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규 질주에 빛바랜 신임 금융지주 수장들의 존재감
윤종규 1위, 진옥동 2위, 함영주 3위, 임종룡 4위
(시사저널=이석 기자·강윤서 인턴기자)
KB, 신한, 하나, 우리, 농협 등 5대 금융지주의 수장이 올해 안에 모두 교체될 것으로 예상된다. 금융권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대규모 지각변동이다. 전임 문재인 정권 때만 해도 주요 금융그룹 회장의 장기집권이 고착화되는 분위기였다.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과 조용병 당시 신한금융지주 회장, 김정태 당시 하나금융지주 회장, 손태승 당시 우리금융지주 회장이 모두 3연임에 성공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의 '4대천왕'이 문재인 정권 때 다시 부활하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왔다.
지난해 초 윤석열 정부가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바뀌었다. 정부는 은행 등 금융지주사가 공공재이니만큼 일정 수위의 견제가 불가피함을 역설했다. 금융위원회를 중심으로 금융회사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태스크포스(TF)가 만들어지기도 했다. '新관치' 아니냐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올 정도였다. 그럴 때마다 정부나 대통령실은 "관치의 문제가 아니다"고 해명했다. 공정하고 투명한 거버넌스 구축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고 설명했다.
5대 금융지주 수장 올해 모두 교체
지난해에 이어 올해 주요 금융그룹의 수장이 대부분 교체된 것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다. 지난해 3월 함영주 하나금융지주 부회장이 회장에 취임했다. 하나금융 회장이 바뀐 것은 정확히 10년 만이었다. 올해 초에는 진옥동 신한금융지주 회장과 임종룡 우리금융지주 회장, 이석준 농협금융지주 회장이 새롭게 수장에 올랐다. 이 과정에서 해프닝도 적지 않았다. 조용병 전 회장의 경우 내정자 발표를 불과 몇 시간 앞두고 갑자기 사임 의사를 밝혀 설왕설래가 이어졌다.
손태승 전 회장 역시 금융 당국의 사퇴 압박이 커지자 결국 연임을 포기했다. 임종룡 회장이 손 회장의 후임자로 내정됐다. 임 회장은 기획재정부 출신으로, 이번 정부 경제정책 입안에도 관여한 것으로 전해진다. 윤석열 대통령 대선 캠프에서 특별한 직함을 가지지 않았지만, 물밑에서 조력자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정부의 초대 총리로 하마평에 올랐던 만큼 '낙하산 논란'이 적지 않았다.
5대 금융그룹 중에서 아직 수장직을 유지하고 있는 인사는 윤종규 KB금융지주 회장이 유일하다. 그나마 윤 회장도 최근 4연임 포기를 선언했다. KB금융지주는 현재 후임자 인선을 위한 절차에 나선 상태다. 후보는 양종희·허인·이동철 KB금융 부회장과 박정림 KB증권 사장(KB금융 총괄부문장) 등 내부 인사 4명과 외부 인사 2명 등 6명으로 좁혀진 것으로 전해진다.
주요 금융지주의 실적에 눈길이 쏠리는 것도 이 때문이다. 지난해 4대 금융그룹은 금리 인상 여파로 이자수익이 크게 증가하면서 사상 최대 실적을 경신했다. 하지만 올해 상황은 만만치 않다. 향후 실적에 따라 차기 회장 선임이나 연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시사저널은 KB금융, 신한금융, 하나금융, 우리금융 등 4대 금융지주의 올 상반기 자산과 실적, 주가, 부채 증감률 등을 전수조사했다. 농협금융의 경우 비상장사로 주가나 EPS(주당순이익) 등을 다른 금융그룹과 동일하게 적용할 수 없었기 때문에 조사에서 제외했다.
시사저널 조사에 따르면 4대 금융그룹의 자산이나 매출은 지난해와 비교해 큰 차이가 없었다. 전체 자산은 2413조원에서 2460조원으로, 매출은 133조3323억원에서 134조1823억원으로 소폭 상승하는 데 그쳤다. 하지만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8.9%와 3.4% 증가했다. 대표적인 수익성 지표인 자기자본수익률(ROE) 평균은 11.05%로 작년 상반기(12.01%)보다 낮지만, 코로나 팬데믹 초기와 비교하면 2배 가까이 높은 수치다.
주목되는 것은 '리딩금융' 자리를 두고 엎치락뒤치락 경쟁을 벌이는 KB금융과 신한금융의 자존심 싸움이다. 2008년 이전까지만 해도 KB금융이 리딩금융 자리를 유지했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면서 업계에 지각변동이 생겼다. 2008년 이후 9년간 신한금융이 1등 자리를 지켰다. 2017년 이후부터 경쟁이 더 심해졌다. 그해 상반기 KB금융이 1위 자리를 탈환했다가, 2019년 신한금융에 리딩금융 자리를 내줘야 했다. KB금융은 다시 2020년부터 신한금융을 제치고 리딩금융 자리를 지켜오다 지난해 왕좌를 내줬다. 올해 상황도 마찬가지다. 상반기 KB금융의 순이익은 3조40억원으로, 2조6831억원을 기록한 신한금융을 제치고 리딩금융 자리를 되찾았다.
