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4일 오후 1시 50분, 국회 본회의 시작을 10분 앞두고 김진표 국회의장실이 갑자기 어수선해졌습니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를 비롯해 박덕흠 이종배 전주혜 의원 등이 각각 ‘이재명을 위한 회기자르기 NO’ ‘방탄국회 회기꼼수 민주당은 각성하라’ ‘내편들기 국회의장 회기꼼수 규탄한다’라고 적힌 손팻말을 들고 의장실로 항의 방문을 온 겁니다.
더불어민주당이 8월 임시국회 종료일을 31일에서 25일로 앞당기는 ‘회기 결정의 안건’을 단독으로 올리면서 벌어진 일입니다. 통상 의사일정은 여야 합의를 거친 뒤 국회의장이 상정해 통과시켜왔는데, 민주당이 국회 스케줄을 줄여달라고 일방적으로 요구하고 나선겁니다.
민주당이 이러는 건 앞서 불체포특권 포기를 선언한 이재명 대표의 뜻에 따라 8월 마지막 주를 비회기로 만들고 싶어서였죠. 비회기에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하면 이 대표가 본회의에서 체포동의안 표결을 거치지 않고 바로 영장실질심사를 받을 수 있다는 겁니다. 체포동의안 표결까지 가게 되면, 가결이든 부결이든 민주당과 이 대표가 입을 정치적 타격이 만만치 않을 거란 계산 때문이겠죠.
“민주당은 8월 임시국회 회기를 이번주 안으로 종결하고자 한다. 비회기에 영장을 청구하라고 요구했더니 정부 여당이 쇼핑하듯 영장 청구를 요구한다며 비난하는데, 그렇게 비난할 일이 아니다. (중략) 체포동의안이 부결되면 방탄이라고 민주당을 공격하고, 가결되면 민주당이 분열됐다는 정치적 타격을 주려는 그야말로 바둑에서 말하는 꽃놀이패를 만들려는 의도다.”(8월 23일 박광온 원내대표)
이에 대해 국민의힘에선 “이재명 한 명 때문에 국회 문까지 닫아야 하나”라고 강력하게 반발했습니다. 검토해야 하는 민생법안이 산적했는데 이 대표와 민주당의 ‘내적 평화’를 위해 국회 일정을 조기 중단할 수는 없다는 겁니다.
“한때는 이 대표의 불체포특권을 위해 헌정사상 유례없는 공휴일 개회까지 밀어붙이더니 이제는 체포동의안 처리 과정에 당내 불화가 극대화 될까 비회기 때 영장이 청구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중략) 국민의 안전한 일상생활을 위한 대책 마련과 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여야가 시급히 머리를 맞대야 할 이 시점에 야당이 사법리스크를 최소화할 궁리에만 매몰돼 국회를 내팽개쳐서는 안 될 것이다.”(8월 21일 국민의힘 김기현 대표)
하지만 민주당이 어떤 당입니까. 자당 출신인 김 의장을 압박해 25일에 회기를 종료한다는 수정안을 기어이 상정시켰죠. 수정안에는 “국회법에 따르면 8월 임시회는 16일에 집회하고 해당 월의 말일까지로 한다고 명시돼 있으나, 효율적인 의사일정을 위해 회기결정의 건에 대해 수정안을 제출한다”고 적혀있었습니다. 무엇이 효율적인 의사일정이라는 건지는 민주당만 알 것 같습니다.
민주당은 ‘상정’ 열쇠를 손에 쥔 김 의장을 설득하기 위해 여당에서 반대하는 노란봉투법과 방송법 강행 계획도 한 수 접고 들어갔죠. 김 의장이 민주당 단독 회기 수정안을 상정하는 데에 반대 입장을 내비치자 “회기를 안 쪼개주면 원래대로 노란봉투법과 방송법을 처리하겠다”는 취지로 압박했던 것으로도 전해집니다. 이를 두고 당내에서도 “이 대표 체포동의안 표결 때문에 당론 법안 처리까지 미루냐”는 불만이 적지 않습니다.
어쨌든 결국 민주당이 밀어붙인 대로 8월 임시국회는 25일로 끝이 났습니다. 원내 1당이 스스로 국회일정을 줄여달라고 난리를 쳐서 1주일 먼저 끝내버리는 유례없는 황당한 일이 벌어진 겁니다. 저도 개인적 사정이 있으니 근무 일정을 1주일 줄여달라고 회사에 요구하고 싶지만, 평범한 정상적인 직장인들은 그렇게 안 하죠. (아니, 못하죠) 그런데 세비를 받고 일하는 국회의원들이 제 손으로 국회 문을 걸어 잠근 겁니다. 이 대표가 그토록 외치던 ‘민생’은 8월 마지막 주에는 안 챙겨도 되는 것인가 봅니다.
