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1위 올라선 시애틀, 이젠 ‘2001년의 추억’ 놓아줄 수 있을까[슬로우볼]

안형준 2023. 8. 29.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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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엔 안형준 기자]

이제는 '2001년의 추억'을 놓아줄 수 있을까. 시애틀이 달리고 있다.

2001년 시애틀 매리너스는 그야말로 최고였다. 개막전을 승리로 장식하며 시즌을 시작했고 4월 한 달을 20승 5패, 무려 승률 8할로 마쳤다. 이는 질주의 시작일 뿐이었다. 5월 승률 0.741로 상승세를 계속 이어간 시애틀은 6월과 7월 연달아 승률 0.667을 기록했고 8월 승률 0.690을 기록했다. 9월부터는 더 페이스를 올려 9월 승률 0.714, 10월 열린 6경기에서도 승률 0.883을 기록했다.

월간 최저 승률이 6-7월 기록한 0.667이었던 시애틀은 그 해 단 한 번도 한 달에 10번을 패한 적이 없었다. 그리고 개막전 승리로 지구 1위로 시즌을 시작해 개막 2-4일차에 단 3일 동안 아메리칸리그 서부지구 공동 1위를 허용했을 뿐, 개막 5일차이자 시즌 4차전이 열린 4월 7일(이하 한국시간)부터 정규시즌이 끝나는 날까지 단 하루도 지구 단독 1위를 놓치지 않았다. 지구 내 경쟁으로만 치면 시작부터 우승까지 선두를 놓치지 않은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이었다.

매달 압도적인 모습을 이어간 시애틀은 그 해 시즌 116승 46패, 승률 0.716이라는 그야말로 '괴물'같은 성적을 썼다. 시즌 116승은 아직도 이어지고 있는 메이저리그 단일 시즌 최다승 기록. 최고의 지명타자와 최고의 2루수가 팀을 지켰고 1-5선발이 모두 두자릿수 승리를 거뒀으며 1-4 선발은 모두 15승 이상을 기록했다. 그리고 태평양을 건너온 27세의 신인 외야수가 메이저리그 확장시대 단일 시즌 최다안타 신기록을 작성하며 아메리칸리그 타율 1위, 메이저리그 전체 최다안타 1위, 도루 1위에 올랐다. 바로 데뷔시즌 아메리칸리그 신인왕과 MVP를 모두 휩쓴 스즈키 이치로였다.

전설적인 한 시즌이었고 이치로의 커리어는 이제 시작이었다. 1977년 창단해 1991년에야 처음으로 위닝시즌을 기록한 시애틀은 1990년대 중반에 접어들며 조금씩 성과를 내고 있었다. 1995년과 1997년 지구 우승을 차지했고 직전시즌이던 2000년에도 신인왕을 배출하며 구단 역대 한 시즌 최다승(91승)을 달성했다. 상승세에 이치로를 더한 시애틀은 메이저리그를 선도하는 강팀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시애틀은 2002-2003년 2년 연속 93승을 거뒀지만 '죽음의 조'가 된 서부지구에서 각각 3위, 2위에 그쳤고 포스트시즌 티켓을 얻지 못했다. 타선을 이끌던 지명타자 에드가 마르티네즈와 강타자 2루수 브렛 분의 기량도 2003년을 끝으로 쇠락했다. 마르티네즈가 풀타임 데뷔 15시즌만에 리그 평균 이하의 타격 생산성을 기록한 2004년에는 승률 0.389로 지구 최하위로 추락했다. 마르티네즈와 분이 모두 떠난 2005년부터는 사실상 서부지구의 '바닥'을 깔아주는 약팀으로 전락했다. LA 다저스로부터 새 스타플레이어 아드리안 벨트레를 영입했지만 소용없었다.

그렇게 시애틀의 암흑기는 길어져만 갔다. 데뷔시즌 역사를 쓴 이치로는 2012시즌 팀을 떠났고 시애틀은 펠릭스 에르난데스, 카일 시거 등 스타를 배출했지만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다. 뉴욕 양키스 출신 스타 로빈슨 카노도 흐름을 바꾸지 못했다. 19년이나 빅리그에서 활약한 이치로가 은퇴한 뒤에도 마찬가지였고 그렇게 시애틀의 포스트시즌은 '선사시대의 일'처럼 멀어져갔다. 그러는 동안 시애틀은 북미 4대 프로스포츠 최장기간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팀의 불명예를 떠안았고 매년 자신들의 기록을 새로 써갔다.

