다. 흉상은 장병들이 사용한 총탄의 탄피를 녹여 만들었고, 당시 육사는 “그분들의 희생과 노력 덕분에 후배 장병들이 대한민국에서 국민의 세금으로 총과 실탄을 지급받아 조국 수호의 사명을 다하고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육사는 2018년 6월 ‘봉오동전투 전승 98주년 기념 국민대회’에서 육군사관학교장 명의로 홍범도 장군에게 명예졸업장을 추서했다. 2020년 10월에는 육사 충무관 강당에서 생도들이 기획해 소설 <나는 홍범도> 북 콘서트를 개최했다. 그때는 맞았던 홍 장군에 대한 평가가 정권이 바뀐 지금은 틀린 셈이다.
군 당국이 논란과 의혹을 내세워 철거 입장을 고수하면서 해당 문제는 도미노처럼 번질 것으로 보인다. 국방부는 청사 앞 설치된 홍 장군 흉상 이번 뿐 아니라 해군 잠수함 홍범도함의 함명도 필요하면 변경을 검토한다는 입장이다. 육사가 수여한 명예졸업장도 논란의 대상이다.
전 대변인은 육사가 홍 장군에게 수여한 명예졸업장도 회수할 계획이냐는 질문에는 “제가 답변드릴 사안은 아닌 것 같다”고 답했다.
박은경 기자 yam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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