짠물 예산안 내놨지만…세수 감소에 결국 못 지킨 ‘재정준칙’
수입 줄고, 지출 늘어…내년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 3.9%
재정준칙 입법화 추진 동력 상실 관측도
윤석열 정부가 내년도 예산안의 총지출 증가율을 역대 최저 수준인 2.8%로 잡았지만, ‘건전재정’의 바로미터라고 할 수 있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 ‘3%’는 지키지 못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아쉽다는 의견과 함께 필요할 때는 돈을 더 써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29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24년 예산안에 따르면 내년도 정부의 총수입은 612조1000억원, 총지출은 656조9000억원으로 편성됐다. 올해 예산안의 총지출(638조7000억원) 대비 지출은 2.8% 늘었지만, 총수입은 올해(625조7000억원) 대비 2.2% 감소한 규모다.
지출은 늘었지만, 수입은 감소하면서 재정수지는 악화할 전망이다.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은 3.9%로 전년 대비 1.3%포인트(p) 증가할 것이라고 기재부는 예측했다. 정부가 그동안 GDP 대비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3% 이내로 관리하겠다고 한 약속은 지켜지지 못했다.
관리재정수지는 정부의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에서 사회보장성 기금에 적립되는 금액을 뺀 수지를 말한다. 실질적인 나라 살림 상태를 보여주는 지표이다.
나라 살림 기조를 ‘건전재정’으로 제시한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재정 건전성 강화를 목표로 재정준칙 도입 등을 추진했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 확장 재정을 계기로 국가채무가 1000조원이 넘어서는 등 재정 건전성 악화에 대한 우려가 커진 것을 반영해 나랏빚의 총량을 관리할 수 있는 기준으로 만든 게 바로 재정준칙이다.
정부가 제시한 재정준칙은 관리재정수지 적자를 GDP 대비 3% 이내로 관리하는 게 핵심이다. 국가채무비율이 GDP 대비 60%를 넘어가면 적자 폭을 2%로 축소하겠다는 내용도 들어있다.
윤석열 정부는 출범 이후 재정준칙 법제화를 꾸준히 추진해 왔다. 하지만 입법화에 번번이 실패했다. ‘경제가 어려울 땐 재정이 경기를 부양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야당의 반대를 꺾지 못했다. ‘여소야대’의 국회 상황을 탓하던 정부는 “국가재정법 개정 이전이라도 이러한 준칙의 방향에 입각해서 내년도 예산을 편성하겠다”고 공언해 왔다.
하지만 세수가 급격히 감소하면서 정부의 공언은 ‘공수표(空手票)’가 돼버렸다. 내년도 예산안을 짜면서 재정준칙을 지키지 못한 기재부는 준칙의 시행 시기를 ‘2025년 이후’로 조정했지만, 설득력을 잃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기재부도 지키지 못한 준칙을 법제화하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반론에 대응할 논리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추경호 경제부총리 겸 기재부 장관은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을 3% 이하로 가려면 내년도 총지출 증가율을 마이너스로 가져가야 했다”면서 “건전재정 측면에서 재정지출을 대폭 줄여야 하는데, 현재 경제 상황이나 민생 등을 고려해 고심 끝에 역대 최저 수준인 2.8% 수준으로 (지출증가율을) 결정했다”고 말했다.
재정전문가들은 정부 예상을 훨씬 뛰어넘는 급격한 세수 감소라는 돌발 상황이 벌어진 만큼 재정준칙을 준수하긴 어려웠을 것이라고 공감을 표했다. 다만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예산이 총지출 증가율 이상으로 증가한 부분 등은 건전재정 기조를 고려하면 아쉬운 부분이라고 꼬집었다.
김우철 서울시립대 세무학과 교수는 “정부 나름대로 고민해 지출을 줄였더라도 세수가 크게 줄어 기재부가 제시한 재정준칙 요건을 준수하긴 어려웠을 것”이라면서 “정부가 지출 계획을 ‘오버슈팅’된 세수를 토대로 짜면서 이 난리가 벌어졌다. 세수가 줄어든 만큼 지출도 줄여야 하는데, 그러면 경제 충격이 가는 지금의 상황은 전형적인 ‘재정 중독’ 상태”라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이어 “관리재정수지 적자 비율이 3.9%로 사실상 4%를 기록했다는 점은 ‘정말 허리띠를 졸라맸나’라는 의구심이 들게 한다”면서 “특히 SOC 예산이 4.6% 증가했다. 지출 구조조정을 하겠다면서 SOC 예산을 잡지 못했다는 것은 (구조조정을) 못한 것과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거시경제 전문가들은 재정건전성을 추구하되 재정의 역할도 고려한 예산 편성이라고 평가했다. 주원 현대경제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수출가 소비가 위축된 상황에서 상당히 낮은 수준의 지출 증가율로 예산을 짰다”면서 “재정건전성을 고려한 판단이겠지만 경기 활성화 효과 측면에서 보면 아쉬운 부분은 있다”고 말했다.
주 실장은 “재정건전성만 따졌다면 지출증가율 동결까지 결정할 수 있었겠지만, 최소한의 ‘플러스’ 예산을 편성한 것은 다행”이라며 “경제가 어려울 때엔 재정이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도 “예산안을 짜면서 재정을 무리하게 확장하지 않으려고 노력한 부분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부분”이라면서 “다만 재정 관리에만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적극적인 재정 사용에 대해서도 전향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성 교수는 “내년 예산안의 관리재정수지 적자 확대는 경기가 좋지 않아 세수가 부족해서 발생한 특수한 상황”이라면서 “적자 국채 발행은 절대 안 된다고 선을 긋고만 있을 문제가 아니다. 필요한 재정을 확보하기 위한 목적이라면 국채 발행도 열어놓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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