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단체가 '정율성공원' 반대?…회원들 의견 수렴도 없었다

이수민 기자 2023. 8. 29. 1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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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훈부 비공개 만남 갖고 '힘 실어달라' 요청 의혹
유족회 '소모적 이념 논쟁 우려' 이사회 거쳐 불참
극우정당인 자유통일당과 보수단체 회원들이 28일 광주 남구 양림동 정율성 거리 흉상 앞에서 정율성 기념사업 철회를 요구하며 집회를 하고 있다.2023.8.28/뉴스1 ⓒ News1 김태성 기자

(광주=뉴스1) 이수민 기자 = 5·18민주화운동부상자회와 공로자회가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고 '정율성 기념공원 조성 반대'를 표명한 것으로 나타나 논란이다.

29일 <뉴스1> 취재를 종합하면 공법단체인 5·18부상자회와 공로자회는 전날 4·19혁명 관련 3개 보훈단체와 함께 일간지에 '조선인민국 행진곡을 작곡한 공산주의자 정율성 역사공원 건립을 강력히 반대한다'는 내용의 광고를 게재했다.

이들 단체는 "중국으로 건너간 정율성은 중국 공산당 당원과 북조선로동당 당원으로 활동했고 중화인민공화국으로 귀화한 인물로,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은 4·19혁명정신과 5·18민주화운동정신을 훼손하는 일이자 우롱하는 처사"라고 주장했다.

공법3단체 중 나머지 한곳인 유족회는 이사회 논의를 거쳐 여기에 동참하지 않았다. 소모적 이념 논쟁에 휩쓸릴 우려가 있다는 이유다.

양재혁 유족회장은 "25일 오후에 약 3시간동안 이사회를 진행하고 회원들의 의견을 두루 청취했다"며 "그 결과 지난 이념 논쟁을 끌어올려 과거의 아픔을 들춰내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해 참여하지 않기로 통보했다"고 밝혔다.

'정율성 공원' 반대 광고 게재 후 부상자회와 공로자회 내부에서는 회장의 독단적 결정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양 단체 회장이 내부 이사회 개최 등 회원들의 의견을 수렴하지 않았을 뿐더러 이번 광고 집행이 국가보훈부의 요청에 의해 정부 사업에 힘을 실어주기 위한 차원에서 이뤄졌다는 내부 비판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5·18부상자회 관계자는 "5·18부상자회 명의로 광고가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정율성 기념사업 추진 찬반에 대한 내부 논의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아쉬움이 많다"면서 "공법단체이니 만큼 신중한 입장 표명이 중요하고, 적어도 이사회를 거쳐 숙의하는 과정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단체에 따르면 공법3단체 회장은 지난 25일 오전 8시 광주 서구의 한 호텔에서 광주를 찾은 국가보훈부 관계자와 조찬모임을 가졌다.

회원들은 이 자리에서 국가보훈부 측이 '박민식 장관의 발언을 지지하고 협조해달라'는 부탁을 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그렇지 않고서야 정율성과 5·18이 전혀 상관없는 상황에서 정치권의 이념 논쟁에 뛰어들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공법단체 오월3단체(부상자회·공로자회·유족회)가 지난달 25일 광주 서구 5·18기념재단 오월기억저장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가배상청구권 소멸시효를 40년으로 연장할 수 있도록 요구하고 있다. 사진은 왼쪽부터 양재혁 유족회장, 정성국 공로자회장, 황일봉 부상자회장. 2023.7.25/뉴스1 ⓒ News1 이수민 기자

황일봉 부상자회장은 <뉴스1>과의 통화에서 "지역사회 반발도 예상했지만 5·18민주화운동의 정체성을 국민들에게 명확히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돼 광고에 참여했다"며 "보훈부의 사주를 받아서 한 행동이 아니다"고 선을 그었다.

황 회장은 "국가보훈부 관계자를 만난 것은 사실이다. 허나 관계자로부터 '4·19 등 다른 보훈단체들이 정율성공원 조성을 반대한다더라. 5·18은 어떡하실 생각이냐'고 동향을 들었을 뿐이지 직접적으로 광고 게재 등 의견표명 요구를 받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그는 "5·18민주화운동 진상조사를 통해 북한군 침투설 등은 명백한 역사적 허위·폄훼·왜곡임이 증명됐지만 여전히 일각에서는 이를 폭동이나 북한군 침투설 등을 주장하고 있다"며 "5·18 영령들이 오로지 헌법 질서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전두환 군사정권에 맞서 싸운 역사라는 정체성을 명백히 하려는 취지였다"고 주장했다.

광고 집행에도 5·18단체의 예산은 단 1원도 들어가지 않았다고 했다.

황 회장은 "중앙지 광고에 얼마가 드는 줄 아느냐"며 "5·18단체의 예산이 워낙 부족하고 돈이 없기 때문에 이미 광고를 하기로 확정한 4·19단체에게 '함께 독재타도를 외치고 나라를 위해 싸운 것은 4·19나 5·18이나 같으니 보훈단체 식구로서 이번 광고에 끼워달라'고 요청해 이름만 실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공법단체로 지정된 후 여태껏 4·19 등 다른 보훈단체와 함께 활동한 적이 없다"며 "보훈단체가 한뜻을 모아 현 시국에 대해 목소리를 낸 것에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한편 정율성은 항일단체 조선의열단 소속으로 광주 출신의 중국 3대 음악가다. 최근 생가터 역사공원 조성 사업을 놓고 이념 논쟁에 휘말렸다.

SNS를 통해 이념논쟁을 시작한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정율성은 공산주의자다. 장관직을 걸고서라도 정율성 관련 사업을 저지하겠다"고 밝혔고, 강기정 광주시장은 "정율성 기념사업은 30여년 전 정부가 시작했고 민선 6·7·8기까지 이어온 사업으로 당당히 추진하겠다"며 대립하고 있다.

광주시는 2020년 5월 동구 불로동 생가 일대에 '정율성 역사공원' 조성 계획을 발표하고 올해 연말까지 48억원을 들여 완성하기로 했다.

breath@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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