올해 조사에서 또 한 가지 주목되는 사실은 우리금융의 추락이다. 지난해 조사(2021년 말 실적 기준) 때만 해도 우리금융의 성장세가 무서웠다. 영업이익과 순이익이 전년 대비 각각 76%와 85% 증가했다. 영업이익률 역시 10%대로 지주사 전환 이후 궤도에 안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올해의 경우 영업이익과 순이익이 전년 동기 대비 10% 이상 하락했다. 농협금융에 밀리면서 4대 금융지주 자리까지 위협받는 모양새다. 올해 초 취임한 임종룡 회장의 어깨가 어느 때보다 무겁게 느껴지는 시기다.
KB vs 신한 리딩금융 싸움 가속화
개별 금융그룹별로 비교해 봐도 상황은 다르지 않았다. 시사저널은 2019년부터 금융정보업체 FN가이드와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올라온 4대 금융그룹의 자산과 매출, 영업이익, 순이익, 부채 증가율과 ROE, 영업이익률, 순이익률, 주가, EPS 등 10개 항목을 비교 분석했다.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조사는 각 부문별로 순위를 정해 1~4점의 가산점을 준 후 총합을 매기는 방식으로 진행했다.
2019년 조사 때만 해도 조용병 당시 신한금융그룹 회장이 31점으로 압도적 1위를 차지했다. 실적과 주가, ROE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다. 김정태 당시 하나금융그룹 회장(26점),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25점),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20점) 등이 뒤를 이었다.
지난해 조사에서 이 순위가 뒤집혔다. 과거와는 반대로 전체 1위(30점)는 손태승 회장이 차지했다. 우리금융은 자산과 ROE, 실적, 주가 부문에서 모두 높은 점수를 받았다. 뒤를 이어 윤종규 KB금융그룹 회장이 2위(24점)를 차지했다. KB금융의 경우 4대 금융그룹 중에서 유일하게 매출이 플러스 성장을 기록했다. 하지만 영업이익과 순이익률이 4대 그룹 중에서 가장 낮게 나왔다. 뒤를 이어 신한금융그룹과 하나금융그룹이 각각 23점으로 공동 3위를 차지했다.
새로운 수장이 대거 취임한 올 상반기에 이 순위가 다시 뒤집혔다. 1위는 KB금융이 32점으로 1위를 차지했다. KB금융의 경우 상반기 자산과 매출, 영업이익, 순이익, 주가 등이 모두 1위를 기록했다. 수익성 지표도 나쁘지 않다. KB금융그룹의 상반기 ROE는 12.2%로 4대 금융그룹 가운데 1위를 차지했다. 덩치만 큰 것이 아니라 내실도 탄탄해진 것이다. 영업이익률이나 순이익률이 상대적으로 낮았다는 점이 '옥에 티'였다.
리딩금융 자리를 두고 KB금융과 매번 다투는 신한금융이 29점으로 아쉽게 2위를 차지했다. 신한금융의 경우 매출은 4대 금융그룹 중에서 가장 낮지만, 영업이익률이나 순이익률은 가장 높게 나타났다. 부채율 역시 1108.23%로 4대 금융그룹 중 가장 낮았다. 하지만 나머지 부문에서 두각을 보이지 못하면서 KB금융에 리딩금융 자리를 빼앗겼다. 진옥동 회장에게는 또 하나의 숙제가 안겨지게 됐다.
하나금융과 우리금융은 각각 19점과 18점으로 3위, 4위를 차지했다. 하나금융의 경우 자산이나 매출 증가율, 순이익률은 전체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부채율이나 ROE가 상대적으로 낮게 나오면서 점수가 반감됐다. 우리금융의 경우 ROE는 양호했지만, 매출이나 영업이익률, 순이익률 등이 떨어지면서 낮은 점수를 받았다. 마찬가지로 새로운 수장이 된 함영주 회장과 임종룡 회장이 이 문제들을 어떻게 풀어낼지 주목된다.
올해 농협금융의 약진도 눈길
이번 조사에서는 제외됐지만 농협금융의 약진도 눈에 띈다. 올 상반기 농협금융의 영업이익은 각각 2조7289억원과 1조8988억원을 기록했다. 지난해 같은 기간과 비교하면 42.28%와 51.36% 증가한 수치로, 우리은행을 제쳤다. 수익성 지표인 ROE는 11.5%로 KB금융에 이어 2위를 차지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측근으로 낙하산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이석준 회장 입장에서는 한숨을 돌릴 수 있게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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