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클럽] ‘금쪽이’가 되어버린 ‘자존감 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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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인 친구와 오래간만에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교편을 잡은 지 20년, 교직을 천직이라 여겼는데 이렇게까지 힘든 적이 없었다고 하더군요.
학생들과 커뮤니케이션하는 즐거움으로 가르쳤는데,
더 이상 소통은 불가능해지고,
수업시간에 아이들을 통제할 수는 없다고 합니다.
학부모에게 심한 질책을 받고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며 우는 신규 선생님을 달래기도 했다면서,
서이초 교사 추모집회에 나오는 교사들의 마음을 이해해 달라고 했습니다.
우리 교육은 어쩌다 이렇게 되어버렸을까요?
아이가 떼를 쓰면 감정을 읽어주며 “그랬구나…”라고 대하라는 육아법이
몇 년 전부터 우리 사회에서 거세게 유행중입니다.
아이의 자존감을 길러줘야 한다며 야단쳐야 할 순간에 야단치지 않는 부모들도 많지요.
‘금쪽이’가 되어버린 ‘자존감 세대’에 대한 고민은 비단 우리나라만의 것이 아닙니다.
독일과 미국도 마찬가지라고 하네요.
우리와 비슷한 지점에서 고민하는 독일, 미국 책을 소개해 보았습니다.
교육의 본질은 훈련… ‘감정’ 읽어주는만큼 ‘도덕’도 가르쳐야
“당신 그림에 가장 큰 영향을 준 건 무엇인가요?”라는 물음에 화가 에드워드 호퍼(1882~1967)는 답했습니다.
저는 항상 저 자신에게 의지해 그렸습니다. 제게 큰 영향을 준 것이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최근 폐막한 서울시립미술관의 에드워드 호퍼 회고전에 넉 달간 33만명이 들었다는 기사를 보고
미국 하퍼앤드로 출판사에서 1962년 나온 큐레이터 캐서린 쿠(1904~1994)의 인터뷰집 ‘The Artist’s Voice’를 펼쳤습니다.
책에서 쿠가 “스스로를 만족시키기 위해 그리나요, 다른 이들과 소통하기 위해 그리나요?”라 묻자, 호퍼는 답합니다.
오직 저 자신을 위해 그립니다. 제 작품이 남들과 소통하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저는 그림 그릴 때 절대로 대중을 생각하지 않아요. 절대로요.
남을 위한 작품은 예술이 아닌가? 생각하다 보니 10년 전 뉴욕 작업실에서 대지미술가 크리스토(1935~2020)를 인터뷰했을 때 들은 말이 떠올랐습니다.
자유를 찾아 공산화된 고국 불가리아를 탈출했던 그에게 “당신에게 예술이란?” 물으니 이렇게 답하더군요.
우리 자신을 위한 것. 다른 누군가를 위한 것이라면 예술이 아니라 선전(propaganda)이겠지.
호퍼는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시대’에 괴테가 적은 이 문장을
성인이 된 이후 줄곧 지갑 속에 지니고 다녔답니다.
모든 문학 활동의 시작과 끝은 나를 둘러싼 세계를 내 안의 세계를 통해 재현하는 것, 즉 모든 것을 파악하고, 연관시키고, 재창조하고, 조형화하고, 개인적인 형태와 독창적인 방식으로 재구성하는 것이다.
예술의 알파요 오메가는 결국 ‘나’라는 말.
이에 동의하는 예술가라면, 자신을 위해 작업할 수밖에 없는 거겠죠. 곽아람 Books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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