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혁신의 의미

"숨 막힐 듯했어요(Breathless)."

2021년 8월 독일의 생명공학기업 바이오엔테크의 공동 창업자인 외즐렘 튀레치는 TED와의 인터뷰에서 지난 18개월의 시간을 이 한 단어로 표현했다. "이미 팬데믹 속으로 들어왔는데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불투명해서 하루도 낭비할 수 없는 긴박한 상황이었어요." 바이오엔테크는 십수 년간 mRNA를 이용해 항암제를 연구해오며 기존 학계에선 주목하지 않았던 이 기술에 대해 확신을 가져왔다. 괴짜로 취급받던 우구어 자힌과 외즐렘 튀레치 부부의 뚝심 있는 연구 덕분에 새로운 기술의 코로나19 백신이 세상 빛을 보았다. 실험실 가운을 입고 결혼식을 올린 이들 부부에게 삶의 중심은 '과학과 환자 치료를 어떻게 연결할지'에 있었다.

이 스토리는 혁신의 의미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사전에서는 '혁신'을 '묵은 풍속, 관습, 조직, 방법 따위를 완전히 바꾸어서 새롭게 하는 것'이라 정의한다. 이민자에 대한 편견 속에 학계의 비주류였던 이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인류는 지금의 평온한 삶을 되찾을 수 있었을까?

내가 몸담고 있는 제약 헬스케어 산업에서 혁신은 이렇게 절실함과 갈망에서 출발하고, 이 혁신의 결과물은 질병으로 고통받는 환자와 가족에게 희망의 빛줄기가 된다. 이런 사명감을 바탕으로 엄청난 자금과 시간을 투자하며 그 노력을 계속할 수 있도록 혁신의 가치를 인정받고자 한다. 이 산업의 공공재적 성격이 강조되다 보니 이 혁신의 가치를 논하는 것을 상업적인 목적으로 보는 곱지 않은 시선도 있긴 하다. 그렇지만 경제학 이론에서 보듯이 생산자와 소비자, 양쪽의 가치가 균형감 있게 증대돼야 또 다른 혁신을 시도할 기반과 동기가 생기는 것이다.

혁신은 그 결과물이 실질적으로 우리 삶에 변화를 가져올 때 의미를 갖는다. 제약 헬스케어 분야에서 강조하는 '환자 접근성'은 혁신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환자 접근성이란 빠른 허가와 국가의 재정적 지원으로, 환자가 필요로 할 때 적정 가격으로 약제나 기술을 공급받을 수 있느냐를 뜻한다. 우리 모두의 적이 질병이고 그 질병에 맞서 싸운다는 목표에는 흔쾌히 동의하지만, 환자 접근성을 풀어가는 해법에 있어서 정부와 의료계, 산업계, 환자 단체 간에 작지 않은 입장 차이가 있다.

혁신의 핵심은 협업이라고 했다. 팬데믹 시기를 거치며 백신 개발사와 정부, 의료기관 등 이해 당사자들 간 협력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우리는 몸소 체험했다. 인간 건강의 궤적을 바꿀 혁신의 새 물결을 위해 우린 그 가치를 이해하고 협력하는 정신과 실행이 필요하다. 글로벌 제약회사에 처음 발을 디딜 때, 당시 외국인 CEO가 한 말이 떠오른다. "이제 세상으로부터 다양한 평가와 도전을 받게 될 겁니다. 어떤 경우이든 실망하지 마세요. 당신이 하는 일은 혁신을 기반으로, 사람의 생명을 살리고 건강한 미래를 만드는 것입니다."

모두가 코로나 백신을 절실하게 기다린 것처럼 내게도 25년 전 어떤 치료제가 당장 나왔으면 하는 간절함이 있었다. 혁신은 이렇게 우리 모두의 간절함을 메꿔주는 희망이다.

[황성혜 한국존슨앤드존슨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