민주당은 사실 국회가 열려있는 동안에도 ‘장외투쟁’을 병행해 왔습니다. 일본 정부의 후쿠시마 오염수 투기를 규탄한다며 회기 중이던 8월 22일부터 ‘100시간 집중 대응 방안’을 이어가고 있죠. 22일 당 후쿠시마 총괄대책위 상임위원장인 우원식 의원을 필두로 의원들이 주한일본대사관을 항의 방문한 것을 시작으로 25일 거리 행진, 26일 총집결대회, 27일 일본 후쿠시마 현장 집회가 줄줄이 이어졌습니다. 국회에 당력을 집중해도 모자를 시기에 정치를 스스로 내려놓고 정쟁을 찾아 거리로 나간 모양새입니다.
문제는 예정에 없던 장외투쟁을 졸속으로 진행하려다 보니 온통 실수투성이라는 점이죠. 당내에서 “할 거면 진정성을 갖고 제대로 하든가, 주먹구구식으로 우왕좌왕하느라 시간만 허비한다”는 불만이 쏟아지는 배경입니다.
22일 우 의원 등 대책위는 주한일본대사관으로 항의 방문을 하러 갔지만 대사관 측 거부로 민주당 결의문도 전달하지 못한 채 경찰에 가로막혀 돌아섰습니다. 우 의원은 다음날 MBC 라디오에서 “대사관 직원 아무도 나오지도 않고, 정말 코빼기도 안 보이고, 우리 경찰이 가는 길을 막고, 정말 황당한 일을 겪었다”고 하소연하더군요. 하지만 대책위 소속 한 의원은 “명색이 제1야당이 외국 대사관을 항의 방문하는데 경찰과의 사전 협의나 집회 신고도 하지 않아 한국 경찰에게 제지당하는 일이 벌어졌다”고 했습니다. 대사관 항의 방문 일정도 직전에야 뒤늦게 확정된 탓에 참가 의원들을 모집하는데 애를 먹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 과정에서 한 다선 의원은 ‘계획부터 좀 세우고 따라오라 해라’고 불쾌함을 표했다고도 하네요.
민주당은 애초 광화문에서 용산까지 거리 행진도 24일로 예고했다가 전날 부랴부랴 취소하고 25일로 일정을 재공지했습니다. 48시간 전에 미리 해야 하는 집회신고를 못 한 탓이죠. 한 의원은 “과반 의석을 가진 제1야당인 만큼 여론전보다는 입법 과제에 좀 더 집중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지적뿐만 아니라 비가 와서 위험할 수 있다는 지적과 집회신고 누락 문제 등이 겹쳤다”고 설명했습니다. 장외는 아니지만 국회 본청 앞에서 23일 저녁 진행된 촛불집회도 행사 3시간여 전에야 공식 공지가 나갔을 정도이니, ‘퍼포먼스에 강한 정당’, 민주당이 요즘 정신이 없긴 없나 봅니다.
국회를 거부하고 거리로 나간 민주당 내에선 요즘 ‘탄핵’이란 말도 심상치 않게 나옵니다. 우중 촛불 집회에서도, 거리 행진에서도 ‘윤석열을 탄핵하라’는 구호가 들립니다. ‘처럼회’ 소속인 김용민 의원은 연이틀 페이스북에 윤 대통령 탄핵 발의를 주장하기도 했죠. 김 의원은 23일 “민주당 168석으로 윤석열 탄핵 발의합시다! 민주당 단독으로 가능합니다. 이제는 해야 합니다!”라고 적은 데에 이어 24일에는 “(민주당은) 국회의 압도적 의석을 갖고 윤석열 정부를 견제하고 나쁜 짓은 막아서고 혼을 내야 합니다. 대통령 탄핵은 그 정점에 있는 방식이고 다수 야당이 결단하면 가능한 일”이라고 썼더군요.
당내에서도 우려가 나옵니다. 박성준 대변인은 기자들과 만나 “최고위원회의에서 그런 (윤 대통령 탄핵 추진) 얘기는 없었다”고 일축했고 김종민 의원도 SBS라디오에서 “탄핵은 너무 무거운 카드”라고 했죠.
한 민주당 의원은 “요즘 민주당은 정치를 스스로 포기한 것 같다”고 한탄했습니다. 정치는 여야 간의 대화와 협상으로 갈등을 풀어나가는 과정인데, 이를 의원들이 저버린 채 ‘안 되면 탄핵’부터 너무 섣불리 외치고 본다는 겁니다.
“윤 대통령이 마음에 안 든다고, 잘못하고 있다고 탄핵하자고 할 거면, 이재명 대표가 싫다고 사퇴하라고 하는 사람들한테도 ‘수박’이라고 하면 안 되는 것 아닌가?”라던 이 의원은 참고로 절대 ‘비명’계도, 수박도 아닙니다. 김지현기자 jhk85@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