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스기오 의원 “한일, 목에 걸린 가시 놔두고 진정한 화해는 어려워”

도쿄/성호철 특파원 2023. 8. 29. 04: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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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관동대지진 100년… 묻혀진 조선인 학살] [3]
스기오 히데야 일본 참의원 의원/스기오 X(트위터) 캡처

“관동 대지진 조선인 학살은 ‘목에 걸린 가시’와 같습니다. 이 문제를 숨긴 채로 일본과 한국 두 나라가 진정으로 화해할 수 있을까요.”

일본 도쿄에서 최근 만난 입헌민주당의 스기오 히데야(杉尾秀哉·66) 참의원 의원(상원 의원)은 “진정한 화해를 하려면 (일본이) 역사적 사실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며 “역사와 마주하고 잘못이 있다면 인정하고 사과해 새로운 일·한 관계를 만드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관동 대지진 조선인 학살 사건은 1923년 9월 1일 규모 7.9인 강진이 도쿄를 덮치고 나서 ‘조선인이 우물에 독을 탔다’ 같은 유언비어가 번져 수많은 조선인이 일본인에게 살해당한 사건이다. 일본 정부는 공식 조사나 사과를 하지 않고 있다.

일본 정치권에서 조선인 학살은 금기어처럼 여겨진다. 그 가운데 일본 방송사 TBS 기자 출신인 스기오 의원(2선)은 지난 5월 국회에서 다니 고이치 일본 국가공안위원장(장관급)에게 관동 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에 대한 정부 차원의 조사를 요청했다. 일본 국회에서 의원이 관동 대지진 조선인 학살 문제를 공론화한 건 100년 만에 처음이었다.

-정치인들이 꺼리는 조선인 학살 문제를 공론화한 이유는.

“정치인이 되기 전에도 관동 대지진 때 유언비어 탓에 많은 조선인이 학살당했다는 역사적 사실은 알았다. 다만 일본 정부가 이에 대해 어떤 입장인지는 잘 몰랐다. 알아보니 ‘(조선인 학살은) 정부가 조사한 바로는 사실관계를 파악할 기록을 찾을 수 없다’가 입장이더라. 기록조차 인정하지 않고, 분명히 잘못인데도 100년간 관련한 국회 질의·응답 한번 제대로 하지 않고 있었다. 깜짝 놀랐다.”

-조선인 학살은 일본 역사 교과서에도 실린 역사적 사실 아닌가.

“맞는다. 일본 역사 교과서에는 경찰·헌병 같은 공적인 입장의 사람들이 (학살에) 가담했다고 쓰여 있다. 2008년에 일본 내각부 산하의 중앙방재회의가 낸 보고서도 조선인·중국인 학살에 대해 기술(記述)했다. 중앙방재회의 보고서는 정부가 의뢰해서 나온 보고서다. 그런데도 부정한다. 일본 국회도서관에도 공식 기록이 있다. 그 사본을 보여주며 국회에서 질의했는데 정부의 답변은 ‘기록을 찾을 수 없다’였다. 자료를 더 모아, 다음 달 열리는 국회에서 다시 한번 문제를 제기할 생각이다.”

1923년 9월 1일 일본 도쿄·가나가와 등 관동 지방 일대를 덮친 규모 7.9의 강진으로 도쿄 주요 상점가와 주택들이 무너져 일대가 폐허로 변해 있다. 당시 일본 민간인들이 조직한 자경단과 군·경이 조선인들을 무차별 학살했으나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일본 정부의 진상 규명이나 사과는 이뤄지지 않았다./게티이미지 코리아

스기오 의원이 말한 ‘일본 국회도서관의 공식 기록’은 이른바 ‘사이토 마코토 문서’로 사이토가 조선 총독을 지낸 1919~1927년, 1929~1931년 기록된 공식 문서 중 일부를 가리킨다. 당시 조선총독부 조사 결과 최소 813명이 학살당했다는 기록이 적혀 있다.

-기록이 있는데 정부는 왜 부정하나.

“(일본 집권 여당은) 우파들을 굉장히 신경 쓰는 듯하다. 배상이란 문제로 이어질까 우려하는 것도 같다. 당시 태평양전쟁도 일본이 휩쓸려 들어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전쟁이라고 하는 이들이 (우파 중엔) 있다. 침략 전쟁이 아니라는 식이다. 관동 대지진의 조선인·중국인 학살도 그런 역사수정주의 안에 있다. 불편한 진실을 피하는 셈이다.”

-한일 관계가 개선되고 있다. 일본도 변해야 하지 않나.

“일본 정부가 역사적 사실을 인정하고 다시 한번 사과 담화를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현재로선 기시다 내각이 사과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나의 (조선인 학살) 문제 제기도 국회의원 개인 자격으로 하는 것이지 입헌민주당의 당론은 아니다.”

-100년이나 지난 사건에 대한 사과가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관동 대지진 100주년인 지금을 놓치면 영원히 (사과의) 기회가 없을 것이다. 한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일본을 제치려는 상황이니, 일본에선 민족적인 콤플렉스 같은 게 생겨나면서 ‘한국에 사과하라’는 말만 나오면 나 같은 정치인이 집중적으로 비난을 받는다. 하지만 ‘과거에 눈을 감은 자는 결국 현재에도 눈이 멀게 된다’는 리하르트 바이츠제커 전 독일 대통령의 말처럼, 다시 한번 파헤치고 배워야 한다. 중앙방재회의 보고서엔 ‘큰 재해가 일어났을 때 민족 차별 탓에 또다시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재일(在日) 한국인에 대한 헤이트크라임(hate crime·증오 범죄)같이 오늘날까지 맥락이 이어지는 과제이기도 하다.”

-학살 재조사를 한일이 같이 하면 어떤가.

“한국 정부가 일본 정부에 ‘100년이니 조선인 학살을 한번 더 제대로 조사해 줄 수 없느냐’고 제안한다면 괜찮은 방안이라고 생각한다. 한편으론 한국과 일본이 우여곡절 끝에 최근 관계 회복을 하는 듯 보여도 여전히 그 정도 말을 할 분위기는 아니라는 생각도 든다. 설령 한국이 요구해도 일본이 ‘그렇게 해봅시다’라 할 정도로 두 정부가 친한 관계는 아닌 것 같다는 얘기다. 양국 관계가 이전보다 좋아졌다고 해도, 일·한 관계의 현실은 역시 이 정도가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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