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호텔 프로젝트] 할매·할배와 친구되는 동네…소박한 매력에 ‘흠뻑’
2014년 마을만들기 사업 참여
민박 4집서 ‘빈방 한칸’ 객실로
북카페·갤러리 즐길거리 조성
추후 주민 협동조합 운영 계획

‘일이나 유람을 목적으로 다른 고장이나 외국에 가는 일.’ 여행의 사전적 의미다. 대개 장엄한 자연을 감상하거나 특색 있는 도시를 경험하러 여행을 간다. 경남 하동군 악양면 매계마을 여행은 좀 색다르다. 어릴 적 외갓집과 똑 닮은 시골집에 묵고 촌 동네 할매·할배와 친구가 되는 것이다.
평균 나이 70대인 50여가구, 120여명이 사는 매계마을에 ‘호텔 매계’가 들어섰다. 간판은 거창하지만 실상은 소박하다. 쓰지 않는 빈방 한칸을 내놓은 것이 전부다. 그렇게 농어촌 민박 4가구가 뭉쳐 마을호텔로 거듭났다.


마을호텔을 구상한 건 강훈채 매계마을추진위원장이다. 강 위원장은 2014년부터 행정안전부·지방자치단체 등이 공모한 마을만들기 사업에 참여하면서 공동체 발전에 힘을 쏟았다. 그 결과 번듯한 동네 사랑방과 북카페, 다목적 강당이 지어졌고 주민들이 무료로 이용할 수 있는 나눔식당도 열었다. 차츰 마을이 바뀌면서 주민이 주도하는 사업을 제안하게 됐다.

“자녀들이 장성해 도시로 나가면서 빈방이 생긴 집이 많습니다. 별채를 지어놓고 놀리는 가구도 있고요. 그걸 민박으로 활용하는 겁니다. 여러 곳 가운데 도시민들이 묵을 만한 4곳을 추려 ‘호텔 매계’란 이름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빈방들이 호텔 객실이 되는 거지요. 올해 안에 6곳까지 늘릴 계획입니다.”

객실을 내놓은 이들은 60∼70대. 가장 나이가 많은 이는 79세 김금덕 할머니다. 빈방이야 있지만 호텔처럼 꾸미고 예약받아 손님을 대접하는 일은 쉽지 않다. 이 부분을 해결하는 것이 농촌 마을호텔의 관건이기도 하다. 호텔 매계는 하동지역 공정여행사인 ‘놀루와 협동조합’과 협업해 문제를 풀었다. 놀루와가 침구와 기타 비품을 마련해 제공하고 예약관리를 한다. 객실 4곳은 단칸 한옥부터 복층 주택까지 크기·특징이 다양한데, 놀루와가 여행객수나 나이에 맞춰 객실을 추천하기도 한다.
매계마을에 방문했다면 가장 먼저 들러야 할 곳은 공유 주방이다. 과거 농기계창고를 고쳐 만든, 일종의 프런트다. 손님들은 여기서 객실을 배정받고 마을 이곳저곳을 소개받는다. 객실에서 취사가 금지된 대신 주방시설과 식탁이 마련된 이곳을 이용할 수 있다. 아쉽게도 현재 마을 내 식당이 없다. 강 위원장은 “근처 마트에서 하동산 농산물을 사다가 직접 요리해 먹는 것도 재미”라고 귀띔했다. 간단한 요기는 마을주민이 운영하는 북카페에서 해결하면 된다. 커피와 차, 간단한 주전부리를 판매한다.
호텔 매계는 시설별로 1박에 8만원·14만원이다. 가성비는 좋지만 편의성만 따지자면 도시 호텔에 비할 수 있을까. 그래도 경쟁력이 있는 건 여기서만 즐길 수 있는 것들 때문이다. 귀촌 화가 손정희씨네 작업실 2층에 있는 갤러리는 가볼 만한 동네 핫플이다. 자수브로치 만들기, 서예 수업은 주민들이 강사로 나선다. 놀루와가 제안하는 프로그램도 재미있다. ‘경로당에 들러 어르신과 인사하기’ ‘민박집 주인 웃겨 드리기’ 같은 미션을 완수하는 콘텐츠는 여기서만 할 수 있는 여행이다. 전윤환 놀루와 로컬콘텐츠기획자는 “마을호텔의 매력이자 강점은 주민들 삶으로 들어가 보는 것”이라면서 “조금 불편하지만 호텔 매계에 머물면서 시골 감성을 듬뿍 느끼는 시간은 시골 경험이 없는 도시민들에겐 특별한 추억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호텔 매계가 순항한 지 8개월, 찾아온 여행객은 50여팀이다. 매출은 700만원 정도로 한달로 따지면 100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 수익은 적지만 주민 만족도는 크다. 전업주부였던 김희순씨는 객실 ‘양주댁’ 주인이자 북카페지기다. 바리스타로 일하고 도시에서 온 젊은이들을 만나면서 일상에 활기가 돈다. 소소하지만 따박따박 들어오는 월급도 쏠쏠하다. 양은주 매계마을 사무국장은 12년 전 귀촌했을 때를 떠올리면 마을이 상전벽해 한 것이 놀랍다. 양 사무국장은 “낡은 건물을 리모델링하고 신축 시설도 생긴 덕에 쾌적하게 일할 수 있어서 좋다”면서 “호텔 매계가 구심점이 돼 주민들이 더욱 단합하고 있다”고 말했다.

강 위원장은 호텔 매계의 미래를 그리고 있다. 객실·식당·체험장 등 시설을 늘리는 것은 물론 마을호텔 운영방식도 고민한다.
“아직은 주민 각각이 농어촌민박으로 운영하고 있지만 조만간 호텔 매계라는 이름으로 마을주민 모두가 참여하는 협동조합이나 마을기업을 세우려고 합니다. 주민들이 어엿한 호텔리어가 될 수 있도록 인문학 강의 같은 수업도 계속 열 거고요. 그러면 여행객이 늘 테고 하루 이틀 머물다 아예 살러 오는 사람도 생기지 않겠어요.”
하동=지유리 기자 사진=김건웅 프리랜서 기자, 놀루와 협동조합
Copyright © 농민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