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승환 연세대 총장 “변별력은 대학 몫, 자율권 주면 방법 만들 수 있어”
정부가 수능 ‘킬러 문항’ 배제 등 입시와 교육을 개혁하겠다고 발표했다. 입시는 대학 교육과 직결되는 문제다. 대학 경쟁력은 미래 인재 양성을 좌우한다. 전국 대학 총장을 연쇄 인터뷰해 입시와 대학 개혁 등 우리 교육을 근본부터 혁신하는 방안을 모색한다.
서승환 연세대 총장은 지난 24일 본지 인터뷰에서 “공동체 정신을 갖춘 혁신적 리더가 연세대가 추구하는 인재상”이라면서 “더불어 살고, 남을 이해할 줄 알아야 초융합 시대에 꼭 필요한 ‘협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서 총장은 ‘교육 개혁’ 요구가 높은 데 대해 “사회는 빛의 속도로 변했는데, 교육 제도는 바뀌지 않았기 때문”이라며 “부분적으로 고칠 게 아니라, 교육과정·평가·대입 등 전체를 놓고 제로 베이스(백지 상태)에서 바람직한 교육의 모습을 연구할 때”라고 했다.
-인공지능 발달 등으로 사회가 급변하고 있다. 연세대는 어떤 인재를 키우나.
“대학 창립 정신인 진리와 자유, 기독교 정신 등 기본적 인재상은 변하지 않지만, 디테일은 변한다. 사회가 요구하는 인재상이 달라지니 대학은 거기에 맞춰 학생을 가르칠 의무가 있다. 지금 사회에선 유연한 사고, 독창성, 협업 능력이 중요하다. 최근 강조하는 것은 공동체 정신을 지닌 혁신적 리더다. 초융합 시대에는 그런 리더가 필요하다.”
-멋대로 행동하는 ‘금쪽이’와 학부모의 악성 민원이 사회적 문제다.
“저출산으로 아이가 하나만 있는 집이 많으니 금쪽이가 많아지는 건 어쩔 수 없는 측면이 있다는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공동체 정신이 거창한 게 아니다. 공자가 ‘기소불욕 물시어인(己所不欲 勿施於人·남이 나한테 하지 말았으면 하는 거는 남한테도 하지 말라)’이라고 했다. 어느 집이든 다 귀한 자식 아닌가. 금쪽이한테 이런 얘길 해주고 싶다. ‘너도 금쪽이지만 쟤도 금쪽이다’. 아이들이 ‘나도 귀한 사람이고 저 사람도 귀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게 교육을 해야 한다. 그게 바로 공동체 정신이다.”
-연세대는 신입생들이 송도 국제캠퍼스에서 기숙사 생활을 하는 레지덴셜 칼리지(RC) 제도를 운영한다.
“10년이 됐다. 기숙사가 3인1실이다. 같은 학과, 심지어 같은 단과대 학생은 배정하지 않는다. 각기 다른 단과대 소속 3명을 배정한다. 학생들이 전혀 다른 전공의 학생들과 부딪히며 공동체 정신을 기른다. 한 방에 셋이 같이 살면 이런저런 일이 많이 생긴다. 그걸 해결하려면 방법이 하나밖에 없다. 상대방을 배려하는 거다. RC 교육을 받은 학생들을 연구해보니, 학교 만족도와 학습 성과가 좋아졌다. 또 졸업 후 동문 간 결속력도 몰라보게 강해졌다.”
-교육 개혁에 대한 요구가 많다.
“교육은 워낙 국민적 관심사라 문제 제기가 많았는데, 부분적으로 개선을 해왔다. 하지만 큰 성과는 없었다. 사회는 정말 빛의 속도로 변하는데, 교육 제도는 거의 변하지 않은 것이다. 교육과정, 평가 방법, 입시 제도, 대학 자율성 등 교육에 연관된 게 많다. 경제학에서 ‘구성의 오류’ 개념이 있다. 5개 부분으로 나뉜 전체가 있다고 하자. 5개 부문별로 최선의 것을 모아 놓아도 전체로는 최선이 아니라는 거다. 교육에 연관된 것이 많은데, 각 부분이 최선인 걸 모아도 교육 전체가 정상화되지 않는다. 전체를 한 번에 보고 어떻게 만드느냐가 중요하다. 전체를 한 틀에 놓고 제로 베이스에서 ‘어떤 게 가장 바람직한 교육의 모습일까’ 한번 연구해봤으면 좋겠다. 실행 가능한지가 중요한 게 아니다. 가장 이상적 형태가 있을지, 그게 무엇인지, 모두가 만족할 수 있을지 등을 한번 연구할 때가 된 게 아닌가.
