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덕포럼] 유럽인들의 여름나기

윤성철 한국화학연구원 국가전략기술추진단장 2023. 8. 29.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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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철 한국화학연구원 국가전략기술추진단장

지난 8월 중순 독일 뮌헨에서 열리는 학회에 참석했다. 통상 유럽의 여름 날씨는 최고기온이 25도 내외이며, 서안해양성기후의 특성상 습도가 낮아 30도를 넘는 며칠만 그늘로 피하면 에어컨 없이 잘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기후변화로 인해 평균기온이 상승하고 불볕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실제 2003년에는 유럽 내 폭염 사망자가 7만 명에 달했으며, 금년에는 보다 많은 사상자가 예상된다. 뮌헨의 상황도 다르지 않아 한낮 최고기온이 32-3도까지 올랐고, 상점·음식점·지하철·트램은 물론이고 호텔에도 에어컨이 설치되지 않은 곳이 많았다.

그럼 유럽에는 왜 이렇게 냉방시설이 부족할까? 몇 년 전까지 유럽의 에어컨 보급률은 5-7%였다. 최근 보급률이 19%대로 증가했지만, 미국 88%, 한국 80%와는 비교할 수준이 아니다. 유럽에서도 2차 세계 대전 이후 파괴된 도시를 재건하는 과정에서 건물 신축과 함께 에어컨 설치 기회가 있었지만, 전후 경제 상황이 좋지 않았고 높지 않은 기온으로 인해 보급되지 않았다.

실제 유럽의 건물 대부분은 오래되고 석재를 사용해 에어컨 설치에 비용이 많이 들고, 에어컨 설치를 법적으로 규제하는 국가들도 많으며, 무엇보다 미국의 2배에 달하는 유럽의 평균 전기요금도 에어컨이 보급되지 않은 원인으로 보인다. 더욱이 유럽인들은 환경보호 의식이 강해 에어컨의 높은 소비전력과 사용되는 친환경적이지 못한 냉매 사용에 대한 저항이 크다고 한다.

에어컨은 미국의 윌리스 캐리어에 의해 1902년 발명됐다. 안개 낀 피츠버그 기차 승강장에서 공기 중의 습기를 조절하는 장치에서 영감을 얻어 습도와 온도를 조절할 수 있는 에어컨을 만들었다고 하며, 초기에는 인쇄업계에서 습도조절을 위해 사용됐으나 1915년 캐리어 법인이 설립된 후 고층건물의 경쟁적 신축으로 급속하게 일반에 보급됐다. 그 결과 미국 내 여름 온열질환으로 인한 사망자를 40%까지 줄였다는 보고도 있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는 전 세계 곳곳에서 접할 수 있다. 2019년 호주에서는 대규모 산불이 지속돼 동남부의 대부분 도시들은 하늘이 노랗다 못해 붉게 물들면서 흡사 외계 행성을 보는 듯했다. 이러한 산불의 원인도 지구온난화에서 기인한다고 한다. 인도양의 동쪽과 서쪽의 해수면 온도차가 커져 서쪽은 폭우로 시달리고, 동쪽은 가뭄이 심해 호주 산불이 6개월간 지속됐다. 태평양 동쪽 동아시아 지역에서는 초대형 태풍이, 미국 서부지역에서는 유례없는 고온 현상이, 대서양 서쪽 카리브해 인근에서는 5개 허리케인이 동시에 발생한 사례 등도 있다. 이러한 지구온난화로 인한 기후변화는 더 이상 미래의 재앙이 아닌 현재 당면한 문제인 것이다.

지난 100여 년 동안 지구의 평균온도는 기준치 대비 1.2℃ 상승했다. '고작 1.2℃ 상승에 무슨 문제가 있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기준치 대비 평균온도가 1℃ 상승하면 전 세계는 폭염·폭우·가뭄·혹한 등 극단적인 기후현상이 빈번해진다고 한다. 또 평균기온이 2℃ 상승하면 그린란드 빙하가 녹고, 아마존 열대우림·산호초 군락이 사라지고, 저위도 지역에는 작물 재배량이 급감해 식량위기로 300만 명 이상이 사망하게 되고 해안 저지대 침수 피해 인구는 1억 7천만 명에 달하며, 생물종의 50%가 멸종위기에 처하게 된다는 시나리오도 있다.

이를 대비하기 위해 2015년 프랑스 파리에서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를 통해 195개국이 파리협정을 맺고 탄소배출 저감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2030년까지 2018년 총배출량 대비 40% 감축한 436.6백만톤의 국가온실가스 감축목표를 제출한 바 있다.

탄소배출량 저감의 핵심은 친환경 에너지다. 하지만 우리나라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2021년 8.29%에 그쳐, 독일·영국의 40%대뿐만 아니라, OECD 평균인 23.4%에도 못 미치고 있다. 목표치 달성이 심히 우려되는 상황으로 2050년 탄소중립을 실현하기 위한 보다 적극적인 정부 차원의 노력이 요구된다. 모기도 입이 비뚤어진다는 '처서'가 지났음에도 열대야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이에 국민 모두가 기후위기에 현명하게 대응하며 2050년 탄소중립을 위해 노력해야겠다. 윤성철 한국화학연구원 국가전략기술추진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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