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찬호가 더러워진 기록지에 대처하는 법… 흘린 땀을 믿었다, GG 후보로 손색없다
[스포티비뉴스=김태우 기자] 타율은 뚝뚝 떨어졌다. 타구는 좀처럼 똑바로 나아가지 않았다. 빗맞고, 내야에 갇히기 일쑤였다. ‘에너지’로 먹고 사는 선수인데, 그 에너지가 좀처럼 뿜어져 나오지 않았다. 가면 갈수록 비판의 날이 서늘하게 서는 것도 느꼈을 것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었다. 성적은 변명을 하기 어려웠다.
KIA 주전 내야수 박찬호(28)의 4월은 우울했다. 4월까지 첫 23경기에서 80타석을 소화했지만 타율은 0.181에 머물렀다. 떨어지는 타율 속에 장타가 시원스레 나올 리는 없었다. 23경기에서 기록한 안타는 13개. 경기당 안타 하나를 구경하기가 힘들었다. 타점은 딱 하나에 그쳤다. 내야 땅볼이 많아 병살타가 5개나 나왔다. 경기 흐름이 박찬호의 앞에서 뚝뚝 끊겼다.
‘시작이 반이다’라는 말이 있다. 외국 속담에도 이와 비슷한 것들이 있는 것을 보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작의 중요성을 공유하고 있다는 점을 실감할 수 있다. 야구 선수들의 시즌도 마찬가지다. 시작이 좋으면 장기 레이스를 조금 더 여유 있게 풀어나갈 수 있다. 하지만 시즌 시작이 좋지 않으면 이를 만회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리며 살아야 한다.
박찬호는 후자에 속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이상하게 당시에도 낙담하는 기색은 없었다. 표정에서 짜증을 찾아보기도 어려웠다. 오히려 “나는 잘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있었다고 떠올린다. 4월에 한참이나 더러워진 기록지를 보면서도 포기하지 않고 시즌을 똑바로 응시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었다.
원래 수비와 주루는 잘하는 선수였다. 넓은 수비 범위에서 나오는 하이라이트 필름 제조기다. 리그 최고의 주루 센스를 갖춘 선수이기도 하다. 문제는 공격이었다. 수비 부담이 큰 유격수라고 해도 공격 생산력이 너무 떨어졌다. 팬들의 비판이 집중된 지점이기도 했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실마리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타율이 쭉 올랐다. 올해도 열심히 훈련했다. 박찬호는 자신의 준비가 잘못되지 않았다고 믿었다.
땀을 믿었기에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았다. 단지 캠프 때 얻은 손목 부상이 원인이라고 생각할 수 있었다. 이것만 해결되면 다시 앞으로 나갈 수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박찬호는 “낙담하는 건 전혀 없었다. 손목만 괜찮으면 나는 진짜 잘할 수 있다는 생각을 했었다. 자신도 있었다”면서 “마침 5월이 되고 좋은 주사 해결 방안이 생겨 그때부터 편하게 야구를 했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손목 문제가 해결되자 5월부터 타율이 계속 오르기 시작했고, 4월의 구겨졌던 성적표를 조금씩 원상 복구할 수 있었다. 6월 한때 타격감이 떨어지고 수비에서 실책이 잦아지면서 위기가 찾아왔지만 마찬가지의 긍정적인 자세로 버텼다. 열심히 노력했으니, 기회는 다시 올 것이라 위안을 삼고 그 기회를 기다렸다. 그 이후 박찬호는 리그 최고의 유격수에 도전할 수 있는 위치까지 올라섰다.
후반기 들어 맹활약이다. 박찬호는 7월 이후 37경기에서 타율 0.356, 출루율 0.422, 장타율 0.467, OPS(출루율+장타율) 0.889의 대활약을 선보이며 KIA 타선을 앞에서 끌고 가는 몫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7월 이후 타율은 리그에서 규정타석을 채운 선수 중 5위에 해당한다. KIA에서는 가장 높다. 박찬호 타격의 재발견이다.
안타 개수가 많아진 것도 많아졌지만, 무엇보다 타구의 질이 굉장히 좋아졌다. 라인드라이브성 타구가 많아지면서 외야를 향해 힘차게 날아간다. 발이 빠르니 장타가 늘어나는 건 당연한 수순이다. 많이 나가자 도루 개수도 늘어났고, 누상에서 상대 투수를 괴롭히는 특유의 장점도 발휘되고 있다. 극적인 주루 플레이와 안타로 팀에 승리를 안기며 경기를 지배하는 장면도 부쩍 늘어났다.
변한 건 없다. 간결해진 타격폼을 원인으로 뽑는 시각도 있지만 박찬호는 꼭 그렇지는 않다고 했다. 꽤 깊게 생각하더니 “크게 변한 건 없다”고 머리를 긁적였다. 그러면서도 “생각이 바뀌었다”고 가장 중요한 원동력을 짚었다. 성숙해졌다고도 진단했다. 박찬호는 “조금 더 성숙하게 타석에 들어서는 것 같다. 무턱대고 치고받던 시절보다는 많이 성숙해졌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경험이 쌓이면서 이제는 어엿한 베테랑의 느낌도 난다.
그렇게 달리다보니 생애 첫 골든글러브도 보인다. 스스로는 크게 의식하지 않는다고 했지만, 자신이 흘린 땀을 믿고 묵묵히 전진한 결과 그 고지까지 갔다. 올 시즌 각종 매체가 집계하는 대체선수대비 승리기여도(WAR)에서 지난해 골드글러브 수상자인 오지환(LG), 2위였던 박성한(SSG)과 치열하게 다툰다.
오지환이 부상으로 출전 경기 수에서 손해를 본 사이 누적 성적은 박찬호가 조금씩 역전하는 양상도 보인다. 공격 지표에 잡히지 않는 수비는 이미 인정을 받는 선수다. 부상만 없다면 시즌 막판 활약상에 따라 오지환의 아성에 도전할 수도 있다. 박성한은 아시안게임에 가야 해 손해를 본다.
박찬호는 특별히 의식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면서도 시즌 막판을 승부처로 잡았다. 박찬호는 “지난해도 8월까지는 잘했다. 9월과 10월에 떨어졌다”고 아쉬움을 곱씹으면서 “올해 한 번 지켜봐야 한다. 9월과 10월에 버틸 수 있을지에서 내가 성장을 했는지 안 했는지가 갈릴 것 같다”고 각오를 드러냈다. “언제나 열심히 했고, 언제나 발전을 위해서 노력했다”는 박찬호가 자신의 땀을 믿고 다시 앞으로 나갈 채비를 마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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