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리비아 외교장관 회동 후폭풍…미국 의지할 수밖에 없는 권력 구조 탓?

손우성 기자 2023. 8. 29.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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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 놓고 갈등 빚는 양국 이례적 교류에
신변 위협 리비아 외교장관 튀르키예로 피신
일각선 “리비아 과도정부가 회담 개입” 의혹도
미국 등 서방 지원받는 과도정부 태생적 한계
나즐라 망구시 리비아 외교장관. AFP연합뉴스

팔레스타인 지위를 놓고 오랜 기간 갈등을 빚어온 이스라엘과 리비아 외교장관의 비밀 회동 후폭풍이 리비아 전역을 강타하고 있다. 신변에 위협을 느낀 리비아 외교장관은 튀르키예로 피신했고, 두 장관 만남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하며 진상 조사를 지시한 리비아 과도정부가 실제론 이스라엘 측과 여러 차례 접촉해 일정을 조율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알자지라는 28일(현지시간) “엘리 코헨 이스라엘 외교장관과 나즐라 망구시 리비아 외교장관이 지난주 이탈리아 로마에서 만났다는 사실이 알려진 뒤 리비아 주요 도시에서 시위가 펼쳐졌다”고 보도했다. 로이터통신 등에 따르면 코헨 장관은 전날 성명을 내고 “로마에서 망구시 장관과 양국 관계의 큰 잠재력에 관해 얘기했다”며 “유대교 회당 등 리비아에 있는 유대인들의 유적 보호 중요성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코헨 장관 발표에 리비아 전역은 들썩였다. 뉴욕타임스(NYT)는 “리비아는 이스라엘에 대해 오랫동안 적대감을 품어온 대표적인 아랍 국가”라며 “이스라엘과 리비아는 외교 관계조차 맺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특히 리비아는 팔레스타인의 독립 국가 건설을 지지하고 있고, 독재자 무아마르 카디피 집권 시절엔 유대인을 추방하고 유대교 회당을 파괴하는 등 이스라엘에 대한 감정이 좋지 않다.

리비아 외교부는 “이탈리아에서 모임을 하던 중 준비되지 않은 채로 코헨 장관과 무심코 마주쳤다”며 “어떠한 논의와 합의, 협의도 없었다. 이스라엘과의 관계 정상화 반대 견해엔 변함이 없다”고 항변했다. 외교부 해명에도 수도 트리폴리 등에선 분노한 시민들이 타이어에 불을 지르는 등 격한 시위를 벌였고, 망구시 장관은 결국 개인 비행기를 타고 튀르키예로 도망쳤다.

이스라엘과 리비아 외교장관 회동을 규탄하는 리비아 시위대가 지난 27일(현지시간) 수도 트리폴리에서 타이어에 불을 지르고 있다. EPA연합뉴스

사태가 심각해지자 유엔과 서방이 인정한 과도정부 리비아통합정부(GNU)의 압둘하메드 드베이바 총리는 망구시 장관 직무를 정지하고 법무부에 진상 조사를 명령했다. 하지만 드베이바 총리 등 GNU 핵심 인사들이 이미 양국 외교장관 회동 사실을 알고 있었고, 수개월 전부터 만남을 치밀하게 준비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NYT는 “드베이바 총리가 처음부터 두 장관의 만남을 승인했다는 정황이 있다”며 “이스라엘과 리비아 관리들이 여러 차례 접촉했다”고 전했다. 익명의 이스라엘 관리도 로이터통신에 “이번 회동은 최고위급 수준에서 사전에 합의됐다”며 “그 결과 두 사람의 대화가 1시간 이상 이어졌다”고 주장했다.

일각에선 GNU가 안정적인 정권 유지를 위해 미국 등 서방에 의지할 수밖에 없는 구조가 논란을 키웠다는 분석이 나온다. 리비아는 2011년 ‘아랍의 봄’ 민주화 시위로 카다피를 축출한 뒤 지금까지 GNU는 서부를, 군벌 리비아국민군(LNA)은 동부를 나눠 통치하는 등 사실상 무정부 상태에 빠져있다.

NYT는 “드베이바 총리는 직을 유지하기 위해 서방의 지원을 받아왔다”며 “많은 리비아인은 드베이바 총리가 미국 우방인 이스라엘과 관계 회복을 추구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손우성 기자 applepi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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