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자에겐 경쟁보다 시행착오를 장려해야한다

이균성 논설위원 2023. 8. 29. 14:01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이균성의 溫技] 과학자들과 싸우는 정부

(지디넷코리아=이균성 논설위원)정부가 내년도 주요 연구개발(R&D) 예산을 올해보다 14% 가량 줄이기로 하면서 과학계가 시끄럽다. 정부는 지금까지의 연구개발 관행에 심각한 문제가 있어 혁신해야 한다는 입장인 것 같고, 과학계에서는 반대 성명이 이어지며 “국가 파괴 행위”라는 지적까지 나왔다. 이 소란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알 수 없으나, 정부와 노조가 아니라 정부와 과학계가 대립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정부가 R&D 예산을 손보며 내건 명분은 대충 이렇다. 과학계에 R&D 예산을 좌지우지 하는 기득권(이를 두고 ‘R&D 카르텔’이란 생소한 말까지 나왔다)이 있어 R&D에 비효율이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결과적으로 국민의 세금인 예산의 낭비를 초래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R&D 제도를 혁신해야 한다는 의도다. 혁신의 방향은 ‘갈라 나눠 먹기식 R&D’를 ‘선도형 R&D'로 전환하는 길이다.

이종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이 22일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정부 R&D 제도 혁신 방안'과 '2024년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 배분·조정 결과'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정부의 지적이 완전히 터무니없거나 방향이 엉뚱하다고만 할 수는 없다. 과학계에서도 일부 비효율에 대해서는 인정하는 듯하다. 하지만 과학계의 반발도 충분히 공감이 된다. 일단 R&D 예산 절대액이 줄어들면 연구 환경이 취약해질 것은 뻔하다. 기업으로 치면 사실상의 구조조정이다. 게다가 ‘R&D 카르텔’이라는 비난까지 받고 있다. 과학계가 통째로 매도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도 있겠다.

정부의 일처리 방식에도 화가 날만 하다. 예산삭감은 대통령이 지난 6월 국가전략회의를 통해 “나눠 먹기, 갈라 먹기식 R&D를 전면 재검토해야 한다”고 발언한 뒤 두 달 만에 전격적으로 감행됐다. 과학계는 이번 결정이 “연구 현장과 소통 없이 관료 주도로 급조한 전형적인 톱·다운 방식의 정책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그 과정으로 볼 때 판단도 섣부르고 행정도 졸속이라는 생각이 들만도 하다.

정부가 과학계를 불온한 집단으로 몰아붙이면서까지 대치함으로써 무엇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지 알 길은 없다. ‘나쁜 버릇’을 고쳐놓겠다는 심사로 보인다. 그런데 진짜 나쁜 버릇이 과학 연구자들 탓인지 관료들의 문제인지도 따져볼 필요는 있다. 만약 실제로 ‘R&D 카르텔’이 있다면 그 카르텔은 관료와 무관하다고 장담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찌됐든 예산 집행에 관료도 개입되지 않나.

당장의 예산 삭감이 불러올 혼란보다 더 우려스러운 것은 대통령과 주무부처 고위 관료가 과학에 대해 갖는 인식의 문제다. 이번 예산 삭감과 함께 나온 R&D 제도 개혁 방향의 키워드는 ‘선도’와 ‘효율’과 ‘상대평가’ 등이다. 특히 불편한 것은 ‘하위 20% 퇴출’이었다. 이는 과학과 연구 또한 경쟁의 대상이어야 한다는 걸 뜻하다. 결국 R&D의 성과를 높이기 위해 강력한 경쟁을 도입하자는 이야기다.

‘경쟁이 생산성을 높인다’는 사실은 어떤 경우 진실이다. 그러나 모든 경우는 아니다. 그게 ‘절대 진리’는 아닌 거다. 특히 과학에 대해서는 이 문제를 심도 있게 고민할 필요가 있다. 과학은 진리에 대한 탐구다. 진리는 경쟁을 통해서 드러나지 않는다. 진리는 당연하다고 여겨지던 것을 부정하는 회의적 가설을 세우고 지칠 줄 모른 실험을 통해 끝없는 시행착오를 반복할 때 조금씩 드러나게 된다.

과학자나 연구자의 최대 덕목은 승리에의 욕망이 아니라 진리를 향한 끝없는 시행착오를 즐길 줄 아는 것이다. 오직 시행착오(실패)만이 진리에 접근하는 길이다. 그러니 과학과 연구라는 것이 본질적으로 얼마나 비효율적인 것인가. 그런데 그 비효율이야말로 거대한 과학적 진보를 이루게 하는 통로다. 그걸 어떻게 기업이 할 수 있겠나. 국가가 과학에 투자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는 것이다.

콩나물시루에 물을 주는 것은 헛심 쓰는 일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래야 콩나물을 기를 수 있다. 과학도 그렇다. 콩나물시루에 낭비되는 물이 없게 하자는 말은 콩나물을 기르지 말자는 이야기와 같고, 과학에 낭비 요소를 없앤다는 이야기는 과학을 하지 말자는 뜻과 같을 수 있다. 과학 행정의 어려움이 거기에 있다. 세금을 쓰는데 성과가 없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어떻게 할 것인가.

그게 과학인 것을. 콩나물시루에서 물이 빠지지 않으면 물은 절약할 수 있지만 콩나물은 썩어버린다. 정부가 과학을 위해 할 일은 연구자들이 괴짜가 되어 시행착오에 몰입하게 하는 것이지, 정해진 규격에 맞춰 사는 직원을 양성하는 게 아니다. 양복에 넥타이 메고 그럴 듯하게 설득하는 능력이 있는 연구자를 조심하라. 대신 사람 만나기보다 연구실에 처박혀 시행착오를 반복하는 연구자를 대우하라.

그게 ‘R&D 카르텔’을 없애는 유일한 길일 수 있다. 과학계가 연구과제중심제도(PBS)를 바꿔야 한다고 줄기차게 주장하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그 문제일 수도 있다. 과학을 위해 과제가 아니라 괴짜들의 시행착오를 더 믿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균성 논설위원(sereno@zdnet.co.kr)

Copyright © 지디넷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