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초등생 30분 등교" 갈현1구역, 4000가구에 학교 대신 체육시설 지으라니

정영희 기자 2023. 8. 29.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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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은평구 갈현제1구역 재개발 조합이 지난 5월 초등학교 용지 정비계획 변경 중지를 신청한 이후 현재까지 용도 확정을 못했다. 해당 부지는 당초 초등학교 용도로 활용될 예정이었으나 서울특별시서부교육지원청이 학령인구 감소를 이유로 해제해야 한다는 취지의 의견을 제시해 결국 해제됐다./사진=뉴시스
'강북 재개발 최대어'로 손꼽히는 서울 은평구 갈현동 300번지 일대 재개발 '갈현1구역'이 초등학교 계획 부지의 용도를 확정하지 못해 사업 추진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관할 교육청은 학령인구 감소로 학교용지 해제가 타당하다는 의견을 보냈다. 이에 조합은 해당 부지에 학교 대신 아파트를 짓기로 했으나, 지방자치단체가 체육시설 건립을 제안함에 따라 조합원 분담금이 우려되고 있다. 가까운 초등학교는 물론 유치원마저 없어 어린 자녀를 양육하는 주민들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2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갈현제1구역 주택재개발정비사업조합(이하 '조합')은 초등학교 용지 정비계획 변경 중지를 신청한 지 3개월이 지났으나 현재까지 부지 용도를 확정하지 못했다. 조합은 지난 5월 은평구청에 당초 해제를 결정한 학교용지 정비계획 변경을 중지해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발송했다.

조합은 2017년 건축심의와 교육청 지침에 따라 7752㎡ 학교 부지를 확보해, '초품아'(초등학교 품은 아파트) 건립을 추진했다. 하지만 서울특별시서부교육지원청은 교육부의 교부 기준에 따라 36개 학급으로 구성된 초등학교를 건립하려면 최소 1만4220㎡가 필요하다고 통지했다.

학령인구 감소와 인근에 위치한 다른 학교 수를 감안해 추가 면적을 확보하더라도 심사 통과 여부가 불투명해 사업 지연 가능성이 제기됐다. 결국 학교용지 확보로 인한 사업 지연을 막고자 지난해 초 대의원회에서 90% 이상 찬성률로 학교용지 해체를 최종 결정했다. 일부 조합원은 '갈현1구역 순수조합원 모임'을 만들어 정비구역 변경을 반대했지만 조합은 속도전이 우선이라는 결정을 내렸다.

4000가구 건립이 예정돼 '강북 재개발 최대어'로 불리는 서울 은평구 갈현동 300번지 일대 갈현1구역이 초등학교 용지로 지정됐다가 해제를 결정한 기존 정비계획 변경을 일시정지했다. /자료=조합 제공


지자체 "초등학교 자리에 체육시설 지어라"


조합은 이 자리에 아파트 300가구를 더 짓는 방향으로 정비계획 변경을 추진했지만 구청은 시청 등 30개 관계기관에 인라인 스케이트장과 실내체육시설 건립에 관한 의견 검토를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조합 측은 "부동산 경기 침체와 금리 인상으로 조합원 부담이 늘어 학교용지를 해체하는 대신 가구 수를 늘리려고 한 것이어서 구청의 의견을 받아들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어 "이대로 정비계획을 수정하면 철거가 눈앞인 상황에 사업이 지연될 수 있다"고 정비계획 수정 보류의 뜻을 전했다.

이후 3개월이 넘는 시간 동안 조합은 학교용지를 포함한 기존 정비계획을 시행할지 또 다른 변경 방향을 설정할지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구청 관계자는 "현재로선 다시 학교 부지로 활용하긴 힘든 상황이어서 이미 조합 측에 용도 변경은 불가피하다고 전달했다"며 "조합에서 새로운 변경안을 마련해 조합원의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서부교육지원청 관계자는 "조합 측이 학교를 다시 지을 수 있는지 문의한 적은 없다"고 전했다.

조합원들의 불안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해당 사업지 면적은 23만8966.9㎡로 대지면적만 17만5863.9㎡에 이르고 총 4116가구(임대 620가구)의 대단지가 들어설 예정으로 학교가 설립되지 않을 경우 단지 초등학생들은 갈현2동에 위치한 갈현초로 등교해야 한다. 갈현초는 갈현1구역 중심으로부터 1.2㎞ 거리에 위치해 초등학생 걸음으로 30분 이상 소요된다.

과밀 학급도 문제다. 올해 기준 갈현초의 학급당 평균 학생 수는 약 22명으로 서울시 전체 평균(22.4명)에 육박한다. 예정대로 2026년 준공과 입주가 진행되면 학생이 더 많아질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서울시가 제안한 도심형 분교가 설치돼야 한다는 의견이 조합원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 2월 '서울형 분교 태스크포스(TF)'를 운영, 아파트나 오피스텔에 12~15학급 규모의 분교니 소규모 학교를 설치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주호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의 방침이기도 하다.

갈현1구역의 사례뿐 아니라 재개발·재건축 인근 학교들은 과소와 과밀학급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학교를 신설하기에 학령인구가 부족할 것으로 예상되면 인근 학교에 학생이 몰리게 되고, 반대로 새 학교를 지을 경우 폐교 위기를 맞을 수 있다.

갈현1구역과 비슷한 상황에 놓인 강동구 고덕강일3지구 내 강동리엔파크14단지도 입주 예정 가구 수가 학교를 설립하기에 부족해 교육청과 강동구청, 주민 사이의 갈등을 빚어 왔다. 이달 고덕강일3지구 내 입주민 대표와 부지 소유자인 서울주택도시공사(SH공사), 서울시교육청, 강동송파교육지원청 등은 초등학교 설립을 위한 협의체를 구성하고 소규모 학교 신설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갈현1구역 일부 조합원은 지난달 은평구청에 정비계획 원안 확정이나 분교 설립을 추진해달라는 내용의 청원을 올렸고 1014명이 참여했다. 전체 조합원 2677명의 37% 정도다. 한 조합원은 "교육청의 분교 설치 방안이 현실화되면 첫 번째 단지로 갈현1구역이 선정됐으면 한다"며 기대했다.

은평구청 측은 정비계획 원안 확정의 경우 교육청이 입장을 고수하고 있어 사실상 불가하다는 뜻을 전했다. 김미경 은평구청장은 "조합원들의 부담금 증가로 정비계획 변경 보류 요청이 제출되어 검토한 결과 잠정 중단된 사항"이라며 "다만 교육지원청 입장에 따라 학교용지 해제 변경은 불가피할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분교 건립 요청에 대해선 교육지원청에 적극 전달할 계획"이라고 부연했다.

서부교육지원청은 아직 분교 건립을 고려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다. 서부교육지원청 관계자는 "조합 측이 정비계획 원안 유지를 둘러싸고 학교 신설을 재개하겠다는 식의 문의를 한 적은 없어 분교 건립에 대해 논의된 바는 없다"고 말했다.

정영희 기자 chulsoofriend@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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