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대중·대러 관리외교 시동… 中·러와 접촉면 늘리기 행보

홍주형 2023. 8. 29. 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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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印 G20 정상회의 등 계기
연내 한·중 회담 추진 가능성
러와 9월 중 차관급 인사교류
‘캠프데이비드 선언’ 이후 리스크 관리
北 국경 개방에 맞아 中·러 협조 필요
일관되게 공들이고 있다 메시지 발신
中, 韓의 美 쏠림 막으려 응할 가능성
구조적 환경 녹록지 않아 불안정 전망
대통령실, 中과 성숙한 관계 구축 강조

정부가 지난 18일 미국 캠프데이비드에서 열린 한·미·일 정상회의에서 3국 협력이 공고화한 것을 계기로 대중 및 대러 관계 관리에도 시동을 걸고 나섰다. 한·미·일 3각 공조의 안정성을 발판 삼아 중·러와도 관계 조율에 나서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28일 윤석열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9월 9∼10일 인도 뉴델리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을 계기로 양자회담을 가질 가능성에 대해 “G20 등 다자회의에 시 주석이 올 경우 계기가 되면 (양자회담을) 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G20 정상회의는 물론 오는 11월 미국에서 열릴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도 한·중 정상회담 성사의 계기가 될 수 있다. 우리 정부는 연말 한국에서 한·중·일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것을 하반기 대중 외교의 목표로 삼고 있다. 다만 이 관계자는 “아직 확정지어 이야기할 단계가 아니다”라며 “(국제무대에서) 회담 계기를 갖고자 하는 건 항상 해왔던 시도”라고 조심스럽게 언급했다.
윤석열 대통령(왼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22년 11월15일(현지시간) 인도네시아 발리의 한 호텔에서 열린 정상회담에 참석해 악수하고 있다. 발리=연합뉴스
2019년 12월을 끝으로 중단된 한·중·일 정상회의 역시 한·일 양국이 적극적인 가운데 정부는 중국 또한 개최 필요성을 느낄 것으로 보고 있다. 이 회의에는 중국에서 총리급 인사가 참석한다. 마침 이날 오영주 외교부 2차관이 고위급 실무진이 참여하는 경제 포럼인 제27차 한·중 경제공동위원회 참석을 위해 방중했다.

이르면 내달 중 러시아 차관급 인사의 방한도 추진되고 있다. 6월 장호진 외교부 1차관의 방러에 대한 답방 차원이다.

하반기 차관급 인사가 방한하면 올해 처음으로 러시아 고위급 인사의 방한이 된다. 한반도 등 동아시아 문제를 관할하는 안드레이 루덴코 러시아 외교부 차관의 방한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우리 정부는 양국 관계가 경색된 상황에서 러시아 내 한국 기업들의 편의를 요청하는 것과 함께 북·러 무기 거래 동향, 북한의 국경 개방 후 해외 노동자 송환 등 북한에 관한 문제들을 논의할 필요성이 있다.

우리 정부는 ‘중국과의 대화에 열려 있다’는 기본 입장 아래 ‘성숙하고 건강한 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대중 관리의 핵심이라고 보고 있다. 한·미·일 3각 협력 강화의 발판 속에서 한·중, 한·러 관계 관리도 가능하다는 얘기다. 하반기 중국, 러시아와의 ‘관리 외교’에 나서면서도 일각에선 신중한 분위기도 감지되는 배경이다.

◆中·러와 접촉면 늘리기 행보… 경제·비자 문제 등 해결 우선

정부가 미국 중심의 자유주의 연대로 한발 더 다가선 캠프데이비드 한·미·일 3국 정상회의 이후 중국 및 러시아와의 관계 관리 국면에 들어섰다. 하반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등을 계기로 정상 간 만남부터 한·중·일 3국 정상회의까지 중국과 접촉면을 늘리겠다는 복안이다. 한국이 미국에 밀착하는 것과 동시에 서방과 ‘가치 연대’를 추구하면서 소원해진 러시아와도 관리 국면을 유지한다는 계획으로 보인다.
윤석열 대통령(왼쪽),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대중·대러 관리 띄우는 정부

