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훈, 미스터트롯2의 새로운 가신(歌神)

최보윤 기자 2023. 8. 29.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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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스터트롯2의 진으로 시청자들에게 인기 몰이하고 있는 안성훈/TV조선

“저 성훈이형이요. 노래 정말 되게 잘하시잖아요.”

“저도 성훈이형이요. (박)지현이 형도 성훈이형이랑 제일 친해지고 싶다고 했어요.”

지난 3월 초쯤이었다. TV조선 오디션 프로그램 ‘미스터트롯2′ 진·선·미가 결정되기 전 톱 10과 만났을 때다. 결승곡 무대는 사전 녹화를 마친 상태였지만, 그 누구도 경연의 긴장을 놓지 못했던 터였다. 각자 ‘미스터트롯2′에 왜 지원하게 됐는지, 자신의 무대를 되돌아보며 무엇이 힘들었고 무엇이 좋았는지를 되짚으면서 ‘톱7′을 향한 뜨거운 열망을 털어놓고 있을 즈음이었다.

안성훈, 안성훈, 안성훈.... 돌림노래 같았다. ‘미스터트롯2′를 통해 만나보고 싶었거나, 친해지고 싶은 이와 그 이유에 대해 묻는 질문이었다. ‘미스터트롯2′의 최종 진(眞)의 왕관을 얹기도 전인데, 동료들 마음 속의 진으로 이미 안성훈이 들어와 있는 듯했다. 최수호의 이야기가 끝나자 송민준이 이어받고 진욱과 추혁진이 따라말했다. 막내 송도현도 거들었다. “(안)성훈이형이랑 친해지고 싶어요.” 인터뷰를 마친 박지현도 마찬가지였다.

미리 질문지를 보낸 것도 아니었는데 톱10 사이에선 이미 ‘어결안’, 어차피 결론은 안성훈,으로 통일된 것 같았다. ‘노래’라면 어디 내놔도 자신있을 그들이 ‘노래 잘한다’고 말하는 건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인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당시 유행어를 빌자면, ‘추앙’한달까. 울산에서 오가던 박성온마저도 수화기 넘어 같은 이름을 말했다. “성훈이형이요.” 노래도 잘하고 모든 면에서 다재다능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노래로는 이미 성인의 수준을 넘었다는 박성온이지만, 아이의 순수한 눈은 거짓을 말하지 않는다.

미스터트롯2 전국투어 마지막 안양콘서트장 내외에서 펼쳐진 안성훈 팬 '후니애니'의 응원전. 팬덤색인 민트색 풍선으로 장식된 부스를 차리는 등 각종 응원도구로 팬심을 전하고 있다. /최보윤 기자

◇ “나를 살게 하는 사람”...안성훈은 두 번 노래한다. 목소리로 또, 가슴으로.

지난 3월 16일 최종 결승을 통해 ‘미스터트롯2′ 진(眞)으로 발탁된 안성훈. 그는 실시간 문자투표 252만여표, 유효표 211만여표 중 27.55%인 58만 3900표를 차지하며 1위의 왕관을 썼다. 전체 4분의 1이 넘는 팬들이 안성훈을 지지한 것이다. 지금은 동그란 안경이 그의 새로운 트레이드마크가 됐지만, 아련하면서도 촉촉한 눈빛은 안성훈을 말해주는 또 다른 언어다. 눈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선한 눈망울 속엔 인내가 있고 포용이 있다.

지난 2011년 KBS 전국노래자랑 강원도 원주시편 최우수상을 받은 뒤 2012년 트로트곡 ‘오래오래’로 데뷔했다. 비슷한 시기 데뷔한 트로트 가수가 진해성과 박서진. 데뷔 년차로만 보면 ‘중견급’으로 보이지만 안성훈은 소속사와의 분쟁 등으로 1년 반 만에 가수 인생을 접고 7년여간 노래와 떨어져 살았다.

호텔관광학부를 졸업한 경력을 살려 리조트에서도 일해보고, 테이크아웃 전문 카페를 차려 붕어빵과 만쥬까지 직접 구워 팔며, 일용직 아르바이트까지 가리지 않고 일했다. 어머니와 주먹밥집을 차린 뒤에는 하루에 수백개 주먹밥을 빚으며 다리 아픈 줄도 몰랐다. ‘미스터트롯1′(2020)에 도전할 당시엔 녹화 전날까지도 주먹밥을 팔면서 노래 연습을 했다.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게 트로트라고 생각했는데, 못하게 되니까 할 수 있는 게 없었어요. 뭐라도 하면서 살아야 했기에 없는 재능으로 어떡하든 살아내야 했지요.”

노래 가사를 살려 섬세하게 부르는 솜씨는 그때도 마찬가지였다. ‘미스터트롯1′ 마스터 예심 ‘울엄마’ 무대부터든, 혹은 팀미션 오프닝에서 화제가 됐던 배우 김혜수의 ‘쏠수 있어’(영화 ‘타짜) 모션에서든 그에게 빠져든 팬들은 그의 탈락을 아쉬워하며 ‘미스터트롯2′ 재도전을 반겼다. “너무나도 그리운 무대였지만, ‘미스터트롯1′에 지원했을 때는 준비가 제대로 된 상태가 아니었거든요. 많은 분들이 좋게 봐주셔서 정말 감사드리는데, 저 자신으로서는 보람되거나 만족했던 무대가 단 하나도 없었어요.”

