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석] 용산 대통령실 '회(膾)식', 운수 좋은 날
대통령실 식탁에 일주일간 '수산물 메뉴' 올라와
'국민 우려 불식' 위해선 투명한 소통 우선 돼야
[더팩트ㅣ용산=박숙현 기자] "완전 맛있습니다."
28일 대통령실 청사 구내식당으로 점심 먹으러 가는 길. 식사를 먼저 마치고 나온 대통령실 관계자가 말했다. 대통령실은 전날(27일)부터 일주일 간 청사 구내식당 점심 메뉴로 우리 수산물을 제공한다면서 식단을 공개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이후 수산업계 직격탄을 우려해 대통령실이 직접 우리 수산물 소비 촉진에 나선 것이다.
첫날 점심 메뉴는 모둠회(광어·우럭)와 고등어구이였다. 시가로 킬로당 25000원 상당의 광어, 우럭을 구내식당 이용료 3000원을 내고 먹을 수 있다니, 평소 생선회를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도 어떻게 나올지 궁금했다. 모둠회는 1인분씩 먹을 수 있도록 접시에 담겼고, 회도 도톰하고 신선했다.
식사를 마치고 나니 뒤늦게 온 이들의 식판에는 '소불고기'가 담겨 있었다. 준비해 둔 회가 소진된 것이다. 배식을 시작한 지 30분도 채 안 된 때였다. 점심시간 비가 온 탓인지 구내식당엔 평소보다 인원이 많아 보이기도 했다.
대통령실은 공지를 통해 "오늘 점심에는 평소보다 1.5배 이상 많은 인원이 구내식당을 이용했으며, 이 중에는 외부 약속을 취소하고 구내식당을 이용한 직원들도 다수 있었다. 이 자리에는 정무·시민사회·홍보·사회수석, 대변인 등도 함께했다"고 친절하게 알려줬다. 식당에선 "오늘따라 사람들이 많네. 지침이 내려온 건가"라는 우스갯소리도 들렸다. 이날 회식(膾食)할 수 있었던 이들은 운수(?)가 좋았다.
이날 아쉽게 메뉴를 놓쳤어도 괜찮다. 대통령실은 화요일에는 갈치조림과 소라무침, 수요일에는 멍게비빔밥과 우럭탕수, 목요일에는 바다장어 덮밥과 전복버터구이, 금요일에는 물회를 제공한다고 밝혔다. 유명 아이돌 그룹 멤버 최신 솔로곡의 한 표현처럼 'five days a week' 양질의 수산물을 섭취할 수 있다.
운수가 일주일간 계속 좋을 예정이다. 대통령실은 '수산물 메뉴 집중 기간' 이후에도 주 2회 이상 우리 수산물을 주 메뉴로 하겠다고 밝혔다. 5일 연속 수산물 메뉴 제공에 대해 느껴지는 찝찝함은 대통령실 영양사 선생님이 균형 있는 식단을 구성할 거란 믿음으로 욱여넣었다.
대통령도 친히 나섰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석열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에서 한덕수 국무총리와 주례회동을 겸한 오찬을 했는데 수산물을 포함한 메뉴가 올라왔다고 한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27일 부산 자갈치 시장을 방문해 해산물을 구입하고 붕장어회 덮밥을 즉석에서 만들어 먹기도 했다.
소비 촉진을 위해 대통령실 식탁에 특정 메뉴가 올라오는 게 새삼스러운 일은 아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인 2008년 4월 청와대는 조류인플루엔자가 확산하자 구내식당 점심 메뉴로 삼계탕을 내놓았고,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청와대 출입기자단과 삼계탕 오찬 간담회를 가졌다. 이어 광우병 파문이 일자 그해 7월 미국산 쇠고기로 만든 버섯불고기가 청와대 식탁에 오르기도 했다.
대통령실이 나선 '수산물 소비 촉진 운동'이 불편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에 대한 수산업계 우려를 점심 메뉴 홍보로 불식해보겠다는 단순한 의도보다, 국민 걱정을 정치세력의 '괴담'에 의한 것으로 보고 걱정을 해소하기 위한 최대치의 노력을 하지 않은 데 있다.
가령 대통령실은 지난 24일 일본의 오염수 방류 직후 대통령실 입장을 부탁한다는 질의에 "국무총리가 정부 입장을 상세하게 전달했다"면서 "우리 국민의 건강을 지키는 것은 정치적 선동이 아니고, 과학"이라고 짧게 답했다. '대통령실이 일본의 오염수 방류 결정을 언제 알게 됐느냐'는 질문 등에는 "정부가 답변할 일"이라며 언급을 피했다.
오염수 방류 문제에 대해 '국민 건강을 최우선으로 한다'는 대통령실의 일관된 방침치고는 국민이 가장 요구하는 투명한 정보 제공에 소극적이었다. 반면 대통령실은 3800만 원 정도의 예산을 들여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후 우리 수산물은 안전하다는 취지의 동영상을 제작했다.
주무부처인 해양수산부도 지난 24일부터 다음 달 4일까지 '수산물 소비위축 대응 온라인 집중 홍보 사업(예산 2억7000만 원)'을 공고하는 등 수산물 안전 홍보에 주력하고 있다. 오염수 방류에 따른 불안감을 '정치적 선동'이라는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본다면 결코 국민 우려를 제대로 해소하지는 못할 것이다. 문제의 핵심은 대통령실의 '불통'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4월 6일 대규모 여권 회식(會食)에 참석했다. 부산을 방문해 '2030년 세계박람회' 실사단 환송 만찬장을 찾아가 실사단을 만난 뒤 그로부터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한 수산횟집을 찾아간 것이다. 이 자리에는 장제원·하태경 등 부산 지역 국민의힘 의원, 한동훈 법무 장관 등 장관들, 시·도지사 등 48명이 참석했다. 술과 식사를 겸한 저녁 자리는 2시간 동안 이어졌다고 한다. 윤 대통령이 식사를 마치고 식당에서 나오는 모습이 담긴 사진이 온라인 커뮤니티에 빠르게 퍼지면서 알려졌다. 특히 윤 대통령이 떠날 때 참석자들이 줄을 서 인사하는 모습이 화제였다.
대통령 취임 1년이 지났지만 핵심 국정 과제인 3대 개혁(노동·연금·교육 개혁)은 여전히 갈 길을 잃고 표류하고 있다. 대통령실과 정부는 "거대 야당이 발목 잡고 있다"는 말만 반복한다. 그러면서도 대통령은 제1야당 대표를 취임 1년이 지나도록 한 번도 만나지 않았다. 이쯤 해 야당 인사들과의 생선 회식을 추진해보는 건 어떨까.
unon89@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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