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든 베트남행 선물 보따리엔[가깝고도 먼 아세안](17)
9월 초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베트남 하노이를 방문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베트남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줄다리기가 치열해지고 있다. 지난 8월 8일 미국 뉴멕시코에서 열린 2024 대통령선거 정치기금모금 행사 연설에서 바이든은 “베트남을 방문할 것”이라며 “앞으로 몇 주, 몇 달 안에 방문이 이뤄지기를 희망한다”고 말했다. 이는 베트남 정부에 회담 일정에 대한 결단을 에둘러 촉구한 것으로 해석된다. 현재까지 베트남 정부는 어떠한 공식적인 언급도 없지만, 세계 주요 언론은 바이든의 방문 가능성 기사를 일제히 쏟아냈다. 지난 8월 18일에는 미국의 정치 전문 일간지 폴리티코가 익명의 정부 핵심 관계자 3명의 말을 인용해 “바이든이 9월 중순 베트남과 외교 관계를 전략적 관계로 격상하는 협정에 서명하러 간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수년 전부터 베트남에 ‘포괄적 동반자’ 관계를 ‘포괄적 전략’ 관계로 격상할 것을 끊임없이 요구해왔다. 하지만 미국과 베트남이 가까워지는 것을 경계하는 중국의 경제적·군사적 보복을 피하고자 베트남 정부는 이를 완곡하게 거절하는 중이다.
바이든 미 대통령 9월 베트남 방문 관측
예상되는 바이든 대통령의 베트남 방문 날짜는 9월 11일이다. 바이든은 9월 9일부터 10일까지 인도 뉴델리에서 열리는 G20 정상회의에 참석하는데 행사가 끝나자마자 곧바로 베트남으로 갈 것으로 관측된다. 바이든은 9월 5일부터 7일까지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리는 아세안 정상회담에는 불참하고 카멀라 해리스 미 부통령을 대신 보낼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른 아세안 국가 정상들과의 회담 일정은 포기하면서도 베트남에는 가는 셈이다. 그만큼 미국 바이든 행정부는 베트남 공들이기에 집중하고 있다.
미국 최초의 싱크탱크인 랜드코퍼레이션(Rand Corporation)의 수석 국방연구원인 데릭 그로스먼은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바이든 대통령이 베트남을 방문하기 직전 중국 시진핑 주석이 베트남을 먼저 방문하거나 최소한 리창 총리를 하노이로 보낼 수 있다는 소문이 돌고 있다”고 포스팅했다. 중국은 미국이 베트남에 쏟아낼 선물 보따리보다 더 큰 선물을 제안해 베트남과 미국이 가까워지는 사태를 막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현재 상황은 2021년 8월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베트남이 마비 상태가 됐을 때 해리스 미 부통령이 코로나19 백신과 각종 지원 물품을 직접 수송해갔을 때와 중첩된다. 당시 주베트남 중국대사가 해리스 미 부통령 도착 2시간 전에 베트남 판 민 찡 총리를 만나 미국 백신의 2배 분량을 지원해주겠다며 베트남이 미국과 가까워지는 것을 막아보려고 했다. 물론 베트남 총리는 중국의 제안을 정중히 거절했다.
폴리티코는 바이든의 선물 보따리는 베트남 반도체 생산 및 인공지능(AI) 산업에 대한 지원일 것이라고 보도했다. 지난 7월 재닛 옐런 미 재무장관이 베트남 방문 중 연설에서 ‘미국 반도체 지원법’ 예산 중 5억달러는 아시아 지역에 쓰여야 한다며 베트남에서 반도체 패키징과 테스트를 하고 있는 인텔과 올해 10월 시범 생산 목표로 베트남 북부 박닌 지역에 공장을 짓고 있는 앰코 테크놀로지를 언급했다. 이는 미국 내에 반도체 산업에 투자하는 기업에 지원하는 예산을 베트남에 생산 시설을 갖춘 미국 반도체 기업에도 사용하겠다는 뜻이다.
전기 오토바이 사업 대대적 지원 가능성
이외에도 전기 오토바이 사업에 대한 미국의 대대적 지원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 근거는 지난 3월 서맨사 파워 미국국제개발처장이 베트남 하노이 방문 일정 마지막 날 베트남 전기 오토바이 스타트업인 닷바이크(Dat Bike)를 방문한 데서 찾을 수 있다. 단순히 회사를 방문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닷바이크의 CEO가 직접 운전하는 오토바이 뒤에 타고 하노이 시내를 주행했다. 이에 더해 7월에는 옐런 미국 재무부 장관이 베트남 하노이를 방문해 셀렉스 모터스(Selex Motors)라는 또 다른 전기 오토바이 스타트업을 방문했다. 이 둘의 베트남 전기 오토바이 스타트업 방문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미국국제개발처(USAID)는 전 세계 도움이 필요한 국가에 인프라 사업이나 교육, 복지 등 각 분야에 걸쳐 원조를 해주는 부처다. 2023년 확정된 USAID의 예산은 495억9000만달러(약 67조억원)를 쓴다. 한편 옐런 장관의 재무부는 미국 예산을 다루는 곳이다. 예산을 마련하고 예산을 쓰는 곳의 수장들이 연달아 베트남 전기 오토바이 업체를 방문했다는 것은 미국이 베트남 전기 오토바이 사업을 적극적으로 지원해주겠다는 의미로 해석해볼 수 있다.
베트남의 하노이와 호찌민은 주요 도시 공기 오염 순위에서 항상 상위권일 정도로 심각하다. 주범은 자동차 4대 분량의 배기가스를 뿜어내는 오토바이. 특히 오래된 오토바이일수록 오염 물질 배출량이 더 많다. 등록된 오토바이만 6500만 대인 ‘오토바이 왕국’ 베트남은 2억6000만 대 이상의 자동차가 배기가스를 뿜어내고 있는 것과 같은 상황에 놓여 있다. 이에 하노이시 당국은 2030년부터 오토바이의 도심 진입을 금지하는 고육책을 내놨으나, 대중교통 수단이 턱없이 부족한 현실에서 실현 불가능한 법규라는 강한 반발에 부딪히고 있다. 그런데 미국이 베트남과 외교 관계 개선에 대한 보답으로 전기 오토바이 사업에 대한 대대적인 지원금을 쏟아낸다면 전기 오토바이 구매 보조금 지급 및 도심 전역 전기 오토바이 충전소 구축, 배터리 교체 시설 설치, 전기 충전 요금 인하 등의 다양한 지원책이 나올 것으로 예상된다. 미국이 실제로 지원할 투자는 언급된 것 이상으로 더 많아 보인다. 지난 3월 애플, 메타, 아마존, 보잉, 록히드마틴, 스페이스X 등 IT·방산을 비롯한 등 다양한 분야의 52개 미국 기업이 사상 최대 규모의 투자단을 구성해 베트남을 방문했다. 이들 기업이 아직 투자에 착수하지 않고 있는 것은 베트남이 미국과 외교관계를 격상하면 투자를 하겠다는 조건이 붙어 있기 때문이다.
지난 30여 년간 한국을 선두로 한 일본, 중국, 대만 등 아시아 기업들의 투자금이 베트남의 경제성장을 이끌어왔다. 2020년 8월 베트남-EU FTA 발효로 유럽계 자금도 베트남으로 유입되기 시작했다. 미국 기업들의 투자는 아직 미비하다. 미국계 투자금마저 대대적으로 들어온다면 베트남 경제성장에는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미·중 갈등 속에서 베트남은 국운 상승의 호기를 맞이하고 있다.
호찌민 | 유영국 「베트남 라이징」, 「왜 베트남 시장인가」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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