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리] 도예가의 눈과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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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는 완벽한 하나의 도자기를 만들 때까지 끊임없이 도자기를 굽고, 깬다.
일반인이 보면 멀쩡한 도자기를 깨는 이유는 사소하다.
작은 티끌, 가느다란 실금···. 그러나 도예가는 그 사소한 흠이 도자기 전체를 망칠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도자기를 깨는 데 주저함이 없다.
도예가는 문제가 있는 도자기를 깨버리면 그만이지만 법률은 그렇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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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예가는 완벽한 하나의 도자기를 만들 때까지 끊임없이 도자기를 굽고, 깬다. 일반인이 보면 멀쩡한 도자기를 깨는 이유는 사소하다. 작은 티끌, 가느다란 실금···. 그러나 도예가는 그 사소한 흠이 도자기 전체를 망칠 수 있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도자기를 깨는 데 주저함이 없다. 하물며 한 점의 도자기도 각고의 심사를 거쳐 만드는데 정작 중대한 국가 법률은 그렇지 못하다.
의원입법제도는 규제만능주의가 만연한 한국 사회에 최적화된 제도다. 법률안의 영향을 면밀히 분석하는 일 없이 의원 10인 이상의 찬성만 있으면 빠르게 발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사회적 사건이 하나 터지면 머지않아 관련 법률의 제·개정안이 여러 의원의 이름으로 조금씩만 다르게 발의되는 광경을 목격할 수 있다. 이렇게 발의된 법안은 짧게는 발의 1주일 만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기도 한다. 의원입법을 통한 법률이 현재 1600여 개, 21대 국회의 의원입법 비중이 97%에 달한다는 사실은 놀랍지 않을 정도다.
도예가는 문제가 있는 도자기를 깨버리면 그만이지만 법률은 그렇지 않다. 한 번 제·개정된 법률은 문제가 있더라도 다시 고치거나 폐지하기가 힘들다. 기업 관련 규제도 마찬가지다.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타다금지법’인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 개정 등 의원 발의 법률들이 실효성이 없고 기업의 성장을 저해한다는 사실이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지만 법률 제·개정 전으로 돌이킬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입법 전 재계가 법률안의 예상되는 부작용에 대해 분석하고 의견을 제시해도 수용되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객관적 시각에서 법률안이 미치는 사회·경제적 영향을 검토하는 입법영향평가제도를 의무화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리는 이유다.
주요국에서는 사전입법영향평가제도가 활발하게 시행되고 있다. 영국은 1980년대, 독일과 프랑스는 2000년대에 입법영향분석제도를 명문화했고 미국은 법률안 제출 시 입법영향에 대한 분석 보고서를 첨부하도록 하고 있다. 일본은 입법영향평가가 의무는 아니지만 발의 전 당내 심사가 의무다. 의원 10인의 동의와 예산 추계서만 제출하면 되는 우리나라와 대조적이다. 심지어 예산 추계에서도 예산이 들지 않는 규제입법은 예외다. ‘실적 쌓기’ 식 의원입법이 남발될 수밖에 없다.
졸속 입법에 크게 상처받은 기업들은 새로 넘어야 할 산을 앞두고 있다. ‘온플법’ 제정과 내부자 거래 사전공시 관련 법률 개정안이 바로 그것이다. 온플법은 자국의 플랫폼 기업 지원을 늘리는 해외 입법 동향과 동떨어져 있고 내부자 거래 사전공시는 미국을 모방했으나 본래 취지 및 방향이 미국과는 크게 다르다. 성급하게 발의된 법률안이 통과돼 야기할 피해에 대해서는 전혀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도예가의 눈을 빌려올 때다. 법률안을 세심하게 살펴보고 티끌이나 실금이 발견되면 과감히 접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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