좋아하는 노래였지만, 다시 마이크를 잡는 게 두렵기도 했다. 안성훈은 “무대 올라가기 전에 정말 불안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흔들리는 눈빛도 잡아내는 게 카메라인데, 안성훈의 이야기대로라면 방송 카메라가 안성훈과 사랑에 빠졌음이 틀림없다. 브라운관을 통해 송출되는 화면 속 안성훈의 눈망울은 물기를 머금은 듯 초롱초롱했고, 여름 바다를 가르는 바나나보트 같은 시원한 입매는 무해한 미소를 발산하며 팬들의 마음을 유영했다.

언제나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무대에 올랐기 때문일까. 참아낸 시간과 이겨낸 세월이 빚어낸 그의 목소리는 신산한 삶을 살아낸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동반자가 돼 줬다. 경연 중 그가 부른 ‘돌릴 수 없는 세월’은 예전 기억 속, 혹은 먼저 떠난, 아니면 지금 내 곁의 사람들을 떠올리게 하며 안성훈의 이름 세 글자를 팬들의 마음에 깊게 새기게 했다.

‘때론 속고 속는데도 떠나지 않은 사람/철없던 날 나를 만나 속많이 썩은 사람/그 모두가 날 떠나도 믿어준 단 한사람/당신이 나를 살게한 사람이요.’ 노래 속 가사처럼 안성훈에게 팬이란, 또 팬들에게 안성훈이란 이런 사람이 아니었을까.

미스터트롯2 전국투어 마지막 안양콘서트장 내외에서 펼쳐진 안성훈 팬 '후니애니'의 응원전. 팬덤색인 민트색 풍선으로 장식된 부스를 차리는 등 각종 응원도구로 팬심을 전하고 있다./최보윤 기자
미스터트롯2 전국투어 마지막 안양콘서트장 내외에서 펼쳐진 안성훈 팬 '후니애니'의 응원전/최보윤 기자
미스터트롯2 전국투어 마지막 안양콘서트장 내외에서 펼쳐진 안성훈 팬 '후니애니'의 응원전/최보윤 기자

◇”뭘 원하든지 당신은 말만 해...’싹가능’한 리더 안성훈

‘미스터트롯2′에서 안성훈과 ‘뽕드림’으로 팀미션을 함께 했던 나상도는 안성훈을 가리켜 이렇게 말했다. “뒤에 서있어도 빛나는 사람.” 안성훈은 그런 사람이다. 경쟁이란 틀을 뛰어넘는 사람. 자신을 앞세우기 이전에 남을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다. 안성훈과 오래전부터 알고 지냈던 진해성 역시 그를 가리켜 “다 갖고 있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안성훈의 실력은 물론, 품과 덕을 짚은 것이다. 자신의 대학 전공(호텔관광학)에서 배운 ‘서비스 정신’ 덕분이라며 손사래였지만, 모든 행동의 중심에는 안성훈의 진실된 마음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톱10과 인터뷰를 나눌 당시로 다시 돌아가보자. 안성훈 옆에 있던 박지현이 “진은 무조건 성훈 형님이 해야 한다”며 시선을 안성훈에게 모았다. “어디 내놔도 부끄럽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이란다. 모든 면에서 흠잡을 데 없다는 설명이었다. 안성훈은 말간 얼굴빛의 동생 박지현을 바라보면서 “형들은 지현이를 너무 자랑스럽게 생각해서 어디 내놓고 싶어한다”며 응원했다. “선배이자 형이자 동료로서 우리의 신인들, 지현이 수호 진욱이 등 모든 친구들이 정말 예뻐요. 저희 이렇게 여기까지 함께 왔잖아요. 같이 즐거워하고 고민하고, 이 친구들이 있었기에 어려움도 극복할 수 있었고요. 경쟁 상대가 아니거든요. 동생들이 더 우리보다 빨리 잘 커서 형들을 좀 끌어줬으면 좋겠고...(웃음)”

경연을 치르며 ‘쌈닭’이라는 별칭이 붙긴 했지만, 전적으로 예능용이다. 무대 밖에선 아마 가장 쌈닭과 거리가 먼 사람 중 하나일 것이다. MBTI는 ESFJ로 다정다감하고 배려심 깊다, 상대의 장점을 먼저 보고 동료를 치켜세우며 작은 일에도 고마워 할 줄 알고, 의리를 지킨다. 그의 신곡 ‘싹가능’은 이 모든 어려운 것을 하나둘씩 풀어가며 가능케 한 안성훈을 그대로 옮겨놓은 듯하다. 진이자, 형님이자 리더로 ‘해결사’ 역할을 도맡다보니, ‘안성훈 바라기’를 자처하는 이들이 점점 늘어나는 것도 어쩌면 당연해 보인다.

