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시재생 문화여행 탐방기] 인천 개항장 거리를 가다 ②

2023. 8. 29.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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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딩숲이 즐비한 최첨단 현대 도시 서울에서 바닷가를 향해 약 1시간을 달리면 시간이 멈춘 듯한 장소를 만난다. 이곳은 인천항 근처에 자리한 인천 개항장 거리다. 바로 옆 인천항만 해도 집채만 한 화물선이 매일 화물 컨테이너를 실어 나르는 걸 볼 수 있다. 그런 21세기 정경과는 관계없다는 듯 인천 개항장 거리는 한국 근대사가 시작된 19세기 말~20세기 초 모습을 130여 년 동안 간직하고 있다.

인천 개항장 거리.

인천은 전 세계 여느 항구 도시의 운명과 비슷하게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문호를 개방하고 외세 문물을 받아들인 곳이다. 그로 인해 인천항(제물포)에는 한국 근대화를 보여주는 문화유산이 많이 남아 있다. 서양 무역상, 외교 사절, 선교사를 위한 저택과 호텔, 일본, 청나라 주민이 거주한 조계지 등 서양식, 일본식, 중국식이 절충된, 어디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개항지만의 풍경을 자랑한다. 

개항 당시 인천항(제물포)의 도시 풍경.

인천의 근대건축유산이 그 가치를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개항, 근대화, 식민지까지 이어지는 근현대사에 관심을 갖고 역사를 조명하기 시작하면서다. 안타깝게도 산업화와 도시화 과정에서 개발 논리와 식민지 유산이라는 논란에 밀려 많은 근대건축이 사라졌지만 근대건축의 중요성을 깨닫고 난 현재는 보존 가치가 큰 것부터 하나둘 발굴하여 보존 및 활용하는 중이다. 그 일환으로 인천시는 여러 건축물을 매입하고 보존, 활용하는 도시재생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개항장 이음 1977’ 외부.

‘개항장 이음 1977’이라는 이름의 건축물은 인천의 근대건축문화자산 재생사업 1호 유산이다. 세창양행(독일상사)의 간부였던 헨켈이 거주했던 주택 터 일부에 한국 근대건축 거장 김수근 건축가의 설계를 기초로 1977년 준공된 근대건축자산이다. 개인이 소유하던 주택을 2020년 인천도시공사가 매입, 최소한의 리모델링을 거쳐 2022년 6월 시민에 개방했다. 

'개항장 이음 1977’ 내부.

건물 내부를 들어서니 붉은 벽돌과 방마다 각기 다른 층고가 인상적이었다. 벽돌은 1905년 일본인 무역상이 만든 고려정미소의 벽돌을 가져와 사용했다고 한다. 약 119년 전 것이라 추정한다. 서양에 대한 문호 개방, 일제의 수탈, 한국 근대건축을 대표하는 김수근의 철학까지, 이음 1977은 여러 요소가 절충된 인천만의 근대건축유산 특색을 잘 보여주고 있다. 현재는 인천에 관심을 갖고 작업한 젊은 창작자들의 작품을 소개하는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인천시 문화재 활용정책 제1호 ‘제물포구락부’.
복합문화공간으로 사용되는 ‘제물포구락부’ 내부.

이음 1977을 나오면 하얀색 벽과 양철지붕이 눈에 띄는 ‘제물포구락부’와 마주하게 된다. 제물포구락부는 1901년 인천에 거주하던 외국인들의 사교모임 장소로 건축된 곳으로 대표적인 근대 국제문화교류의 현장이다. 광복 후에는 미군을 거쳐, 1953년부터 1990년까지는 인천시립박물관으로, 1990년에서 2006년까지 인천문화원으로 사용되었다. 이후 2020년 1월에 인천시 문화재 활용정책 제1호 사업으로 선정되어 누구나 와서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재탄생했다. 

‘긴담모퉁이집’.
인천광역시 골목길 재생 시범사업 대상지로 선정된 일대.

약 20분을 걸어 다음 행선지에 도착했다. ‘긴담모퉁이집’이라는 특이한 이름의 공간으로 이곳은 원래 옛 인천시장 관사였다. 긴담모퉁이집은 제물포구락부, 인천시민애(愛)집에 이어 인천시 문화재 활용정책 3호 공간으로 선정, 2023년 지역 문화공간으로 개방됐다. 역시 민간 소유였던 곳을 인천시가 매입해 개관한 것이다. 건물과 함께 주변 일대도 인천광역시 골목길 재생 시범사업 대상지로 선정, 아름답고 깨끗한 골목길로 재탄생해 긴담모퉁이집으로 시민들을 초대한다.

‘긴담모퉁이집’에 남아 있는 다다미방.

긴담모퉁이집은 일본 전통 주택에 서구식 근대건축 요소를 도입한 ‘문화주택’의 전형이다. 이런 문화주택은 일본인들이 주로 거주했기 때문에 일식주택 또는 적산가옥으로 불리기도 했고, 적산가옥은 식민지 잔재라는 이유로 그동안 방치되어 사라진 경우가 많았다. 다행히 긴담모퉁이집은 건축 당시 원형을 거의 그대로 보존하고 있어 우리에게 식민지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준다. 

2년 후 재탄생할 ‘인천우체국’.

마지막으로 방문한 곳은 ‘인천우체국’이다. 일제강점기에 건설된 국내 1호 우체국으로 한국의 근대 우편 역사, 서양식과 일본식을 혼합한 절충주의 양식을 담은 역사적 장소이다. 2019년까지 인천중동우체국으로 사용되다가 노후 건축물 안전 문제로 현재는 사용하지 않아 밖에서 관찰할 수밖에 없었다. 개항장 거리를 갈 때마다 쓸쓸히 방치된 건물의 미래가 걱정되었던 참에 인천시가 우체국의 소유권을 취득해 보수공사를 거쳐 2025년 10월에 전면 개방할 예정이라는 소식을 듣고 찾아가봤다. 과연 2년 후에는 어떤 모습으로 탄생될까?

카페로 사용 중인 옛 일제강점기 대화조 사무소.

내가 방문한 곳의 특징은 도시재생과 활용이다. 죽었던 공간이 도시재생을 거쳐 재탄생해 문화공간 등으로 활용된 것이다. 개항장 거리의 인천개항박물관(옛 일제강점기 은행을 박물관으로 활용), 팟알 카페(옛 일제강점기 대화조 사무소를 카페로 활용)도 마찬가지다. 사용하지 않으면 제 기능을 잃어버리는 건물의 특성상 근대건축유산 보존에서 활용과 도시재생은 떼려야 뗄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원형을 잃어버리지 않는 선에서 재생시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근대건축문화자산 재생사업 2호로 예정되어 있는 곳.

인천시는 2호, 3호를 지속적으로 발굴해 인천만의 특색 있는 재생사업을 이어나갈 계획이다. 근대건축물은 박제된 역사가 아닌 현재 우리와 함께 생활하는, 그리고 다음 세대에 넘겨주어야 할 살아 있는 역사이다. 130년 전부터 지금까지 살아 숨 쉬는 역사를 앞으로도 지켜가게 될 인천 개항장 거리의 새로운 모습을 기대해 본다. 

대한민국 정책기자단 정수민 amantedeparis@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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