그러던 시애틀은 지난해 드디어 가을을 맛봤다. 이치로 이후 첫 '풀시즌 신인왕'을 배출한 시즌이었다(2020년 단축시즌 신인왕 카일 루이스). 이치로보다 정교함과 수비, 주루플레이 능력은 부족하지만 이치로에게는 없는 장타력을 가진 도미니카 공화국 출신의 호타준족 외야수는 데뷔시즌 28홈런 25도루, OPS 0.853을 기록하며 MVP 투표 7위까지 올랐다. 새롭게 팀 타선을 이끄는 리더로 도약한 훌리오 로드리게스였다. 비록 2010년대 후반부터 메이저리그 최강자의 자리에 근접한 휴스턴 애스트로스를 넘어서지는 못했지만 지구 2위로 와일드카드 티켓을 따내며 21년만에 가을 무대에 올랐다.

20년 묵은 한을 풀어낸 시애틀은 올시즌 도약을 준비했다. 지난해 포스트시즌을 위해 영입한 에이스 루이스 카스티요와 연장계약을 맺었고 트레이드로 강타자 테오스카 에르난데스도 품었다. 하지만 시즌은 기대와는 다르게 흘렀다. 휴스턴이 여전히 탄탄한 가운데 시장에 돈을 쏟아부은 텍사스 레인저스가 순위 경쟁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여기에 오타니 쇼헤이의 마음을 붙잡기 위한 LA 에인절스의 분투까지 더해지며 시애틀은 어려운 시즌을 보냈다. 4월을 4할 초반의 승률로 마쳤고 5월 잠시 페이스를 끌어올렸지만 6월 한 달 동안 3할대 승률에 그쳤다. 최약체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덕분에 최하위 걱정은 없었지만 전반기 대부분의 시간을 지구 4위로 보냈다.

하지만 7월부터 반격에 나섰다. 전반기 마지막 9경기에서 7승을 거두며 승률 5할을 넘어선 시애틀은 7월 한 달 동안 승률 0.654를 기록하며 페이스를 끌어올렸다. 7월을 마친 시점의 순위도 4위였지만 승률은 0.519까지 올라 6월을 마친 시점(승률 0.475)과는 달랐다. 그리고 8월 첫 경기 패배 이후 8연승을 달리며 3위로 뛰어올랐고 8월 13-15일 3연패로 잠시 주춤했지만 16일부터 다시 8연승을 질주했다.

그리고 지난 26일 캔자스시티 로열스전 승리로 서부지구 공동 1위로 올라선 시애틀은 28일 캔자스시티와 홈 3연전을 쓸어담으며 기어코 시즌 첫 단독 1위가 됐다. 28일까지 8월 승률 0.792(19승 5패)를 기록하며 마치 2001년이 떠오르는 질주를 선보인 시애틀은 6월 말 지구 내 순위 경쟁에서 무려 10.5경기차까지 벌어졌던 승차를 두 달만에 모두 지웠다.

상승세를 이끄는 선수는 역시 로드리게스다. 로드리게스는 후반기 38경기에서 .352/.412/.606 10홈런 35타점 13도루의 엄청난 활약을 펼치며 팀 공격을 주도하고 있다. 여기에 포수 칼 랄레이가 후반기 38경기에서 14홈런을 쏘아올리는 엄청난 장타 페이스를 보이고 있고 에르난데스, 에우제니오 수아레즈 등 베테랑들도 힘을 보태고 있다. 마운드에서는 카스티요를 필두로 로건 길버트, 조지 커비, 브라이스 밀러 등 주축 선발투수들이 탄탄한 피칭으로 거의 매 경기 우위를 이끌고 있다.

이제 시즌 종료까지는 약 한 달이 남았다. 상승세를 유지하며 한 달 동안 시애틀이 1위를 지켜낸다면 2001년 이후 첫 서부지구 정상에 오르게 된다. 지구 우승을 차지한다면 더는 '이치로의 데뷔시즌'에 대한 그리움에 젖어 20년도 더 지난 추억을 매일 꺼내볼 필요가 없다.

물론 2001년 이후 첫 지구 우승을 차지한다고 해도 더 큰 숙제는 남아있다. 바로 팀 역사상 한 번도 올라보지 못한 '미지의 세계'와 같은 월드시리즈 무대다. 시애틀은 메이저리그 30개 구단 중 유일하게 아직까지 한 번도 월드시리즈에 오르지 못한 팀이다.(자료사진=훌리오 로드리게스)

뉴스엔 안형준 markaj@

사진=ⓒ GettyImages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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