-정부가 수능에서 ‘킬러 문항’을 배제하기로 했다.
“수능이 도입된 지 30년이 지났는데, 교과목 내용은 뻔하니 시간이 지날수록 변별력 고민이 생겼을 것이다. 수능은 정해진 시간 안에 많은 문제를 빨리 풀어야 한다. 이때 학생을 구별하는 방법은 시간이 많이 걸리고 난해한 걸 내는 거다. 수능은 모든 학생이 대학 가려면 다 봐야 하는 시험이다. 그렇다면 공교육 받은 학생이 정상적으로 풀 수 있어야 하는데, 킬러 문항은 그렇지 않다. 사교육으로 요령을 익히면 풀 확률이 높아지니 불공정한 문제다. 여러 측면에서 정당성을 갖기 어려우니 빼는 게 맞다.”
-수능을 개선하자는 요구가 많다.
“초중고교 교육은 사회가 요구하는 능력을 갖춘 인재를 키울 수 있게 해줘야 한다. 4차 산업 혁명 시대에 가장 중요한 능력은 쏟아지는 정보에서 가짜를 골라내고 체계적으로 분석해 결론을 끌어낸 뒤 그걸로 새로운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다. 남과 협업하는 능력도 중요하다. 현재 수능이 키우는 능력과는 거리가 있다. 교육과정이 바뀌어 곧 고교학점제와 성취평가제가 도입된다. 고교학점제는 많은 과목 중 학생이 기호에 따라 골라 듣는 제도이고, 성취평가제는 일정 기준만 넘으면 다 A를 받을 수 있는 절대평가다. 과목도 적고 상대평가인 수능은 그런 교육 방향과 상치되지 않나. 고교학점제를 도입했는데 지금 같은 수능 제도를 운영하면 누가 다양한 과목을 듣겠나. 수능 점수 잘 받는 것만 들을 것이다. 이런 수능을 유지하는 건 불가능하다고 본다.”
-어떻게 개선해야 하나.
“대학의 선발 자율권을 확대해야 한다. 수능에서 킬러 문항을 없애고 또 자격고사화한다는 의견도 있다. 이때 변별력 확보가 문제다. 대학에 자율을 주면 (수능의 변별력이 떨어져도) 대학이 알아서 변별할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낼 수 있다. 수능 개혁과 대학의 선발 자율권 확대가 같이 갈 수밖에 없다. 다양성은 대학의 생명이다. 다양한 배경을 가진 학생을 뽑는 게 대학과 사회에 굉장히 중요하다. 현재 수능으론 다양한 학생을 못 뽑는다. 선발 자율이 주어지면 수시·정시로 딱 나뉜 지금보다 대학이 할 수 있는 부분이 더 있을 것이다.”
-’초등 의대반’까지 등장했다.
“입시 제도를 잘 만들면 사교육 문제가 해결될까. 전혀 그렇지 않다. 입시 제도를 어떻게 바꾸든 바뀐 입시 제도에 최적화된 사교육 시장이 바로 생긴다. 그러니 입시 제도를 백날 바꿔봐야 사교육 시장은 안 없어진다. 경제학에서 ‘한계혁명’ 개념이 있다. 사람의 만족감이 어떤 것의 총량에 의해 결정되는 게 아니라, 현재 상태에서 더 추가할 수 있는지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공교육에서 일정 수준까지 다 해주지만, 사교육은 수능에서 한두 문제를 더 맞힐 수 있게 해준다. 아무리 대입 제도를 바꿔도 사교육을 조금 더 하면 그 차이로 입학이 결정되는 시스템이면 사교육을 영원히 하는 것이다.”
-사교육비를 없애진 못하더라도, 줄이는 방법은 없을까.
“사교육이 해줄 수 있는 부분을 줄여야 한다. 학교에서 선생님들이 엄청난 멀티태스킹을 하고 있다. 선생님이 가르치는 일에 전념하게 되면 학생들이 사교육에 의존할 필요가 없어지지 않을까.”
☞서승환 총장은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같은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 미국 프린스턴대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7년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로 부임해 경제학부장·기획실장·송도건설추진단장 등을 지냈다. 2020년 2월부터 19대 연세대 총장을 맡고 있다. 박근혜 정부 때인 2013년 3월부터 2년간 국토교통부 장관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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