TV조선 ‘미스터로또’에서 ‘해리포터’로 변신한 그는 외모만 비슷한 게 아니었다. 우정과 신뢰를 바탕으로 불신과 적의를 퍼뜨리는 이들에 맞서 물러서지 않고 용감하게 싸우는 해리포터의 성정과도 너무나도 닮아있었다.

TV조선 미스터트롯2에서 우승을 차지한 안성훈/ 영상미디어 이신영 기자

◇ 사랑할 수밖에 없는 ‘우리 형’...안성훈의 시절이 왔다.

가끔은 안성훈을 걱정하는 이들도 있다. 백옥 같은 그의 피부처럼 순하디 순한 마음에 상처입지 않을까 해서다. 웃으며 양보하고, 좋은 게 생기면 동료들을 떠올리며 챙기려 하는 모습에 “좀 더 이기적으로 살으라”고 말하는 이도 있다. 장르물 같은 세상 속에서 마음엔 동화 아닌 순정만화를 품고 있는 것 같은 그가 1위라는 왕관의 무게를 견디며 자신을 지켜낼 수 있을까 하는 우려다. 자주 우는 모습이 비치는 것도, 하지 못하고 속으로 삼긴 말이 눈물로 터져나오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물론 안성훈의 모든 것을 사랑하는 나머지 그가 눈물을 스르르 흘리며 우는 모습조차 너무 귀여워 자꾸 울리고 싶은 남자라고 말하는 팬도 있긴 하지만 말이다.

때로 여려 보이는 안성훈이지만 안성훈을 더욱 안성훈 답게 만드는 건 바로 건강함이다. 어린 시절부터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은 것도 그를 정신적 육체적으로 강하게 했다. 검도 3단의 검증된 실력. 언뜻 왜소해 보이지만 탄탄한 잔근육은 동료들도 놀랄 지경이다. 체력은 그를 전쟁터 같은 경연 속에서 버티게 하는 또 다른 무기였다.

정신력도 단련된 그였다. 무명시절 설움을 반찬삼아 시련을 밥먹듯 했던 기억은 그를 정신적으로 강하게 했다. 팬들이 붙여준 ‘완성훈’이라는 애칭 그 자체. 힘든 시절 응원해준 동료 선후배들은 그를 다시 있게 했다. “나중에 성공해서 꼭 함께 노래부르자”고 약속했던 송가인은 그에게 다시 노래하라고 권유했고, 결국 ‘미스트롯1′의 진과 ‘미스터트롯2′의 진으로 다시 만나 무대를 꾸몄다. 무명 시절 화장실에서 서로 옷을 갈아입고 화장을 해주며 웃음과 고민을 나눴던 진해성 역시 그를 일으킨 든든한 지원군이다. 정신적 건강함은 유머 감각으로 승화했다. ‘모태솔로’라는 동료의 ‘폭로(?)’에 “난 복잡한 사람”이라며 정색 반 너스레 반으로 보는 이를 웃게 한다. 동료들에게 예능적으로 놀림을 당해주는 여유도 생겼다. 강한 사람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미스터트롯2′ 마스터 김연자는 안성훈에 대해 “모든 면에서 퍼펙트했다”고 말했다. 김연자는 “데뷔한 지 오래된 데다, 공백기도 길어 스타성이 부족했을 수 있고, 재도전이기에 신선미가 떨어질 수 있는 여러 악조건에도 1등이 된건 그 모든 걸 뛰어넘는 실력이 있었기 때문”이라면서 “무엇보다 스타가 돼도 똑 같은 자리에서 똑 같은 마음가짐으로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어려운 시절을 알고, 숙일 줄 알며, 베푸는 사람이라는 얘기였다.

최근 안성훈은 공연 중 상체 근육 통증을 호소하며 무대를 내려온 적 있다. 팬들과 함께 그를 곁에서 보살피고 응원한 건 미스터트롯2 동료들이었다. 언제나 자신을 챙겨줬던 ‘큰 형’ 안성훈을 향해 동료들은 뜨거운 눈물을 터뜨리며 우정의 무대를 그려냈다. 지켜준 팬들에게 감사 인사를 나누러 가는 동안 안성훈의 팔을 붙잡고 부축해준 것도 미스터트롯2 톱7 동료들이었다. 이제 친형제나 다름없는 동료들 우정의 힘이었을까. 안성훈은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금 일어났다. 그 ‘무해한’ 미소를 장착하고. 가끔 쉬어가더라도 노래로 가는 길을 멈추지 않았던 안성훈. 안성훈은 그런 사람이다. 진심을 꺼내, 진심을 끌어내는 사람. 미스터트롯2 동료들이 말하듯, 사랑받을 수밖에 없는 “우리 형”이다.

미스터트롯2가 배출한 스타 가수 안성훈,박지현,나상도,진해성,최수호,박성온,진욱, 김용필, 송민준, 윤준협 등 전국투어 콘서트 출연진들이 콘서트 안무 연습 중 포즈를 취했다. /남강호 기자

<위는 조선뉴스프레스가 발간하는 ‘조선일보 웰빙라이프’ 매거진 9월호에 게재된 글의 원문입니다. 매거진 지면 한계상 다 담지 못한 내용을 온라인 버전으로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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