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R&D 효율성 갉아먹는 '과제의 파편화'

2023. 8. 29. 17:24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대량생산할 경우 소량생산보다 평균 비용이 더 낮아진다는 '규모의 경제'는 우리 모두가 익히 알고 있는 개념이다.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와 반대인 개념도 있다. 생산 규모를 확대할수록 비효율적인 요소로 인해 단위당 생산 비용이 오히려 증가하는 현상, 바로 '규모의 비경제'이다. 기업이 경쟁적으로 몸집을 불리려 할 때 업무가 중복으로 이뤄지거나 경영진의 비대화 등으로 기업 운영의 효율이 낮아지면서 발생한다. 규모의 비경제가 발생했을 때 적시에 문제를 알아차리고 대처하는 기업은 살아남지만 문제를 인지하지 못하는 기업은 결국 파산에 이르게 된다.

국가 연구개발(R&D) 예산이 20조원을 돌파한 지 5년 만에 30조원을 넘어섰다. 얼마 전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최근 R&D 예산이 급격히 증가함에 따라 관리 과정의 허점과 사각지대, 그릇된 관행 등 후발국 수준에 머물러 있는 R&D 시스템으로 인해 많은 비효율이 발생했다고 발표했다. 과제 기획자가 과제를 수주해간 '나눠먹기', 특정 기업이 유사한 내용으로 다수의 과제를 동시에 수주하는 '눈먼 R&D' 등의 문제들로 인해 '규모의 비경제'가 발생한 것이다. 이에 정부는 비효율적인 요소를 바로잡고 글로벌 공동연구 제도 정비, R&D의 전문성·투명성·신뢰성 확보 등 'R&D를 R&D답게' 만들기 위한 정책을 발표했다.

보다 근본적인 원인도 함께 개선해 나가야 할 필요가 있다. 바로 '과제의 파편화'다. 정부 R&D의 과제당 평균 연구비는 예산이 10조원이 늘어난 지난 5년 동안 2016년 3억4662만원에서 2021년 3억5560만원으로 1000만원도 늘지 않았다. 같은 시기,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소관 정부출연 연구기관에서 수행하는 과제 수는 3123개에서 4288개로 늘어났다. 출연(연)은 그동안 전략적으로 소액 과제 수주를 적극 지양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출연(연)에서 진행하는 정부 수탁과제 중 3억원 이하 규모의 연구비 비중은 2017년 12.5%에서 2020년 15.6%까지 올라갔다. 물가상승률을 고려했을 때 과제 규모는 오히려 줄어든 것이다.

연구자는 파급력 높은 1~2개 연구과제에 집중하고 싶어도 인건비를 충당하기 위해 다수의 소규모 과제를 수행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는 개인별 연구 역량의 분산과 이로 인한 연구 성과의 질적 저하로 이어지는 비효율적 순환구조를 형성하게 됐다. 결국 연구 현장은 도전적 연구보다는 소규모의 단기·성과맞춤형 연구가 주를 이루게 되고 'R&D 과제 성공률 99.1%'라는 이 분야 세계 신기록으로 이어지게 됐다. 과제 규모의 확대를 통한 '규모의 경제'를 지향하지 못하고 과제 수 확대에 따른 과제 파편화로 '규모의 비경제'가 만들어진 것이다.

질병이 발생했을 때 이를 치료하는 방법으로 환부를 도려내는 것도 방법이지만 질병의 원인이 된 환경을 바꾸는 것도 병행돼야 한다. 연구자들이 연구에 몰입할 수 있는 안정적인 연구 환경을 마련하고 과제 수는 줄이되 규모를 키워 더 높은 질적 성과를 지향할 수 있도록 과제 기획과 배분이 이뤄져야 한다. 부디 우리 연구자들의 사기가 충천해 대한민국의 G5 도약을 멋지게 이뤄낼 수 있는 효율성과 효과성 높은 '규모의 R&D'가 이뤄지는 날이 하루빨리 오길 기대해본다.

[김복철 국가과학기술연구회 이사장]

Copyright © 매일경제 & mk.co.kr. 무단 전재, 재배포 및 AI학습 이용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