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행·경찰 매수…용인될 수 없는 ‘삼성 노조와해’에 면죄부[기자메모]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15일 단행한 광복절 특별사면 대상에 삼성 노조 와해사건 연루자들이 다수 포함됐다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삼성 노조 와해 사건은 삼성그룹이 무노조 경영 방침에 따라 임직원들을 통해 삼성전자서비스와 삼성에버랜드 등에서 노조를 만들지 못하도록 각종 방해공작을 벌인 사건이다.
노동계는 윤 대통령이 서울중앙지검장이던 2018~2019년 삼성 노조 와해 사건을 수사·기소했다는 점을 짚으면서 “셀프 사면” “노사 법치주의의 민낯”이라고 비판했다. 셀프 사면도 문제지만 삼성의 노조 와해 사건이 사면 대상이 된 것 자체가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삼성의 노조 와해는 ‘평범’한 부당노동행위가 아니었다. 검찰이 기소 당시 표현한 것처럼 “전사적 역량이 동원된 군사작전식 조직범죄”였다. 아울러 경찰 매수, 노조 조합원 미행·사찰, 조합원 시신 탈취, 노조 와해를 위해 작성한 ‘S그룹 노사전략 문건’의 체계적 집행 등 세부사항을 뜯어보면 믿기지 않는 내용으로 가득 차 있다.
삼성은 2011년 7월1일 복수노조 시행을 앞두고 에버랜드 노동자인 조장희씨 등이 노조 설립을 추진하자 이들을 ‘문제인력’으로 규정하고 곧장 대응에 나섰다. 무리하게 징계사유를 만들어 조씨를 해고했다. 이른바 ‘패트롤’ 계획을 세운 뒤 미행·사찰을 서슴지 않았고, ‘문제인력’의 개인정보인 차량 번호·주소를 무단으로 수집했다. 특히 조씨가 같은해 10월3일 자녀들과 에버랜드 테마파크에 놀러 온 것까지 보안업체 직원을 통해 사찰한 뒤 일일동향 문건으로 정리했다. ‘대항사원(동향 보고자)’과 ‘퇴로관리자(에버랜드 문제인력과 친한 사람)’까지 지정해 동향을 파악했다. 삼성의 노조 와해로 적응장애 질병이 발생한 조씨는 2020년 산재 승인을 받았다.
‘삼성전자서비스 노조원 고 염호석씨 시신 탈취 사건’도 사회적으로 큰 충격을 줬다. 삼성이 노조가 생긴 협력사를 폐업시키는 등 노조 탄압의 강도를 높이자 삼성전자서비스 양산 협력사 노조 분회장 염호석씨(당시 34세)는 2014년 5월15일 “노조가 승리하는 날 나를 화장해달라”는 유서를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염씨 죽음을 계기로 노조가 강경투쟁을 벌일 것을 우려한 삼성은 장례를 ‘노조장’이 아닌 ‘가족장’으로 바꾸려고 염씨의 부친에게 합의금 6억원을 주고, 노조원들 몰래 시신을 서울에서 부산으로 옮겨 화장했다. 이 과정에 삼성의 뒷돈을 받은 정보경찰들이 개입했다. 삼성이 노조 와해를 위해 국가권력까지 매수한 것이다.
법무부는 특별사면 보도자료에서 “업무방해, 노조법 위반 등 사건 주요 기업 임직원 19명”이 형선고실효 및 복권이 됐다고 하면서 책임자급은 제외됐다고 설명했다. 노조 와해를 기획하고 주도한 책임자에 비해 실무자들의 책임은 상대적으로 가벼울 수 있다. 하지만 이 부분은 양형 과정에서 판단하면 될 일이지 사면까지 할 근거가 될 수 있을까. 2019년 에버랜드 노조 와해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법 형사33부 손동환 부장판사는 1심 판결문에 이렇게 적었다. “피고인 OOO 등은 회사 지침, 상사의 명령을 성실히 수행했을 뿐이라고 강변하지만 우리 사회가 기초로 삼은 약속보다 더 무거울 수 없는 위 사정만으로 이들의 행위가 모두 이해받을 수는 없다. 이들은 자신들로 인하여 고통받는 동료가 있음을 알면서 그들이 모난 성격에 고집스럽고 이기적인 사람들이라는 이유로 그들이 받는 대접이 당연하다 여겼다.”
사면권은 대통령에게 있고 이번 사면에 대한 정치적 책임은 대통령이 질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헌법이 보장하는 노동3권을 부정한 삼성 임직원에 대한 사면이 적정하다고 의결한 사면심사위원회에 면죄부가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지난 9일 심사·의결에 참여한 사면심사위원 8명은 다음과 같다. 한동훈 법무부 장관, 이노공 법무부 차관, 신자용 검찰국장, 김선화 대검 공판송무부장, 김성돈 성균관대 교수, 최성경 단국대 교수, 조상철 법무법인 삼양 변호사, 이희정 고려대 교수.
김지환 기자 baldk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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