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개월 남았는데 "준비 못했다" 80%...중소기업 중대재해법 비상

김성진 기자 2023. 8. 29.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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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소기업 중대재해법 D-5개월]②중대재해법 이해도 안되는데 컨설팅 받은 기업 4.4% 불과

50인 미만 기업들은 중대재해처벌법 적용을 내년 이후로 더 유예해달라고 꾸준히 요구해왔다. 사업주가 책임을 지고 중대재해를 예방하자는 법의 취지는 공감하지만 인력상, 재정상 그럴 여건이 안 됐다는 것이다. 중소기업은 사업주가 구속되면 대기업보다 경영에 타격을 크게 받는데, 기업이 아예 폐업할 위험도 크기 때문에 법을 시행하기 전 현장을 면밀히 조사하고, 정부가 철저히 지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중소기업중앙회(중앙회)는 지난 23~25일 5~50인 중소기업 892개사를 조사한 결과 85.9%가 "법 유예기간을 추가로 연장해야 한다"고 했다고 29일 밝혔다. 중대재해법은 지난해 실시됐지만, 50인 미만 기업은 2년 유예기간을 줘 내년 1월27일부터 적용을 받는다.

응답 기업의 80%는 "법 시행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했다"고 했고 29.7%는 "아무 준비도 하지 못했다"고 했다. 준비하지 못한 이유(복수응답)는 △전문 인력 부족(35.4%), 예산 부족(27.4%), 의무를 이해하기 어려움(22.8%) 등이 꼽혔다.

영세 기업들은 가뜩이나 인력 채용이 어려운데, 안전전문가를 채용하기는 더 어려운 실정이다. 중대재해법은 앞으로 50인 미만 기업도 △안전보건관리책임자 △관리자 △담당자를 별도로 채용하게 했다. 관리자와 담당자는 안전 수칙 점검 등 일상적인 업무를 맡지만 안전보건관리책임자는 예산·권한을 부여받고 안전 업무를 책임지는 비중 있는 역할을 맡는다. 그만큼 전문성도 요구되고, 대기업들은 CSO(최고안전책임자)라는 별도 직책을 운영하는 식으로 법에 대응한다.

50인 미만 기업은 기본적인 채용을 하기에도 인력 예산이 충분하지 않다. 현재도 행정 직원이 부족해 총무·회계·인사 등 업무를 직원 한명이 겸업하는 기업이 수두룩하다. 전문가 채용은 비용 부담이 더 큰데, 그마저도 먼저 법 적용을 받은 50인 이상 기업들이 전문가들을 이미 채용한 탓에 전문 인력이 50인 미만 기업까지 오지 않는다. 서울에서 철물·금속업을 하는 한 사업자는 "생산에 투입할 인력도 뽑지 못해 허덕인다"고 했다. 충북에서 자동차 부품 제조업을 하는 사업자는 "안전관리자를 채용하면 전문가이니 못해도 연봉 3000만원은 줘야 할 텐데 정부가 비용 지원을 해주면 좋겠다"고 했다.

법이 복잡한 점도 문제로 꼽힌다. 중대재해법은 사업장마다 발생 가능한 재해별, 갖춘 설비별로 안전 체크리스트를 마련해 수시로 체크하도록 하고, 위험성 평가도 하는 등 여러 의무를 규정했는데 인력이 적은 50인 미만 기업이 소화하기에 의무가 과다는 지적이 꾸준하다. 또 중소기업은 전문적인 법적 조력을 받을 수 없어 법 대응 준비를 해도 제대로 하고 있는지 불안감이 크다고 한다.

서울에서 계량기·측정기 제조업을 하는 중소기업 사업자는 "법령이나 책자를 읽어도 두루뭉술해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며 "고용부가 배포한 책자도 비상사태 매뉴얼, 시나리오, 조치 계획 등 비슷한 말을 따로 쓰니 내용을 이해할 수 없었다"고 했다.

산업안전보건공단이 컨설팅을 실시하고 있지만 지난해 50인 미만 기업 1만4000곳, 올해 1만6000곳밖에 받지 못했다. 50인 미만 기업 68만곳의 4.4% 수준이다. 정부의 산업재해 예방 사업 예산은 2019년 3644억원에서 올해 1조1987억원으로 규모는 늘었지만 전년 대비 증가율은 올해 9.7%로 최근 5년 사이 가장 낮다. 중소기업계 관계자는 "중대재해법이 대기업에 시행될 때 관심이 컸고, 지금은 관심도 지원도 크게 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컨설팅을 받아도 문제라는 지적도 있다. 경기 평택에서 전기회로 개폐업을 하는 상시 근로자 23인 기업 사업주는 "각종 기관과 부서가 방문해 보완 사항 지적만 하고 가는데 기관별로 지적이 달라 여기저기 비용만 많이 나간다"며 "사업주도 안전 전문가가 아니니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건지 알 수 없어 답답하다"고 말했다.

50인 미만 기업은 지난해 산업재해 사망자가 388명(60.2%)으로 전체 기업 중에 가장 많았다. 하지만 전년 435명(63.7%)에서 감소한 수치다. 중소기업계는 중대재해법 시행 없이도 중소기업들이 환경 개선 노력을 했다고 주장한다.

이명로 중앙회 인력정책본부장은 "철저한 준비와 지원 없이 법이 시행돼 사업주가 구속되거나 징역형을 받으면 사업주 역할이 절대적인 소규모 사업장은 폐업 위기에 처할 수밖에 없다"며 "소규모 사업장의 생존과 그곳에 몸담은 근로자들의 생계가 달린 만큼 9월 정기국회에서 법 적용 유예기간을 최소 2년 이상 연장하는 것이 민생법안으로 처리될 수 있도록 여야가 적극적으로 협의해달라"고 말했다.

김성진 기자 zk007@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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