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할 오늘] 인권의 역사를 거스른 정치인들

최윤필 2023. 8. 29. 0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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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종과 피부색을 이유로 시민의 투표권을 거부하는 등의 차별을 금지한 미국 수정헌법 15조는 1870년 비준됐다.

그는 8월 28일 오후 8시 54분 단상에 올라 주별 선거법을 읽기 시작해 역대 대법원 판결과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 조지 워싱턴의 고별 연설 등을 낭독하며 다음 날 밤 9시 12분까지 무려 24시간 18분여 동안 연설을 이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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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9 미국 시민권법의 진통
1957년 민권법에 반대하며 미 상원에서 만 하루 필리버스터를 벌임으로써 '역사를 거스른 정치인'으로 기억되는 스트롬 서먼드. 위키피디아

인종과 피부색을 이유로 시민의 투표권을 거부하는 등의 차별을 금지한 미국 수정헌법 15조는 1870년 비준됐다. 하지만 이후로도 근 100년간 주별 선거법과 투표세 등 제도적 장벽으로 남부 다수 주의 흑인 참정권은 보호받지 못했다. 그 장애물들을 일거에 걷어낸 게 1957년 민권법이고, 차별 범주를 성별·종교 등으로 확장한 게 64년 민권법이다. 두 법이 통과된 과정은 한국의 생활동반자법이나 차별금지법 못지않게 험난했다.

57년 민권법은 당시 사우스캐롤라이나 상원의원 스트롬 서먼드(Strom Thrumond, 1902~2003)의 미국 역사상 최장 필리버스터(의사진행방해) 끝에 통과됐다. 그는 8월 28일 오후 8시 54분 단상에 올라 주별 선거법을 읽기 시작해 역대 대법원 판결과 토크빌의 ‘미국의 민주주의’, 조지 워싱턴의 고별 연설 등을 낭독하며 다음 날 밤 9시 12분까지 무려 24시간 18분여 동안 연설을 이어갔다. 극렬 인종차별주의자로 주지사 시절부터 대선 후보 해리 트루먼의 시민권 공약을 "전체주의적 음모”라고 비난했던 그는 57년 연단에서도 민권법을 악법으로 규정하고 “상원이 법안을 폐기(kill it)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연설 전날 건식찜질로 체내 물기를 최대한 말리기까지 했다는 그는 연설 도중 허용된 한 번을 빼고 만 하루 동안 화장실에도 가지 않아 ‘비뇨기학적 미스터리’란 말까지 들었다. 법안은 그의 연설이 끝난 지 2시간여 만에 통과됐다.

64년 민권법 역시 장장 60여 일간의 진통과 로버트 버드(Robert Byrd) 상원의원의 14시간 13분 필리버스터 끝에 특별정족수(정원의 2/3인 67명)를 넘겨 71대 29로 통과됐다.

서먼드는 남부 차별주의자들의 지지 속에 역대 최고령 상원의원(100세)으로서 자신의 권력을 누렸지만, 저 필리버스터 기록과 더불어 부끄러운 정치인으로 역사에 기록됐다.

최윤필 기자 proose@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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