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이초 사건 범죄 혐의 없다"면서…경찰 왜 '종결 선언' 못하나
이례적인 장기간 내사 '고민' 깊은 경찰…檢 수사 개시 '촉각'
(서울=뉴스1) 서상혁 기자 = 서이초등학교 1학년 담임 교사의 극단선택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이른바 '연필 사건'과 관련해 학부모의 범죄 혐의가 없는 것으로 사실상 결론 내렸다. 해당 학부모의 폭언과 협박, 공무집행 방해 혐의 등이 확인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경찰 내부에서는 신중론이 팽배해 쉽사리 '종결'을 선언하지 못하고 있다. 경찰 수사 불신론이 이미 확산한 데다 최근 검찰이 갑질 의혹으로 고발된 서이초 학부모 수사에 착수했기 때문이다.
경찰이 지난해 고인이 맡았던 학급으로 수사를 확대한 것도 유족의 요청과 함께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한 결과로 풀이된다. 경찰이 그간 밝혀내지 못한 범죄 정황이 검찰 수사로 드러날 경우 '부실수사' 논란이 거세질 수 있다.
◇'협박' 등 갑질 준하는 혐의 확인 안 돼
29일 <뉴스1>에 따르면 연필 사건은 지난달 12일 서이초 1학년 학생이 자기 가방을 연필로 찌르려는 학생을 막다가 이마에 상처를 입은 일이다. 숨진 A교사와 학부모들은 연필 사건과 관련해 여러 차례 연락을 주고받았는데, 이 과정에서 학부모들이 교사에게 갑질했을 것이라는 의혹이 제기돼 왔다
경찰은 한 달 이상 연필 사건 학부모의 갑질 의혹을 수사했으나 '협박죄' '강요죄' '공무집행방해' 등 갑질에 준하는 범죄 혐의점을 발견하지 못했다.
서울경찰청 관계자는 전날(28일) 기자간담회에서 "'너 같은 것이 무슨 교사나' '너를 자르겠다' 등 범죄 혐의로 입건될 만한 학부모들의 폭언이 있었느냐"는 취지의 질문에 "(그런 정황을) 확인하지 못 했다"고 답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통화 내역과 녹음은 포렌식 확인을 할 수 없었지만 하이톡(교사용 메신저)와 문자, 동료교사 진술 등을 봤을 때 특별히 그런 부분(범죄 혐의로 입건될 만한 갑질)은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노조는 A교사 사망 후 연필사건 학부모들이 고인에게 '폭언'이나 '협박'을 했다고 주장해 왔다. 노조 측은 최근에도 "왜 이렇게 수사가 오래 걸렸는지, 통화 내용은 어떻게 확인할 것인지 등 의혹을 설명하긴 부족하다"는 입장을 유지했다.
변수는 경찰이 확보하지 못한 통화 내역이다. 경찰은 연필 사건 학부모의 휴대전화를 포렌식해 A교사와 나눈 문자나 하이톡 내역은 확인했다. 문제는 학부모 휴대전화에 녹음파일이 없었다는 점이다. A교사의 '아이폰'도 포렌식하려 했으나 잠금장치가 설정돼 안을 들여다보지 못했다.
문자 내역에 없는 갑질 정황이 혹시라도 통화내역에 있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지 못하는 것이다.
다만 연필 사건 가해 학생의 어머니인 B씨가 A교사와 통화할 당시 "피해학생 부모에게 사과하고 싶다" "피해학생 학부모에게 사과했다"는 취지로 말했다는 진술은 경찰이 확보한 상태다.
온라인 공간에서는 연필 사건 학부모의 '수사 외압설'이 확산하고 있다. 가해 학생의 어머니가 현직 경찰관이고 아버지는 검찰 수사관인데 "경찰이 어떻게 자기편을 쳐내겠냐"는 논리다.
경찰 내부에서는 고위직이 아닌 '실무자' 계급인 B씨(경위)가 온 국민의 관심이 쏠린 사건 수사에 외압을 행사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반론이 제기된다.
서울경찰청 고위 관계자는 "연필 사건 학부모의 직업은 이번 사건과 관련이 없다"며 "그런데도 학부모의 직업이 공개되고, 학부모의 직업이 경찰 수사에 일부 영향을 미쳤다는 주장을 매우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개인폰 연락' 의혹도 해소됐으나 수사 확대
'개인 휴대전화 연락' 의혹도 어느 정도 해소된 것으로 보인다.
A교사의 개인 휴대전화로 먼저 연락을 한 연필사건 학부모의 악성 민원으로 A교사가 불안감을 호소했다는 의혹이었다. "학부모가 어떻게 개인 휴대폰 번호를 알았는지 고인이 불안해했다"는 동료 교사들의 증언도 있었다.
경찰이 A교사의 태블릿 PC를 포렌식 한 결과, 학교 내선 전화가 고인의 개인 휴대폰으로 착신 전환된 정황을 확인했다. 피해 학부모가 학교로 전화했을 당시 고인의 개인 휴대폰과 연결된 태블릿PC에 개인번호가 표출됐던 것이다. 학부모가 학교 내선 번호로 전화했어도 고인의 개인 휴대폰에 '부재중 전화' 기록이 남았을 것이라는 경찰의 추정이다.
A교사는 연필 사건 당일인 7월 12일 피해 학부모와 한 차례 개인 휴대폰으로 통화했다. 당시는 고인이 먼저 해당 학부모에게 전화를 걸었다. 고인은 연필사건(7월12~13일) 당시 가해 학생 학부모와는 개인 휴대폰으로 통화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진다.
경찰은 지난해 A교사가 맡았던 학급으로 수사의 초점을 옮겼다. 유족이 "지난해에도 어떤 일이 있었는지 확인해달라"는 취지의 요청을 한 데 따른 것이다.
이에 최근 하이톡 운영사를 대상으로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해 A교사가 지난해 맡았던 학급의 '하이톡 내역'을 받아 분석 중이다.
경찰은 단발성 여부와 관계없이 A교사와 민원을 제기한 사안에 대해선 모두 들여다본다는 방침이다. 장기간 민원을 제기한 학부모에 대해선 휴대전화 포렌식도 진행할 계획이다.
최근엔 지난해 A교사 학급에서 물리적인 충돌이 있었던 학생의 학부모를 불러 조사하기도 했다. 다만 아직까지 범죄 혐의점은 발견하지 못했다.
일각에서는 연필 사건이 재점화할 가능성이 제기한다. 교사 단체 실천교육교사모임은 지난 24일 연필사건 관련 학부모 4인을 서울중앙지검에 협박죄,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 등으로 고발했다. 현재 검찰은 정식으로 사건을 배당하고 수사를 개시했다.
향후 검찰 수사로 학부모의 갑질 범죄 혐의가 확인될 경우 경찰은 '부실수사' 논란과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진다. 통상적으로는 '내사 종결'로 이미 끝냈을 사건이지만 경찰이 수사를 확대하고 면밀한 확인 작업을 이어가는 배경으로 꼽힌다.
연필 사건 학부모들을 이례적일 만큼 장기간 내사하고 혐의점이 확인되지 않았지만 경찰 수사는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경찰 관계자는 "앞으로도 모든 가능성을 열어두고 수사할 것"이라고 말했다.
hyuk@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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