우리 정부는 중국을 역내 위협으로 직접 언급하고 남중국해나 대만 문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등에 대해 이전보다 선명하게 각을 세운 캠프데이비드 선언 이후 일관되게 대중 및 대러 관계 관리에 공을 들이고 있다는 메시지를 발신하고 있다. 28일 외교부에 따르면 박진 장관은 캠프데이비드 정상회의와 관련해서도 중국에 설명했다. 경제분야 고위급 포럼인 한·중 경제공동위원회를 3년 만에 대면으로 중국에서 개최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지난 6월 장호진 1차관의 러시아 방문에 상응하는 러시아 고위급 관리의 방한을 예고한 점도 연장선상에서 볼 수 있다. 대중, 대러 관계가 악화하는 동안 기업 활동이나 비자 문제 등 우리 국민이 직접 어려움을 겪는 실무적 문제가 산적한 상황에서 정부로서도 한·미·일 삼각협력을 공고화시킨 데 대한 자신감을 발판 삼아 악화된 관리에 나선 것으로 분석된다. 특히 연말 한·중·일 정상회의는 우리 정부가 의장국을 맡았으며, 윤석열 대통령이 올해 초부터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어 정부의 성사 의지가 높다. 중국에선 한·중·일 정상회의에 총리급이 참석하는데, G20 정상회의나 APEC 정상회의를 통해 지난해 발리 G20 회의에서처럼 윤 대통령과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만남을 추진하면 올해 계속된 중국과의 불화를 진정시키는 모습도 극대화할 수 있다. 북한이 국경을 개방하는 시점에서 북한 문제 관리를 위해 중국 및 러시아와의 협조가 필요한 상황이기도 하다.

중국도 왕원빈 외교부 대변인이 지난 24일 “한국이 중국과 관계를 발전시키길 희망한다는 뜻을 중시한다”고 밝혀 한·미·일 정상회의 이전과 직후의 격앙된 반응에 비하면 한층 절제된 메시지를 내놓고 있다. 정부 내에선 중국이 한·일을 미국 쪽에 너무 밀착시키지 않기 위해서라도 하반기 정부의 ‘관리 외교’에 호응할 것이라고 보는 시각이 있다.

주재우 경희대 중국어학부 중국 정치외교 담당 교수는 이날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한·미·일을 밀착시키지 않고, 소통 창구로 삼기 위해서라도 중국은 한국과의 관계를 유지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강준영 한국외대 국제지역대학원 교수는 “한·중·일 정상회의까지 하지 않게 되면 한·일이 미국에 더 밀착하는 모양새가 된다”고 설명했다.
위성락 전 주러 대사
◆한국이 급급한 모양새는 경계

다만 대통령실 내부에선 한국 정부가 한·중 정상의 만남에 급급한 모양새로 비치는 것을 경계하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싱하이밍(邢海明) 주한 중국대사의 ‘베팅’ 발언 등에 정부가 강력 대응한 것도 중국과 ‘성숙하고 건강한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이유에서였다. 한 관계자는 “우리가 먼저 만남을 타진하거나 매달려서는 안 된다”며 “계기가 되면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한 여권 관계자는 “그간 한국에 대한 중국의 태도는 속국을 대하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며 “한·미·일 체제가 강화되면 오히려 중국과의 협상 레버리지가 커질 것”이라고 말했다.

한·중관계가 전면적으로 개선되기엔 현재의 구조적 환경이 녹록지 않다는 견해도 있다. 위성락 전 주러대사는 이날 세계일보와의 통화에서 “중국 입장에서 (한·미·일 군사협력을 강화한) 캠프데이비드 선언은 하나의 분기점을 넘은 것”이라고 말했다. 한·중 정상회담이 성사될 경우 북핵 문제, 경제협력, 인적 교류 등 의제에서 낮은 차원의 공감대가 형성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대러 관계 역시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러시아의 외교적 공간이 넓지 않은 상황이어서 기초적 수준의 관리만 가능하다는 분석이다.

홍주형·이현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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