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대내외 곤경’ 더 심각해졌다[시평]
안석 간석지 막말 공개 이례적
경제체제 파탄 책임 전가 예고
핵 개발 속 자력갱생은 신기루
식량 부족 심각해 아사자 속출
한미일 합의로 협박도 안 통해
인사 조치 통한 변화 나타날 것
외부와 단절된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공식적으로 바깥세상에 알려지는 창구는 당에서 운용하는 노동신문이나 조선중앙통신 정도다. 주로 다루는 뉴스들은 주민을 교육하고 선전선동하기 위한 것이지만, 가끔은 외부를 향한 상당한 메시지도 담겨 있다. 지난 21일에는 좀처럼 보기 드문 내용이 보도됐는데, 그 속에는 현재 북한이 직면한 문제가 적나라하게 포함돼 있었다.
기사는 김정은이 배수구 구조물 설치공사가 마무리되지 않아 대규모 침수 피해가 발생한 평안남도 남포시 안석 간석지 침수 현장을 방문한 것을 다루고 있었다. 그 내용은 자못 심각했다. 붕괴된 해안선 제방으로 유입된 바닷물로 560여 정보(약 5.5㎢)의 농경지가 침수된 곳에서 내각 총리(김덕훈) 이름을 직접 거명하며 “건달쟁이” “정치적 미숙아” “지적 저능아” 등의 막말을 쏟아내고 “절대로 용서할 수 없다”고 하는 모습이 방영된 것이다. 대체로 지도자의 긍정적인 모습만 방송하던 북한 매체에서 물에 잠긴 경작지에 들어간 김정은이 수행원들에게 손가락질하며 욕하는 것을 그대로 송출한 것이기에 여러 가지를 시사한다.
먼저, 지도자가 생각을 바꾸지 않는 한 북한의 사회주의 경제체제는 조만간 파탄 날 것으로 보인다. 안보는 핵무기를 통해 달성됐지만, 경제는 결코 쉬운 문제가 아니었다. 그래서 김정은은 2017년, 6차 핵실험에 성공한 후 핵무력이 완성됐다고 선언하고 그 이듬해 국가발전 전략을 ‘사회주의의 경제건설 총력집중 노선’으로 전환한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자원 배분 우선순위를 군사에서 인민 경제 분야로 옮기고, 이 문제는 전적으로 내각이 책임지도록 했는데, 마치 전문 관료들로 구성된 내각을 우대하고 국가 경영에 책임을 분담한 것 같았으나 실상은 감당하기 어려운 임무를 맡기고 실패할 때는 책임을 전가한다는 복선이 깔려 있었다. 본질적으로 지도자가 자력갱생을 계속 고집하는 한 누가 맡아도 현재 북한의 경제정책은 성공할 리 만무한 것이다.
둘째, 북한의 심각한 식량 사정을 엿볼 수 있다. 코로나19가 시작된 2020년 이후 북한은 국경을 봉쇄하고 장마당을 폐쇄하는 특단의 조치를 단행했다. 이로 인해 주민들의 경제활동이 불가능해진 가운데 설상가상으로 반복된 홍수는 생존에 필수적인 식량 사정을 악화시켜 버렸다. 그러다 보니 농경지가 바닷물에 침수된 사건은 그냥 넘어가기 어려운 대형 사고인 것이다. 미국 농무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의 식량 부족분은 121만t에 이르렀으며, 앞으로도 매년 평균 80만t가량의 부족 상황이 이어질 것이라고 했다. 아사자가 속출한다는 소식이 헛소문이 아닌 것이다.
셋째, 예고된 인사 조치는 내각만으로 국한되지 않을 것이다. 김덕훈은 내각 총리이면서 노동당 정치국 상무위원, 국무위원회 부위원장을 맡고 있어 형식적으로는 북한 서열 2위에 해당한다. 그런 인물을 적시해 용서할 수 없다고 공언한 것은 인사 조치의 폭이 예사롭지 않을 것임을 예측하게 만든다. 이는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내부뿐만 아니라, 외부에도 있기 때문이다. 남한의 정권이 바뀌면서 문재인 정부와 협의해 애써 중지시켰던 한미연합연습이 부활했다. 미사일을 쏘면 ‘무조건 대화’하자고 나오던 한국과 미국의 반응도 이제는 더 이상 기대할 수 없게 됐다. 캠프데이비드에서의 한미일 3국 합의는 그동안 잘 써먹던 핵 카드마저 무색하게 만들어 버렸으니 이런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서는 정책 변화가 불가피하며, 새로운 인물을 기용해 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넷째, 물속에 들어간 김정은의 모습을 보여 준 것은 이미지 개선 의도도 있던 것으로 보인다. 국제사회는 김정은이 고모부를 처형하고 친형도 독살한 잔인한 독재자이며 인민은 굶주려도 핵과 미사일 개발에 매진하는 불량한 지도자라고 인식하고 있다. 이번의 영상은 이런 부정적 이미지를 인민 경제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지도자의 모습으로 보이려 시도한 것이다.
북한은 충성 경쟁을 유발하거나 책임을 전가(轉嫁)하기 위해 자주 ‘인사 조치’ 방법을 사용해 왔다. 만일 새로운 인물이 등장한다면 대외정책에서도 변화가 나타날 수 있을 것이기에 곧 드러날 김정은의 속내가 주목되는 대목이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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