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렸던 방향성, 서튼 감독을 집어삼키다[초점]

이정철 기자 2023. 8. 29. 0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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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한국 이정철 기자] 롯데 자이언츠를 이끌던 래리 서튼(53) 감독이 건강상의 사유로 사령탑에서 물러났다. 2022시즌을 앞두고 수립했던 팀의 방향성이 흔들렸고 서튼 감독은 지휘봉을 내려놓았다.

롯데 구단은 28일 "서튼 감독이 27일 kt wiz전이 끝난 뒤 건강을 사유로 사의를 표했다"며 "구단은 숙고 끝에 서튼 감독의 뜻을 존중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서튼 감독은 지난 2021년 5월 롯데 사령탑을 맡았다. 롯데는 당시 12승18패로 최하위에 머물렀던 허문회 감독을 경질하고 서튼 감독에게 팀의 운영을 맡겼다. 서튼 감독은 팀전력을 재정비했고 후반기 5강 싸움을 벌이며 롯데팬들에게 희망을 안겼다. 결국 가을야구는 좌절됐지만 서튼 감독은 취임 후 53승8무53패로 5할 승률을 기록했다.

래리 서튼 감독. ⓒ스포츠코리아

롯데는 호성적을 기록한 서튼 감독에게 신뢰를 드러냈다. 기존 계약기간보다 1년을 더 늘려 2023년까지 임기를 보장했다. 성민규 단장과 허문회 감독의 불화설로 어수선했던 시절은 저물고 새로운 시대가 열렸다.

성민규 단장과 서튼 감독이 힘을 모으니 사직야구장부터 새로운 모습으로 바뀌었다. 사직야구장의 내야가 기존보다 2.884m 뒤로 당겨졌다. 이로 인해 홈플레이부터 중앙 펜스까지의 거리가 종전 118m에서 121m로 넓어졌다. 더불어 4.8m로 국내에서 가장 높았던 담장 또한 6m까지 치솟았다. 단숨에 사직야구장이 타자 친화적 구장에서 투수 친화적 구장으로 변모했다.

롯데는 이를 통해 피홈런 억제 효과를 꿈꿨다. 그리고 마운드 안정을 꾀했다. 이 계획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한 가지 조건이 더 필요했다. 외야수들의 수비력이 뒷받침되어야만 했다. 넓어진 외야, 높아진 담장을 '롯데편'으로 만들어야 했다.

이를 위해 롯데는 2022시즌을 앞두고 프로 데뷔 후 줄곧 수비 범위에서 약점을 보였던 '프랜차이즈 스타' 손아섭과 결별했다. 대신 중견수에서 넓은 수비 범위를 갖춘 것으로 평가된 DJ 피터스를 영입했다. 손아섭의 안타보다, 상대팀의 안타를 막을 수 있는 피터스를 선택한 것이다.

이 때가지만 해도 롯데의 방향성은 명확했다. 투수 친화적인 구장, 뛰어난 외야수의 수비 능력을 바탕으로 김진욱, 나균안, 최준용 등 젊은 선수들의 성장세를 이끌어 강팀을 만들겠다는 계획이었다.

하지만 평가와 달리, 피터스의 수비력은 뛰어나지 않았다. 달라진 사직야구장을 커버하기에는 피터스의 수비 범위가 좁았다. 오히려 피터스의 모험적인 수비가 종종 위험을 초래했다. 수비율도 중견수에서 0.986, 우익수에서 0.958을 기록했다. 결국 타격까지 부진했던 피터스는 지난해 7월 퇴출됐다.

외야 수비를 펼치고 있는 DJ 피터스. ⓒ스포츠코리아

롯데는 다음 외국인야수로 잭 렉스를 선택했다. 렉스는 정교한 타격과 뛰어난 파워를 동시에 겸비한 선수였다. 그러나 피터스보다도 한참 떨어지는 수비력을 보유한 외야수였다. 좁은 수비 범위로 인해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를 통틀어 중견수로는 1경기 출장에 그쳤다. 

그럼에도 롯데는 렉스를 영입했다. 이어 서튼 감독은 렉스를 종종 중견수로 기용했다. 렉스는 2022시즌 후반기 23경기, 160이닝 동안 중견수를 맡았다. 롯데가 시즌 초 구상했던 강력한 외야수비는 신기루처럼 사라졌다. 오히려 외야 수비가 최고의 약점으로 떠올랐다.

넓고 높은 사직야구장은 2022시즌 롯데에게 팀피홈런(84개) 최하위를 안겨줬다. 하지만 형편없는 외야 수비는 독으로 롯데에게 돌아왔다. 결국 롯데는 2022시즌 평균자책점 9위(4.47)를 기록하며 후반기 추락을 거듭했고 8위로 마침표를 찍었다.

서튼 감독은 실패를 경험했음에도 2023시즌 렉스와의 동행을 이어갔다. 대신 수비 범위가 넓은 외야수 안권수를 영입하며 이를 보완하는 움직임을 가져갔다. 하지만 안권수의 부상과 김민석, 윤동희 등 젊은 유망주들의 약진으로 외야진 구성은 크게 요동쳤다. 김민석과 윤동희가 타석에선 잠재력을 드러냈지만 외야 수비에선 경험 부족을 나타냈다. 2023시즌에도 롯데 외야 수비는 또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결국 롯데는 2023시즌 5월초 1위에서 8월말 7위로 추락했다. 2023시즌도 경기당 팀피홈런(0.56개) 9위를 기록 중임에도 팀 평균자책점은 8위(4.35)에 그치고 있다. 결국 서튼 감독의 건강도 빨간불이 들어왔다. 서튼 감독은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래리 서튼 감독. ⓒ스포츠코리아

물론 서튼 감독의 퇴장에는 이 외에도 많은 이유들이 있다. 수많은 사건들이 서튼 감독을 궁지로 몰아넣었다.

하지만 외야진 구성에서 노출한 명확하지 않은 방향성은 서튼 감독의 야구를 무색무취하게 만들었다. 이로 인해 감독직에서 물러났음에도 서튼 감독의 야구에서 뚜렷하게 남은 것이 없다. 한화의 카를로스 수베로 감독과도 비교된다. 수베로 감독은 2년 연속 최하위를 기록하고 올 시즌 초반 경질됐지만 한화팬들에게 지지를 받았다. 그 이유는 '리빌딩'이라는 명확한 방향성 때문이었다. 그리고 노시환과 문동주를 남겼다.

그런데 서튼 감독은 롯데의 '외야 혁신'을 완성하지 못했다. 오히려 갈피를 잡지 못하고 흔들렸다. 방향성을 잃은 서튼 감독은 롯데에게 아무런 색깔도 입히지 못한 '실패한 사령탑'으로 남게 됐다.

 

스포츠한국 이정철 기자 2jch422@sportshankoo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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