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빙》의 한국형 히어로들, ‘착한 사람이 이긴다’는 메시지 전해”
“재미 있어야 작품의 의미 전달돼...《무빙》은 OTT 드라마에 가장 적합한 소재”
(시사저널=이해람 인턴기자)
디즈니플러스(디즈니+) 오리지널 시리즈 《무빙》이 화제다. 《무빙》은 8월 2주차 굿데이터 TV-OTT 드라마 화제성 부문에서 1위를 차지했고, 한국, 일본, 홍콩 등 아시아태평양 국가에서 디즈니+ 최다 시청 시간 1위를 달성하면서 작품의 흥행을 입증했다. 그동안 한국에서 오리지널 작품들로 큰 화제를 끌지 못했던 디즈니+는 《무빙》에 무려 500억원이라는 막대한 제작비를 투입했다. 완성도 높은 CG와 류승룡, 조인성, 한효주, 차태현, 류승범 등 내로라하는 배우들의 열연을 통해, 《무빙》은 침체기에 빠져 있던 디즈니+를 살려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무빙》은 강풀 작가가 2015년 카카오웹툰(당시 다음웹툰)에 연재한 동명의 웹툰을 원작으로 한다. 그동안 《바보》 《26년》 《이웃사람》 등 강풀 작가의 여러 웹툰이 영상화돼 스크린을 통해 관객들을 만났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강풀 작가가 직접 《무빙》의 각본을 맡아 웹툰의 세계관을 확장하고, 인물의 서사를 최대한으로 담았다. 디즈니+라는 OTT 플랫폼을 통해 총 20부작으로 공개된 《무빙》은 한국의 역사를 큰 줄기로 삼아 멜로, 액션, 휴먼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를 잘 녹여낸 '한국형 히어로물'로 불리며 흥행하고 있다. 《무빙》 흥행 돌풍의 중심에 있는 강풀 작가를 28일 서울 종로구 화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만났다.
《무빙》에 대한 호평이 이어지고 있다.
"만화를 그릴 때보다 훨씬 긴장했는데, 좋은 평가를 받아 기분이 좋다. 공개 일주일 전부터 잠도 오지 않았다. 만화를 그릴 때는 혼자 책임져야 했는데 드라마는 제작진과 함께하는 공동작업이더라. 가편집본을 보고 매우 재밌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중이 같이 재밌어 해야 하기 때문에 걱정이 많았다. 공개 이후 시간이 지날수록 작품에 대한 반응이 좋아지는 것을 보고 마음이 편해졌다."
처음으로 각본가로서 제작에 참여했다. 《그대를 사랑합니다》 등 이전에 영상화된 작품과는 어떤 차이가 있나.
"이전 작품들이 영화로 제작되는 과정에는 간섭을 하지 않았고, 시나리오도 보지 않았다. 제작진이 만드는 것이니 알아서 하라는 방향이었다. 원작이 영상화되는 과정에서 원작을 축약하거나 변형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하기도 했고, '원작보다 아쉽다', '강풀 영화의 최대 적은 강풀 원작'이라는 평가도 있었다. 그래서 《무빙》을 드라마로 제작하면서 내 손으로 직접 각본을 쓸 때는 '달라야 한다', '더 재밌어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이 있었다."
작품에 캐릭터 한 명 한 명의 서사가 자세히 담겨 있다. 영화가 아닌 드라마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걸까.
"《무빙》은 드라마에 가장 적합한 소재다. 2015년 웹툰 《무빙》을 연재할 때는 'OTT의 시대'가 아니었다. 당시에는 이 작품을 영화로 다루는 것이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OTT의 시대가 열린 뒤 드라마의 파급력이 커졌고, 《무빙》을 드라마로 제작해보지 않겠냐는 제안이 왔다. 캐릭터마다의 서사를 작품에 담아내야 한다고 생각했다. 20부작의 드라마이기 때문에 긴 서사를 잘 담아낼 수 있었다."
《무빙》의 히어로들은 할리우드에서 제작된 히어로 영화의 주인공들과 달리 일상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캐릭터들이다.
"나라나 지구를 지키는 슈퍼 히어로가 아니라 '평범한 히어로'를 그리고 싶었다. 《무빙》의 히어로들은 사랑하는 딸과 아들, 남편과 아내를 지키기 위해 싸운다. 주변 어디서나 볼 수 있을 것 같은 사람들을 히어로로 표현하고자 했다."
'평범한 히어로'를 통해 보여주고자 한 것은 뭔가.
"모든 부모가 히어로라고 생각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지키기 위해 싸우는 사람, 공격하기보다 방어하는 사람으로 히어로의 의미를 확장했다. 그리고 한국의 역사와 닿아있고,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시대에 휩쓸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리고자 했다. 이 서사를 투영하는 히어로가 바로 한국형 히어로다."
《무빙》을 구상하면서 가장 우선시한 것이 '재미'라고 했다. 재학 중이던 학교의 비리 문제나 5·18민주화운동 등을 담은 작품들을 통해 사회적 메시지도 전달한 바 있는데. 이번 작품에서 재미를 우선시한 이유가 있나.
"연재 만화 중 메시지에 치중한 작품은 《26년》뿐이다. 그 외 작품은 모두 재미를 최우선으로 생각했다. 의미를 전달하려고 해도 재미가 없다면 아무도 보지 않기 때문이다. 작품의 의미는 독자나 시청자들이 찾아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무빙》에서 담고자 한 메시지는 '착한 사람이 이긴다'가 전부다."
원작 웹툰에는 남북 분단 문제 등 민감한 소재가 담겨 있다.
"드라마에도 역시 담겨 있다.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자세히 말하진 않겠다. 작품에 정치색을 드러낼 의도는 없지만, 정치는 우리 삶에서 분리할 수 없다. 아직도 전쟁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분단 문제 역시 작품에 담을 수밖에 없다. 모두가 경험하고 있는 것을 애써 모른 척하는 것이 더 비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숏폼의 시대다. OTT플랫폼에서 20부작의 긴 서사를 하는 게 쉽지 않은데.
"대중들은 유튜브처럼 짧은 영상을 좋아한다. 긴 서사에 대한 관심이 없어진 것 같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태백산맥》 같은 대하소설을 좋아했다. 《무빙》에도 깊고 넓은 서사를 담았다. 조금만 늘어져도 건너 뛰거나 요약본을 보는 시대에, 긴 서사를 지키는 것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무빙》 역시 초반에 지루하다는 평가가 있었다. '줄거리'보다 '이야기'를 전하는 작가가 되고자했고, 인물의 서사를 완성시키고 싶었다."
오랜 기간 만화를 그릴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이었나.
"만화를 그리는 것을 가족을 부양하는 생계수단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작가가 글을 쓰고 만화를 그리는 게 대단한 일인 줄 알았다. 지금은 직업이라 생각한다. 일은 누구나 하기 싫고 재미없다. 작가를 직업으로 삼으니 작품을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무빙》 이후 계획도 궁금하다.
"《무빙》 방영이 끝나면 안식월을 갖고 싶다. 작업실에 출근도 하지 않고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놀고 싶다. 왕성하게 활동하는 기간은 앞으로 10년 정도가 아닐까 싶다. 연출을 하기보다는 '이야기꾼'으로 남고 싶다. 후속작의 가능성도 열어두고 있지만, 내가 하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단언할 수는 없다. 《무빙》의 이번 흥행 결과에 따라 정해질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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