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읽기] 과학적 사실과 정치적 결정 사이의 거리
(서울=뉴스1) = 정치는 좌우 성향을 막론하고 과학적 사실을 활용한다. 그런데 환경 이슈에 관한 정치적인 결정에 과학적 사실이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살펴보면 흥미로운 점을 발견할 수 있다. 크게 두 단계로 나누어서 설명 가능한데, 첫 번째는 과학기술이 정치적 담론에 진입하는 단계이고, 두 번째 단계는 정치적 담론에서 전체 또는 일부가 해석되는 단계다.
프레온가스 등의 불소 화합물이 오존층을 파괴한다는 과학적인 사실이 밝혀진 이후 해당 물질을 생산하는 화학회사의 영향력으로 약 4년간 공론화가 지연되었으나 해당 내용을 논문에 발표한 연구자가 미국 하원 청문회에서 관련 내용을 증언하면서 정치 담론에 등장했다. 정치적인 담론에 진입한 지 4년 만에 미국 등의 나라에서 염화불화탄소 사용을 금지하게 된 것은 과학적 사실이 환경정치에 비교적 빠르게 받아들여진 경우로 볼 수 있으며, 이후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이 강력한 이행력을 보여주었던 몬트리올 의정서가 체결됐다. 이와 유사한 사례로, 유럽의 대기오염물질 국경 간 이동 문제의 경우에는 과학적인 발견이 국가 간의 논의로 이어지기까지 약 5년이 걸렸으며, 이후 유럽 권역에서 환경협정 체결 및 발효로 정책적 합의가 이뤄지기까지 약 10년이 소요됐다.
반면에 과학적인 사실이 정치적인 담론에는 진입했으나 그 해석에 합의가 이뤄지지 않는 경우도 존재한다. 동북아시아에서 미세먼지 오염원 규명이 그 대표적인 예이며, 최근에 많은 논란이 진행 중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의 영향 역시 그러한 경우에 해당한다. 정도의 차이가 있으나 기후변화 또한 국내외에서 여전히 다양한 방향의 정치적 메시지가 나오는 주제다. 이렇게 사안별로 과학적인 사실이 정치적 담론에 진입하고, 그 이후 정책적 합의가 이어지는 데에 걸리는 시간은 상당히 다양하다.
과학적 사실이 정치적 담론에 진입한 이후 정책적 합의로 이어지는 데에 시간이 걸리는 이유로는 우선 과학자의 화법과 정치인의 화법의 차이에서 찾을 수 있다. 과학자는 연구 결과가 필연적으로 가질 수밖에 없는 불확실성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 그러나 'A의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과학자의 말에 정치인은 지지 기반에 따라 A를 주장하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 가능성을 부각하기도 한다.
이렇게 과학적인 '사실'은 가치중립적이나 정치는 매우 가치지향적이므로 이들 간의 거리는 태생적으로 멀 수밖에 없다. 그 거리는 대중의 관심도에 영향을 받으며, 그 거리를 좁히기 위해서는 과학적 사실의 공론화 과정에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과학적 사실이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 피부에 와닿는 설명으로, 필요하다면 예술적인 기법을 활용해 가공될 필요가 있다. 기후변화라는 과학적인 사실을 부정하고 싶은 미국의 석유화학 회사들이 광고회사나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여 의도적인 메시지 왜곡 노력을 해왔다는 점은 반대로 기후변화가 우리 삶에 미치는 영향을 효과적으로 전달하기 위한 노력이 부족하지 않았는지를 돌아보게 한다.
과학적 사실이 정치적 담론에 진입한 이후 정책적 합의로 이어지는 데에 시간이 걸리는 이유로 더욱 중요한 것은 환경 분야에서 밝혀진 과학적 사실은 많은 경우 산업계의 오염물질 배출로 인해 인간의 건강과 삶에 악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산업계가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결론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불행히도 문제점을 제시한 과학자가 해결책까지 제시해 주지는 않으므로 산업계에서 문제를 해결할 현실적인 방안이 당장 없는 경우, 또는 비용이 발생되는 경우 과학적인 사실을 부정하거나 해결의 시점을 유예하는 방식으로 대응한다. 이러한 경향성은 이해관계자의 범위가 넓을수록, 변화가 필요한 이해관계자 집단의 영향력이 강할수록 정치적인 힘을 크게 발휘할 수 있다.
이러한 긴장 관계에서 필요한 것은 문제해결을 비용이 발생하는 활동이 아니라 산업 경쟁력을 갖추는 투자로 관점을 전환하는 것이다. 여기에는 기술력이 필수적으로 요구되며, 문제 제시와 해결 과정 모두에서 과학자가 담당해야 할 역할이 크다. 이와 더불어 정치인과 이해관계자들은 글로벌 환경 변화에 관심을 갖고 전환의 대상과 시점을 전략적으로 판단할 수 있어야 하겠다. 미리 대응하면 경쟁력이 되지만 뒤늦게 대응하면 비용이 될 수 있다. 기존의 냉매(CFC)를 대체하는 물질을 개발한 기업이 큰 이익을 얻었던 사례, 그리고 최근 폐배터리 재활용 등 녹색전환 산업의 주가 상승이 시사하는 바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김은아 국회미래연구원 혁신성장그룹장
※미래읽기 칼럼의 내용은 국회미래연구원 원고로 작성됐으며 뉴스1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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