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좋아할 지 몰라 다 준비한 강풀의 오마카세 '무빙'
아이즈 ize 이덕행 기자
최근 공개되는 OTT 오리지널 작품의 가장 큰 특징은 '몰아보기'다. 컴팩트한 구성으로 공개와 함께 결말까지 달려가는 것이다. 디즈니+ 오리지널 '무빙'(연출 박인제, 극본 강풀)은 이같은 흐름에 역행한다. 전체 분량은 무려 20부작이며 공개 첫 주 1~7화가 함께 공개된 것을 제외하면 매주 2편씩 공개되고 있다. 이렇게 '무빙'은 자신만의 템포로 나아가며 시청자들이 캐릭터 하나하나에 몰입할 수 있게 만들어 주고 있다. 매주 공개되는 작품의 장르도 다양하다. 히어로물이라는 큰 틀 아래 하이틴, 첩보, 멜로 등 각 캐릭터의 서사가 다채롭게 전개된다. 기다리고 있으면 알아서 다양한 스토리가 전개되는 '무빙'은 마치 오마카세를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무빙'을 대접하는 요리사는 원작에 이어 드라마 각본에도 참여한 강풀 작가다.
'무빙'은 초능력을 숨긴 채 현재를 살아가는 아이들과, 과거의 아픈 비밀을 숨긴 채 살아온 부모들이 시대와 세대를 넘어 닥치는 거대한 위험에 함께 맞서는 초능력 휴먼 액션 시리즈다. 원작 웹툰을 그렸던 강풀 작가는 오리지널 시리즈로 탄생한 '무빙'의 극본도 직접 집필했다. 봉석(이정하)과 희수(고윤정)의 풋풋한 하이틴을 지나 미현(한효주), 두식(조인성), 주원(류승룡) 등 부모 세대 캐릭터의 과거가 드러나며 많은 인기를 끌고 있다. 인터뷰를 진행한 강풀 작가는 "보람을 많이 느끼고 있다"며 뜨거운 반응에 감사를 전했다.
"오픈하기 이틀 전부터는 잠도 잘 안 왔어요. 나만 재미있으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독자가 아닌 관객을 상대하는 것이라 더 긴장도 됐어요. 만화를 그릴 때는 혼자 책임지면 됐는데 이번에는 여러 명이 협력했고 관계자도 많잖아요. 내가 제미있다고 쓴 이야기가 어떻게 판단을 받을까 궁금했어요. 생각보다 평가가 좋아서 면도 서고 기분이 좋아요."
'아파트', '순정만화', '그대를 사랑합니다', '이웃사람', '26년' 등 강풀 작가의 작품은 영상화가 많이 됐지만, 강풀 작가가 원작자로서 극본에 참여한 건 '무빙'이 처음이다. 트리트먼트 과정에서 의견을 내던 강풀 작가는 극본 제안을 받고 고민 끝에 수락했다. 그 과정에서 '무빙'의 길이를 20부작으로 역제안하기도 했다. 캐릭터들의 서사를 제대로 담고 싶었기 때문이다.
"트리트먼트 과정에 참여했는데 그때는 12~16화를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하면서 20화로 가면 제가 하겠다고 역제안했어요. 다만, 극본 작업이 처음이니 먼저 한 두화를 써보고 마음에 들면 하겠다고 했어요. 그 기간 동안 제작이 멈춘 거죠. 제작사에서 오케이해서 하게 됐어요. 마감 시간에 쫓기면 어쩔 수 없이 내야 하는데 캐릭터에 대한 아쉬움이 있었어요. 한 명 한 명 힘을 주고 싶었거든요."
20부작으로 제작된 '무빙'은 첫 주에 1~7화가 한 번에 공개된 뒤 매주 2화씩 공개되고 있다. 몰아보기가 익숙한 트렌드와 배치되는 흐름이다. 강풀 작가는 "지금의 공개 방식이 마음에 든다"며 '무빙'을 세 시즌으로 나누어 설명했다.
"짧은 시리즈라면 함께 공개하는 게 맞지만, 저희는 호흡이 긴 드라마기 때문에 지금의 공개 방식이 마음에 들어요. 저는 처음부터 세 시즌을 쓴다고 생각했어요. 아이들의 이야기 하나, 부모 세대의 이야기 하나, 함께 뭉치는 이야기 하나 이렇게요. 7/7/7로 가고 싶은 마음도 있었는데 협의를 거쳐 7/7/6으로 갔어요. 초반에는 20부가 길다더니 지금은 20부가 짧은 거 아니냐는 말이 나오는데 기분이 좋으면서도 '누구 죽으라는 거야?'라는 생각도 들어요. 오히려 한 번에 풀었으면 피로감이 있지 않았을까요."
'히어로물의 탈을 쓴 멜로'라는 생각으로 각본을 집필했다는 강풀 작가의 말처럼 '무빙'은 매 에피소드 다양한 장르의 매력을 보여주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강풀 작가는 "다음에 뭐가 나올까 고민하게 되는 것 같다"며 '무빙'이 이렇게 사랑받는 이유를 분석했다.
"복합적인 것 같아요. 확실한 장르물이지만 하이틴 멜로, 첩보 멜로, 클래식한 밑바닥의 멜로, 장르가 매번 바뀌어도 재미가 있어서 그런게 아닐까요.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준비했어'라는 느낌이죠. 그래서 각자 취향에 맞게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8~11화에 열광하는 사람도 있지만 '희수 언제 나오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잖아요. 그리고 배우분들이 연기도 잘했고 연출도 잘해서 하나하나 완성도가 높죠. 그러니 다음에 뭐가 나올까 고민하게 되는 것 같아요."
