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어트약 ‘10년주기설’…‘대세’ GLP-1은 다를까?
GLP-1(Glucagon Like Peptide-1) 유사체가 ‘기적적인’ 다이어트 약으로 인기를 끌고 있다. 인슐린의 분비를 증가시키는 체내 호르몬과 유사한 작용을 나타내는 약물로, 당뇨치료제로 시작됐지만 체중감소 부작용이 주목받으며 품귀현상을 빚고 있다. 남성 탈모치료제가 된 전립선약처럼 부작용이 더 인기를 얻은 경우로, 6개월 동안 30%의 체중감량 효과가 나타났다. 만성질환인 당뇨치료제였다는 점에서 오랫동안 사용해도 안전할 것으로 인식됐지만 최근 부작용 우려가 이어지고 있다.
비슷한 예로 마약성 각성제로 널리 알려진 ‘암페타민’이 있다. 처음엔 코막힘 완화제로 출시됐지만 체중감량에 ‘기적적인’ 효과가 있다고 소개되며 1930년대를 대표하는 다이어트 약으로 대중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1970년대 심각한 중독증상의 폐해로 규제약물로 지정됐으며 한국에서는 마약으로 지정돼 의료적인 사용조차 금지됐다.
대중들이 열광한 다이어트 약의 역사는 대부분 부작용과 함께했다. 과연 GLP-1은 어떨까?
비만은 개인의 잘못이다?
비만에 대한 잘못된 정보와 인식에서 비롯된 차별은 우리 사회 곳곳에 존재한다.
‘개인의 잘못된 행동과 선택에서 비롯된 것’이라거나 ‘적게 먹고 운동을 더 많이 하면 체중을 쉽게 감량할 수 있다’는 주장들이 대표적이다. 그러나 비만은 생물학적‧정신적‧사회적‧경제적 감수성과 생활방식의 상호작용으로 발생하며, 대부분의 원인은 개개인이 조절할 수 없다. 비만이 유전될 가능성이 약 80%에 달하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특히 체중을 감량하고 이를 유지하려고 할 때, 우리 몸은 내 의지와 관계없이 본능적으로 일정한 체중과 체지방을 유지하려는 ‘에너지 항상성’을 가진다. 호르몬 작용으로 나타나는 에너지 항상성은 체중감량에 저항하고, 감량한 무게를 회복하기 위해 끊임없이 음식물 섭취를 요구한다. 이러한 변화는 ‘유전자에 각인된 것’으로 단순한 의지로 해결되기 어렵다.
산업화에 따른 급속한 경제발전 이후 체중증가와 지방축적은 ‘부의 상징’에서 ‘잘못된 외형’의 대표적인 요소이자, 고쳐야 할 ‘개인적인 문제’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비만이 문제가 되는 이유는 외적 기준이 아닌 건강에 악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미 1997년에 “비만은 너무나도 광범위한 내분비질환에 영향을 미치지만 가장 무시된 공중보건학적 문제 가운데 하나”라며 “21세기에는 비만이 흡연보다 심각한 건강상의 문제로 대두될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실제로 비만은 단순한 외형적 변화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각종 질환의 직접적인 원인이 될 수 있는 대사 장애다. 제2형 당뇨병을 비롯해 ▲이상지질혈증 ▲고혈압 ▲지방간 ▲담낭질환 ▲관상동맥질환(협심증‧심근경색증) ▲뇌졸중 ▲수면무호흡증 ▲통풍 ▲골관절염 ▲월경이상 ▲대장암 ▲유방암 등을 일으키는 독립적인 위험인자로 작용하며 정신질환까지 유발할 수 있다.
검게 얼룩진 다이어트 약의 역사
건강상의 문제가 제기되기 이전부터 체중감량을 위한 다이어트 약은 약 10년 주기로 대중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받았다 퇴출되기를 반복해왔다.
앞서 소개한 암페타민 이후 1980~1990년대에 인기를 끈 ‘펜-펜 병용요법’이 대표적인 예다.
