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친 예술이 아름답다… 삼청·소격동 점령한 ‘K-실험미술’

유승목 기자 2023. 8. 29. 09: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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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립현대미술관 김구림展·갤러리현대 성능경展
파격과 역동의 한국 전위예술
하나의 미술사조로 자리매김
뉴욕서 ‘한국 실험미술 …’ 展
“1960~1970년대 한국 작가들
해외 퍼포먼스보다 낫다” 평가
김구림, 기존틀 깬 230점 전시
성능경 ‘글 없는 신문’ 등 선봬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진행 중인 ‘김구림전’에 설치된 김구림 신작 ‘음과 양:자동차’(2023). 유승목 기자

현대미술 1번지 서울 종로구 삼청동·소격동 일대가 ‘한국 실험미술 쇼룸’이 됐다. 국립현대미술관(MoMA)과 갤러리현대가 각각 한국적 아방가르드(전위예술) 정서가 가득한 작품들로 전시장을 채우면서다. 단색화와 함께 해외 ‘미술 큰손’들이 열광하는 실험미술을 앞세워 한국미술 특유의 예술성과 독창성을 되짚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은 지난 25일 한국 실험미술 거장 김구림(87)의 작품을 모은 ‘김구림’ 전을 개최했다. 갤러리현대는 이보다 앞선 지난 23일부터 1세대 실험미술가 성능경(79) 개인전 ‘성능경의 망친 예술 행각’을 진행 중이다. 한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공립 미술관과 국내 3대 메이저 화랑 중 한 곳이 한국국제아트페어(Kiaf SEOUL·키아프)와 ‘프리즈 서울’(FRIEZE SEOUL·프리즈) 개막을 앞두고 ‘K-미술’ DNA를 선보일 주제로 실험미술을 고른 것이다.

1980년대 후반 김구림(왼쪽)의 모습과 1976년작 ‘검지’에 나온 성능경의 모습. 국립현대미술관·갤러리현대 제공

‘단군 이래 최대 미술장터’로 불리는 이른바 ‘키아프리즈’(키아프+프리즈)를 앞두고 서울 시내 곳곳의 미술관과 굴지의 화랑·경매사들이 국내 신진작가부터 해외 유명작가까지 다채로운 전시를 잇따라 여는 상황에서 두 실험미술 전시의 존재감이 유독 뚜렷하다. 실험미술은 이우환 같은 글로벌 작가로 대표되는 단색화와 함께 해외에서도 알아주는 미술사조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미국 뉴욕의 구겐하임 미술관은 다음 달 ‘한국 실험미술 1960-70년대’전을 열고 김구림과 성능경을 포함해 이건용, 이강소, 이승택 등 주요 실험미술 작가의 작품을 선보인다. 구겐하임미술관이 12년 만에 여는 한국 미술 특별전을 실험미술 소개의 장(場)으로 쓰는 것이다. 한 미술계 관계자는 “1960∼1970년대부터 활동한 실험미술 작가들이 추구한 개념과 퍼포먼스들은 해외 실험미술보다 오히려 낫다는 평가도 나온다”면서 “2010년대부터 주요 실험미술 작가들의 활동이 주목받고 있는데 뒤늦은 전성기가 온 셈”이라고 말했다.

김구림 ‘음과 양 91-L 13’(1991), 캔버스 위에 아크릴, 낚싯대, 양동이, 213×335㎝. 개인 소장. 국립현대미술관 제공

실험미술은 비주류란 한계 속에서 성장해 왔다. 1970년대 국립현대미술관은 ‘전위를 위장한 사이비 전시는 삼가기 바란다’며 실험미술에 대한 검열을 가했고, 다소 난해한 작품들은 상업적으로도 외면받았다. 예컨대 김구림이 일본에서 넓힌 이해를 바탕으로 1974년 제작한 입체적인 판화 ‘걸레’는 국내에선 판화로 인정조차 받지 못했다. 김달진 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장은 “김구림은 여러 실험적 작품으로 앞서갔는데, 1981년 제3회 동아국제판화비엔날레에선 출품작이 전시를 거부당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성능경의 경우엔 1991년에서야 삼덕화랑에서 첫 상업화랑 전시를 열었다. 그는 최근 전시 간담회에서 이번이 세 번째 상업화랑 전시라고 밝히며 나이 팔순에서야 “지금이 제1의 전성기”라고 말하기도 했다. 업신여김을 넘어 ‘없음여김’의 존재였다고 표현할 정도다.

성능경 작가가 서울 종로구 소격동 갤러리현대에서 진행 중인 자신의 개인전 ‘성능경의 망친 예술 행각’에서 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갤러리현대 제공

반세기 간 주류로 인정받지 못해도 끊임없이 특유의 역동적인 에너지와 파격적인 개념을 제시한 게 실험미술의 특징이다. 이번 김구림과 성능경 전시엔 이런 실험미술의 변천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김구림 전시의 경우 초기 추상 작품부터 신작 ‘음과 양: 자동차’, 비디오 작품 ‘음과 양’까지 기존의 질서와 개념을 거부하는 그가 제작한 230여 점의 작품과 기록 60여 점을 볼 수 있다. 김구림은 전시 과정에서 53년 전 미술관 건물을 광목천으로 묶었던 ‘현상에서 흔적으로’ 작품을 행정규제로 재현하지 못한 것을 두고 “파격적인 작품을 보여드리지 못하고 고리타분한 것만 늘어놓게 돼 미안하다”고 밝혔는데, 이를 두고서도 그의 실험 정신이 고스란히 드러났단 평가다.

성능경은 평생을 비주류 실험미술가로 살아오며 구축한 내밀한 작품세계를 140여 점의 작품으로 드러낸다. 텍스트가 생명인 신문에서 이를 제거하고 편집자가 제시한 사진의 해석을 무효화한 뒤 자신만의 언어로 재해석한 ‘현장’ 연작이 대표적이다. 성능경은 키아프와 프리즈가 개막하는 9월 6일엔 자신의 대표적인 퍼포먼스 ‘신문 읽기’를 외국인 100명과 재현할 예정이다.

유승목 기자 mok@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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