'무빙'은 류승룡, 한효주, 조인성, 류승범, 차태현 등 초호화 라인업을 자랑한다. 배우들의 라인업에도 의견을 냈던 강풀 작가지만, 실제로 캐스팅 보드에 이름이 하나 씩 올라갔을 때는 스스로도 믿지 못할 정도였다.
"원했던 배우들이 다 있었어요. 어딜 가도 주연을 하실 분들이잖아요. 이분들이 붙으면서 각자의 신에서 보여주는 시너지가 굉장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제가 한 명 한 명의 이야기를 보여주면서 너무 파고든다는 비판도 받았는데 그렇기 때문에 연기를 잘하는 배우들이 필요했어요. 원작과의 싱크로율을 생각하지는 않고 개인의 서사가 늘어났기 때문에 그 서사에 어울릴 배우를 찾았어요."
화려한 캐스팅을 자랑하는 출연진이 연기하는 캐릭터 중 번개맨과 프랭크는 원작에는 없던 새로운 캐릭터다. 원작을 본 팬들에게는 두 캐릭터의 등장이 약간 의아한 점도 있었다. 이에 강풀 작가는 "두 캐릭터는 상호 보완적 관계"라며 새로운 캐릭터를 투입한 이유를 밝혔다. 또한, 두 캐릭터를 연기한 차태현과 류승범에게도 감사를 전했다.
"부모 세대와 자식 세대의 중간을 넣고 싶었어요. 차태현이라는 배우가 잘한 게 뭐나면 번개맨은 몸에서 전기가 흐르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 심지어 부모와도 관계가 어색해요. 프랭크가 번개맨을 때리다가 멈추잖아요. 왜 그랬을까를 생각해보면 자기처럼 보이지 않아서 그랬을까라는 거죠. 프랭크는 초반부가 하이틴 멜로 빠질 수 있기 때문에 긴장감을 주기 위해 투입한 인물이에요. 원래는 후속작인 '히든'에 나올 인물이었는데 앞으로 데려왔어요. 1화를 쓰고 나니 류승범밖에 안 떠오르더라고요. (동네 친구인) 류승완 감독 사무실로 가서 영상통화로 제안을 했어요. 원래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하더라고요. 모르고 한짓이니까 이해를 해주시더라고요. 일주일 만에 전화가 와서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어설프게 연기하면 별볼일 없는데 정말 잘해줬어요. 저희에게 신의 한 수가 된 것 같아요."
직접 각본에 참여한 강풀 작가 스스로도 리미트를 해제했다. 그 결과 원작을 뛰어넘는 오리지널 시리즈가 탄생했다. 강풀 작가는 "원작보다 낫다는 평가를 들을 때 기분이 이상하다"면서도 결과물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감독님이 어떻게든 할 테니 멈칫하지 말라고 하셨어요. 저한테는 고마웠죠. 그러다 보니 만화로 그렸다면 못 그릴 장면을 쓰게 되더라고요. 감독님이 알아서 해주시겠지라는 맹목적 믿음이 있어서요. 주원의 100대 1 격투신 같은 경우에도 만화로 그렸으면 100명을 진짜 그렸을까 싶은 거죠. 후반부에는 그런 장면이 더 많이 나와요. 번개맨도 마찬가지예요. 원래는 봉석이가 동경하는 인물이 슈퍼맨인데 저는 우리나라 캐릭터를 하고 싶었어요. 캐릭터가 EBS거니까 '협의 해줘' 이런 생각으로 그렸어요. 그런 부분은 정말 고마웠어요. 저는 편집점만 맞추고 CG가 안 깔린 영상으로 20화까지 다 봤는데 만족스러워요."
'무빙'의 등장인물은 다양한 초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나름의 제한을 가지고 있다. 주원은 초인적인 재생 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고통은 그대로 느끼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강풀 작가는 "'무빙'은 슈퍼히어로물이 아닌 히어로물"이라고 그 차이를 강조했다.
"만화를 그릴 때도, 극본을 쓸 때도 영웅이라는 기준을 지키는 사람들로 잡았어요. 디즈니+에서 '무빙'을 슈퍼히어로물이라고 소개하는데 저는 계속해서 '히어로물'이라고 말했거든요. 그런데 안 바꿔주더라고요. 너무 막강하고 전지전능한 초능력이 아니라 초능력에 한계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다만, '무빙'이 공개되기 전 '한국형 히어로물'은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부정적인 시각도 존재했다. 실제로 무수히 많은 실패 사례가 있기 때문이었다. 한국형 히어로물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꼭 하고 싶었던 답변"이라고 입을 뗀 강풀 작가는 그렇기 때문에 서사에 집중해야 했다고 설명했다.
"그렇기 때문에 서사가 중요했어요. 갑자기 하늘을 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사람을 보여주지 않고 초능력을 보여주면 뜬금없잖아요. 지루하다고 생각해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어요. 먼저 그 사람을 보여줘야지 초능력이 어색하지 않을 것 같았어요. 20부작이라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더 많은 개인을 보여주려고 했어요."
강풀의 '무빙' 세계관에는 '무빙' 말고도 '타이밍', '브릿지' 등 다양한 작품이 존재한다. 프랭크가 등장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히든'도 준비 중이다. '무빙'의 성공으로 시즌제 이야기도 나오고 있지만, 강풀 작가는 일단 은 현재에만 집중했다.
"지금은 아무 생각이 없어요. 작가 생활을 오래했지만 각본을 쓰는 건 처음이라서요. 9월 20일에 끝나는데 그때까지는 억지로 머리를 비워두려고 해요. '무빙' 웹툰과 드라마가 많이 다른데 다른 드라마가 나오면 역시나 많이 달라질 텐데 아직 거기까지 생각할 여력은 없는 것 같아요. 지금은 매주 성적표를 받아보는 느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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