펜-펜 요법은 다이어트 약 ‘펜플루라민(Fenfluramine)’과 ‘펜터민(Phentermine)’의 첫 글자를 따서 붙은 이름이다. 세로토닌 호르몬에 작용하는 펜플루라민과 노르에피네프린 호르몬에 작용하는 펜터민을 함께 복용하면 체중감량 효과가 더 크다는 미국 로체스터 의대 발표 후 인기를 얻었다.
그러나 프랑스‧벨기에‧영국‧네덜란드의 35개 병원을 대상으로 펜-펜 요법을 받은 환자들을 조사한 결과, 3개월 이내로 복용한 이들은 괜찮았으나 3개월 이상 장기간 복용한 이들은 ‘폐동맥고혈압’ 발병 위험이 크게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후 미국 메이요(Mayo) 클리닉에서 심장초음파상에 심장판막 이상을 보이는 환자들을 추적해보니 대부분 펜-펜 요법을 받던 환자들이라는 게 확인됐고, 결국 펜-펜 요법과 펜플루라민 성분의 다이어트 약은 의료계에서 퇴출됐다.
1990~2000년대에도 다이어트 약을 둘러싼 문제는 계속됐다.
이 당시 미국에서는 마황(Ephedra) 성분이 건강음료와 건강보조식품에 폭넓게 사용되며 인기를 끌었다. 그러나 1만8000건 이상의 부작용 보고가 접수됨에 따라 미국식품의약국(FDA)은 관련 연구를 진행했고 ▲고혈압 ▲심장 부정맥 ▲심근경색 ▲발작 ▲뇌졸중 발병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을 확인했다. 결국 FDA는 2004년 마황 성분이 포함된 건강보조식품 등의 판매를 금지했다.
GLP-1은 다를까?
다이어트 약을 둘러싼 역사적 문제들이 GLP-1 성분이 위험하다는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
다만 암페타민이 기적적인 다이어트 약이 아닌 마약성 각성제로 규제될 때까지 40년에 가까운 시간이 걸린 것처럼 안전성과 유효성에 대한 명확한 증거를 확인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수 있다.
익명을 요청한 한 내분비내과 교수는 “펜-펜 요법만 해도 미국 로체스터 의대 연구팀은 4년이 넘는 장기간 임상시험을 했고, 사용된 약물들 역시 시판된 지 20년 가까이 된 품목들이었다”며 “연구규모와 기간을 살폈을 때 요즘 진행되는 신약연구와 비교해도 차이가 없고, FDA 승인을 받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연구팀은 3년 이상의 장기적 안전성을 자신했지만 실제로는 3개월 만에 심장 부작용이 나타났다”며 “옛날 이야기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2020년 악성종양 부작용 문제가 불거지면서 시장에서 퇴출된 다이어트 약 ‘로카세린’처럼 의학기술의 발전이 안정성을 담보하지 않는다는 것을 꼭 명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삭센다와 위고비 등 GLP-1 성분의 다이어트 약들에 대한 안전성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다.
실제로 미국 FDA 부작용보고시스템(FAERS)에 따르면, GLP-1 성분으로 환자 또는 의료인으로부터 보고된 ‘자살충동’ 이상반응이 약 140건에 이른다. 그렇지만 자살 또는 자해충동이 의약품 제품정보에 명시되지 않았다는 점에서 논란에 휩싸였고, 유럽의약품청(EMA) 안전위원회가 관련 조사에 착수했다.
1주일에 1번 주사하는 장기지속형 GLP-1 다이어트 약은 ‘위무력증(Gastroparesis)’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위의 기능저하로 중증 구토와 메스꺼움 증상이 발생하며, 심한 위염도 보고됐다.
최근 장기지속형 GLP-1 약물 일부는 ‘위장기능을 저하시킨다’는 내용의 경고문구를 넣고 있으며, 가장 흔한 이상반응으로 구토‧설사‧복통 등을 명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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